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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Dec 14. 2021

삼총사

셋이 모이면 무서울 게 없지.

삼총사란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혼자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을 셋만 있으면 세상 무서울 것도 두려울 일도 없는 것이다.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3 총사는 엄연히 살아있고, 전설적인 이름이라는 것을.


사람이라면 어른 아이 할 거 없이 재밌고 즐거운 곳에서 더 오래 더 많이 머무르고 싶은 맘 가지게 되는 건 인지상정. 그 맘을 털고 재미없어도 꼭 해낼 일은 해내거나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을 즐겁고 유쾌하게 해 내는 사람이  큰 인물이 되는 것일 테다.


아무튼 아이들의 작은 행동이 나에게 3 총사란 단어가 새삼 떠오르게 했다. 일곱 살은 유치원에선 군대 제대 말년 병장만큼 힘 있지만, 군기 면에서 쪼금 빠져있는 느슨함이 있다.


어눌하고 서툰 때가 있기나 했나 싶을 정도의 기억에도 사라진 다섯 살을 지나 정 가운데 어중간히 끼여 온순해 보이는 여섯 살. 불과 두세 후 일곱 살반이 졸업해서 나가고 젤 큰 형님반이 되는 그 순간, 어쩜 저리 돌변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고요함이 아직 6세 반에겐 있는 것이다. 설치거나 나댈 수 있는 충분한 에너지는 비축되어 있지만, 일곱 살 형님 반에는 비할 바가 못 되니 잠시 웅크려 더 멀리 뛰기 위한 준비태세 형상이랄까.


곧 초등생이 될 거라는 기대와 설렘, 두려움을 동반하는 건 학교라는 낯선 세계를 상상했을 때이고, 유치원 내에선 꼬챙이 하나 계절별 소품이 창고 속에 잠자고 있다는 것까지 알 정도로 유치원 살림살이에선 다 꿰차고 있을 터이니.


겨울 지나는 동안 봉긋봉긋거리다 톡 터트릴 날 기다리는 목련꽃눈만큼 매일 부풀어 오르고 있다.

곱 살은.

일곱 살 혼자가 아닌 또래 친구들과 바깥놀이에서 모든 에너지를 분출시키며 즐겁게 뛰놀 수 있는 곳. 강아지랑 아이들 곁에 추위 따윈 비켜 앉아 있다. 도저히 껴들 수 있는 재간이 없는 것이다.


꿈만 같은 시간은 물리적으로 똑같이 주어진 시간마저도 빛의 속도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정해진 바깥 놀이시간은 언제나 눈 깜짝할 사이라는 것. 아끼고 좋아한다는 것을 알기에 시계를 연신 들여다보며 1분 1분을 더 주고 있었다.


더 이상은 안 되는 마지노선에서

“얘들아, 모여라!”

혹시 듣지 못한 아이가 있을까 봐 먼저 모인 친구들이 합창으로 외쳤다.

“얘들아~~~ 모여라!”


아파트 주민들이 창문 열어 내다보며 거좀 조용히 합시다로 소리칠까 두려울 만큼 큰 소리에 가슴 졸이는 건 나뿐이던가.

모이라는 소리를 듣고 미끄럼틀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다시 들어가는 저 세 아이 3 총사들.


주위가 한순간 조용하고 싸해진 적막감에 30초 머물다 달려온다. 빠르기와 날쌔기가 치타만큼 돼야 뻐기고 버틸 수 있는 간이 조금 큰 녀석들일 터.


단체생활이란 게 한두 명 맘 십분 헤아려 봐주고 싶을 때 있지만, 형평성에 어긋나고 약속 지키는 아이들 보기 말이 안 되는 것. 아이들 앞에서 엄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너희들 셋은 모이라는 소리는 안 들렸니?”

“아무 소리도 안 들렸어요.”

L이 당당한 듯 태연하게 말한다.
 두 번째 서 있는 H를 보며 너는 들렸니란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소리가 들린 건 같은데요, 정확히 무슨 소리인지는 몰랐어요.”

둘이 답을 했으니 세 번째는 자동이다.

머리를 휘저으며

“저도 하나도 안 들렸어요.”

혼자였으면 모이자고 말 떨어지기 전에 달려왔을 텐데...

셋이 모이니 가능한 일. 놀이터가 떠날 만큼 외쳐도 못 듣고 안 들리는.


속으로 웃음이 났다. 정답이다. 안 들렸을 거다. 아니 듣고 싶지 않았을 거다.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유리하게 작용하는 말만 하는 사오정. 아직 그 두터운 옷을 벗고 싶지 않았던 게지.


저 멀리 아득한 유년 시절 마당 지나 대문 밖까지 뛰쳐나온 어머니께서 소리친다.

“퍼뜩 밥 먹으로 들어 온나.”

친구와 셋이서 더 겨울해가  유난히   짧은 멀리 더 깊숙이 어둑해진 곳을 뚫고 뛰어간다. 배도 안 고팠다.


너희들만  더 놀고  싶은 게  아니었단다.  이 선생도  그런 때가  엄청 많이 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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