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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Nov 11. 2021

좋을 테고, 괜찮을 테고.

꽃 피우는 데는 아무런 문제없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 1층 현관을 나서면 아파트 화단이 나옵니다. 주로 관리실에서 때가 되면 가지치기해서 수형 잡아주고 약도 뿌려주며 관리를 합니다. 가끔씩 화단에 나와 있는 화분을 볼 수 있습니다. 실내생활의 비실대는 식물에 햇볕과 바람을 쬐어주기 위함일 겁니다. 산책 나온 강아지만큼 좋아하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오가며 눈길이 머물면 머무는 대로 들여다보곤 하는데요, 국화잎에 닿았습니다.

가을임을 알아챈 갖가지 식물이 진초록을 고유색으로 물들이더니 이내 떨구기 시작하는 겁니다. 어떤 녀석은 떨어지기 싫었는지 안간힘으로 제가 쓰고 가는 우산 끝을 고리 삼아 구멍 난 곳을 걸쳐 대롱대롱 매달리지 뭡니까.

‘무던히 땅으로 떨어지기 싫은 녀석이로군.’

혹여 떨어뜨리기라도 할까 봐 조심조심 발을 떼놓으며 한참을 걸었습니다. 어느 순간 뚝! 날리듯 떨어질 때 보내주었습니다. 물론 이파리로 매달려 여름날 두 눈을 시원하게 해 주었음에  고마움도 전하면서. 모든 게 사그라지고 빛바래는 가을일 거라 생각하려던 때. 청년 같은 싱싱한 국화잎이 힘을 주고 있는 겁니다.


 관리실 직원이 아닌 통로에 살고 계시는 할머니였습니다. 국화를 사 오신 건지 화분에 있던 걸 옮겨 심었는지 모릅니다. 두 군데의 꼿꼿한 국화에서 꽃망울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최근에 활짝 피었습니다. 그 사이 지지대가 같이 있다는 걸 최근에 알았습니다. 그동안 국화꽃이 누워서 피는 꽃인 줄 몰랐던 겁니다.


꺽다리 키처럼 길쭉한 줄기를 이기지 못해 옆으로 눕다시피 피는 꽃이었습니다. 아파트 앞 화단 속의 국화꽃은 할머니께서 버팀목 같은 지지대를 세워주었기에 허리 펴고 당당히 피는 꽃이었음을.


사람마다 국화꽃의 지지대 같은 이가 있다면  좀 더 꼿꼿한 자태일 수는 있겠습니다. 지지대가 없다고 해서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것은 아님을 알게도 되었습니다.


국화꽃이 지지대를 버팀목 삼아 꽃 피우는 모습을 보니 있으면 좋을 테고, 없어도 괜찮을 테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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