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비휘 Oct 19. 2021

어리버리 에미

소방대원님, 의료진, 가족들 모두 사랑합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아주 큰 뜻 이건만, 난 생활의 불편을 겪는 그런 상황이 되어 버린 거다.


왼손 가운데 손가락을 알밤 굽기 위해 새 식칼로 칼집을 내다 베였다. 순식간에 피가 흥건하고 나머지 한 손으로 휴대폰을 찾기 위해 손을 들 때마다 붉은 피가 거실과 부엌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사람이 당황하니 가방 속에서 휴대폰 찾는 일조차 버벅거렸다.

"어~~어어~"

지압을 해야 하나 전화를 먼저 걸어야 하나 선택할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피가 순식간에 흥건 해지며 뚝뚝 떨어지는 상황이 처음이라 더 허둥대기만 할 뿐. 온몸의 피가 흘러나오는 것 같은 무서움에 나머지 손이 119도 제대로 누르지 못하고 계속 엉뚱한 화면만 나온다.


퇴근하면서 가족 톡에 “집에 있는 사람?” 물어봤었다. 밥솥에 밥이 쪼금 남은 걸 기억해 내고선. 아들이 밖에 있음을 전화로 알려왔다. 마지막 전화 걸려온 아들 번호가 있어 그것으로 그대로 눌렀다.  잔뜩  겁먹은  목소리로

“아들, 어무이 손을 칼에 많이 베였어. 119 좀 불러줘.”

놀란 아들은 알았다며 바로 온단다. 집 앞이 학교니 근처에서 중간고사 준비 중이었을 텐데...

병원 갈 준비로 바지를 입고, 바닥에 뚝뚝 떨어진 피라도 대충 닦았다. 딸, 아들 그이 모두 그걸 보면 놀랄 거 같은 거다.


곧 119에서 연락이 오고 깨끗한 수건으로 상처부위를 감싸고 꼭 누르라했다. 아들과 연락이 된 뒤 손수건은 감싸고 있다. 무의식의 반응이었던 듯. 퇴근시간이라 집 가까이 와 있던 그이와 딸도 이게 무신 일이고의 표정으로 들어섰다.


집 앞에 도착했다고 119도 연락이 온다. 젊은 119 소방대원은 집에서 가까운 손가락 잘 보는 병원은 코로나19로 21일까지 폐쇄된 상태. 조금 멀리 있는 강북 현대병원으로 차를 몬다면서 더 가까운 아는 병원 있음 말하라는 데... 알아봐야 상계백병원. 거긴 손가락 응급환자는 받아주질 않는다며 현대병원을 향해가고 있다.


퇴근시간에 또 가을비가 내리는 중. 구급차를 타면 요란한 소리 내며 차와 차 사이를 가로질러 가는 알고 있던 그런 일은 없었다. 피를 많이 흘린 상태라 약간 어지러운데, 생사를 넘나드는 응급환자가 아니라서 그렇단다. 모든 환자를 태우고 간다고 해서 애앵애앵  사이렌을 울린다면?


생각해 보니 119를 부르는 사람이 한둘도 아닐 테고, 그럴 때마다 차 사이를 마구 달려간다면 어지러운 교통질서, 늘상 그 소리를 듣는 이들 문제가 되긴 하겠다.


가는 도중 체온을 재는데, 열이 나는 것이다. 손가락 사고 전까지 없던 열이 놀라고 흥분돼서 그런 거 같은데, 현대병원에 도착해서도 열이 37.5까지 오르니 가차 없다. 격리시설이 있는 병원으로 가야 한단다.


병원에서 내쳐진 우리들은 구급차 안에서 또 다른 병원을 찾아야 했다. 서울특별시 내에는 격리시설이 있는 병원은 꽉 차 있으니 의정부나 남양주로 갈 수 있단다. 저녁 8시가 가까워오니 어디든 가야 했다. 문제는 의정부도 남양주도 격리실이 남아 있는 응급병원은  한 군데도 없단다.

그이는 옆에서 병원이 많다는 서울이 이럴진대, 지방은 어떨까라며 걱정 섞인 목소리다.


다행인지 피는 멎었다. 열도 37도 아래로 떨어졌지만, 다시 현대병원으로 간다 해도 받아주지 않는단다. 그러던 중 서울 중랑구에 있는 녹색병원에 격리실이 있다며 받아준다고 했다. 참 감사했다. 열이 떨어져도 아까 한 번 올랐기에 병원에선 열 있는 환자로 여길 수 있다는 거.

시국이 이렇고 시절이 그러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탓할 수도 없는 상황. 흐름에 따라야 했다.


단순 살갗을 깁는 것도 그렇지만,  살 속에 인대나 신경, 혈관 등 접합 수술을 염두에 둬야 하니. 간단한 수술이 아닐 수도 있음을.


응급실에 도착했을 땐 열도 정상이라 격리병실은 가지 않아도 되었다. 간단하게 몇 가지 질문 뒤 수술대 위에 누웠다. 소독약을 뿌리고 간 지 1시간, 2시간이 지나도 의사 선생님이 오시지 않는다. 처치실에 가까운 수술대에 누웠는데, 소리가 다 들린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의료진들, 연신 끙끙대거나 아프다며 소리를 내지르는 환자들. 내가 들어온 뒤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들이 몰려들었단다.


응급실은 먼저 온 환자 순이 아닌 생명이 위급한 환자부터 진료를 보는 이유였다.


주부 경력이 얼만데 아직도 칼질이 서툰 나는 칼날이 뭉툭해야 한다. 어쩌다 새 칼을 바꾸거나 조금 갈아서 쓰는 날은 손가락이 베일 때가 많았다. 무디고 잘 들지 않는 걸 사용해도 별 무리가 없는 거다. 월요일마다 열리는 월요 장터에서 알밤을 사서 칼집을 쉽게 내려고 큰 새 칼을 꺼내 든 게 화근이었다.


밤 10시 30분이 넘어서야 의사 선생님을 뵈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보았던 의사와 간호사 선생님들께서 화면 밖으로 나오신 듯. 밤늦은 시간에도 친절하고 알기 쉽게 설명해 주셨다. 위독 환자로 인해 계속 늦어진 것도 죄송하다며.


손가락에 마취를 하고 여러 바늘 꿰매고 집으로 돌아오니 밤 11시가 넘었다. 내일 다시 정형외과에 들러 외래진료를 받아봐야 안다는데, 별일 없기를 이만하기 다행이기를.


기척 소리를 듣고 아이 둘은 놀라 각자 방에서 나온다. 아들은 어무이가 흘린 피가 묻어 있는 걸 보고 통곡을 하고 울었다며 딸이 알려준다. 통곡을 하고 운 아들만큼 속울음을 울었을 울 따닝의 맘을 어미가 왜 모를까.


아이들이 사다 놓은 김밥과 약을 먹고 자리에 누웠는데, 먹먹함이 가시질 않는다.


한결같은   맘으로   아내 챙김의  그이와   어질고  착한  두  아이가  어리버리한  에미로 인해   가슴을  철렁 쓸어내리게  했으니...

매거진의 이전글 대추 한 알에 온 세상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