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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Nov 18. 2021

동치미 맛있어져라! 얍얍!!

배추, 무, 얼갈이의 화려한 변신을 기다리며

우리들의 주말 행사를 치르기 위해 햇살 퍼지는 시간을 기다렸다. 주말 농장 가는 게 주말 행사 맞나? 우리에겐 그렇다. 배추와 무 수확을 위해서였다. 간밤의 서리로  무가 얼 수 있다고 했으니. 아침 일찍 무 뽑는 일은 피하라고 일러주신 농장주의 말씀을 받들어 따뜻함이 느껴지는 시간에 출발한 거다.


다른 텃밭의 배추와 무, 갓, 쪽파는 주인들이 거의 거두어 가고 한 집 부부가 나와 손질을 하고 있다. 대체로 전체 농장은 썰렁했다.

농장 중앙에서 가장자리를 차지한 우리 텃밭 작물들 오종종 모여 앉아

‘자 이제부터 시작이야!’

다짐이라도 한 듯 작지만 옹골찬 푸르름이 느껴졌다. 시들함이었는데, 새 힘을 받았는지 싱싱함까지 풍기고 있는 것이다.

‘더 추워지기 전에 수확하러 왔는데, 어쩌지?’

추운 날씨에 벌레들이 땅 속으로 들어갔을 거라고 그이는 추측의 말을 했다.

“한 주 더 클 수 있게 둘까?”


 망설이는 말을 둘이 나누고 있는데, 주인을 찾아온 어느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며 농장 주께서 나오셨다. 텃밭에 있는 배추와 무를 누군가 가져갔다고 주인한테 이야기를 한 모양이다.  


우리 텃밭 작물은 변변치 못했나. 그대로였다. 하지만, 지난주 작물 솎아낸 자리에 시금치 씨앗을 뿌리고 남은 거랑 호미를 모르고 두고 왔다. 솎아낸 수확물 챙기기만 바빴던 모양.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거란 나의 생각은 깨끗하게 빗나갔다. 어찌 같은 농장을 사용하면서 텃밭 사람들이 두고 갔을 거란 생각을 않고 버리고 간 거라고 생각한 건가. 흔적도 없는 걸 보며 조금 실망했는데, 작물을 뽑아가기까지.

농장주가 텃밭이 보이는 곳에 살고 있으나, 24시간 지키고 있을 수는 없을 노릇일 터. 누군가 가져갔다며 없어진 걸 주인한테 따지면 참 곤란할 듯하다.


세 분이서 우리 텃밭 앞에서 이야기 나누시다 뽑아내는 걸 아끼고 있다는 게 느껴졌나 보다. 이구동성으로 모조리 뽑아야 된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곤 배추와 무가 크든 작든 다 뽑아냈다. 순무와 알타리가 아직 여물지 못한 것은 차마 뽑을 수가 없었다. 뽑아낸 자리엔 시금치 씨앗을 뿌려주었다.


다 사그라드는 가을 끄트머리 텃밭에 이제부터 내 세상을 외치며 초록 잎을 틔우고 있는 작물이 보였다. 시금치였다. 농장주께서 씨앗도 팔고 계시니 우리도 손쉽게 따라 할 수 있었다.


울 시엄니 텃밭에서 겨울날 흰 눈을 소복이 뒤집어쓴 시금치를 본 적 있다. 그때가 설날 전이었던 거 같은데, 찬바람이 불어도 흰 눈이 내려도 죽지 않는다 하셨다. 오히려 날이 추웠다 풀렸다 할수록 달고 맛있다고 하셨다.


올 겨울 울 텃밭을 푸르게 더 푸르게 할 시금치의 싹을 기대하며 배추와 무 수확물을 안고 왔다. 지인들께 무를 나눠준다고 해도 많았다. 김장을 하는 게 아니라서 더 그런 듯. 앞으로 울 시엄니 그 힘든 농사와 김장을 해주시지 않아도 될 듯한데... 우리에게 30여 년 동안 해 오신 그 일을 하루아침에 하시지 않으셔도 된다며 얘기 꺼내면 100% 서운해하실 거다.


텃밭에서 수확해 온 배추와 무를 깨끗이 씻어 동치미를 담그기로 했다. 배추가 얼갈이보다 포기 작으니 동치미와 같이 담기가 좋은 크기였다. 배추와 무 나머지 재료를 씻는데도 한참 시간이 걸렸다. 쉽지 않았다. 이 힘들고 어려운 걸 울 시엄니 평생 해주시고 계신 거였다.


천일염에 무는 이파리 몇 가닥 붙여 이음 부분만 칼로 도려내고 그대로 씻어 하루 동안, 배추와 얼갈이는 적당히 숨이 죽을 만큼만 절였다.

청갓, 대파, 쪽파, 배, 생강과 마늘은 편을 썰고, 대추도 뚜껑을 따주어 밑에 깔아 주었다. 절인 무와 배추를 그 상태로 올려주고 생수와 소주, 매실엑기스 쪼큼 넣고 천일염을 짭조름하게 푼 물을 부어주었다. 아, 삭힌 고추를 넣어야 톡 쏘고 깊은 동치미 맛이 난다며 유튜브 동치미 교실에서 공부하였다.


“배추와 무 동치미 맛있어져라!! 얍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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