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줌마

감당하기 힘든 충격은 곳곳에 있다.

by 서비휘

겨울밤이 길긴 하나보다. 잠들기 전 군것질거리가 생각날 정도로 시간이 남는다. 아들이 그 맘을 알기라도 하는 듯 외출했다 돌아오며 한아름 안고 온다. 괜히 입이 먼저 씰룩댄다.

“줄이 내 앞에도 내 뒤에도 쭈욱 늘어서 있어 그냥 올까 하다가 사 왔어요.”

“오구 오구 잘했네.”

바다에서 금방 낚아 올린 싱싱한 물고기를 잡아오기라도 한 듯 팥 붕어랑 크림 붕어를 펼쳐 보인다. 아궁, 요즘은 귀요미들 컨셉인가 생각했던 크기보다 훨씬 작고 앙증맞은 녀석들이 포개져 누워있다. 각자 구미에 맞는 작은 붕어빵을 한 마리씩 집어 들고 머리든 꼬리든 먼저 입에 앙 베어 물었다. 아드닝을 뺀 나머지 식구들은 팥이 좋다며 '손이 가요 손이 가~ ' 팥붕어가 금방 동이 났다. 크림 붕어빵만 잔뜩 남았다.

“역시 노인들의 입맛은 변함 없으시네요.”

나는 노인이란 아드닝의 말에 얼른 팥이 든 붕어빵을 내려놓고 싶었다.

‘뭐 어때 난 노인 아닌걸, 팥이 든 붕어빵 맛있기만 하구만. 맛있게도 냠냠!!’

하는 따닝과 다른 1초 찰나의 반응.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쉰을 넘으면서 곳곳에서 노인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제일 먼저 답답했던 것은 어느 날 책을 읽고 있는데, 두 겹으로 겹쳐 보였다. 눈에 이물질이 들어가 눈물이 어른거려 그런다고 생각했다. 바짝 마른눈으로 책을 봐도 같은 증상이 있는 것이다. 안과에 갔더니 노안이 와서 그런 거라며 돋보기안경을 끼면 책 보기가 훨씬 수월할 거라 했다. 거부하고 싶었다. 책이나 글을 보기가 당장 아쉽고 일하는데, 지장이 있으니 돋보기안경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노안이 맞았다. 두 겹의 어른거림은 없어지고 선명히 잘 보였다. 사물을 볼 때 돋보기안경을 낀 채 보면 어지러웠다.


책을 볼 땐 두 눈에 돋보기안경을 맞추고 사물을 볼 땐 콧등에 올려야 했다. 내 모습이 안 보이니 망정이지 아드닝이 불러 마주할 때면

“울 엄니 정말 할머니 같아.”

예전의 울 엄마 이불 꿰매실 때 아부지 아침마다 대청마루에서 신문 보실 때 나도 그런 생각한 거 같은데, 그 모습일 거라 짐작만 했다.


어느 날부터 이마 맞닿은 부분에서 하나 둘 삐죽 나온 흰머리를 잡풀 뽑아내듯 쏙쏙 뽑아냈다. 지금은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숲을 이뤄 갈색 물감 같은 염색약으로 감당해야 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눈과 머리카락뿐만이 아니었다. 순간순간 튀어나오는 말에서 따닝이 항상 재수정을 해주는 것도 새로 생긴 버릇이다.

“대한민국 아니거든 국가대표.” “아 맞다. 그 영화 제목.”

“에몬스 아니고, 시몬스, 에이스” 나중에 보니 에몬스 침대도 나왔더라. 나 같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나(?)

단어를 완전히 바꿀 때도 많고, 그 어휘 속에 앞자나 끝 글자가 들어가거나 뭔가 연관성은 있는데 정확하진 않는 거다.


낮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속상했다며 말을 꺼냈다.

“집을 보여주고 지나오다 알록달록 아이 옷가게 앞에서 서성였어. 옷이나 양말 모자 색상이 정말 예쁘더라. 창가에 걸린 눈사람도 그렇고.

거기까지 듣던 아드닝과 따닝 서로 찌찌뽕하기라도 하듯 내가 퀴즈라도 낸 듯 빛의 속도로

“손녀가 몇 살이세요. 물었죠?”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소름 돋을 만큼 한 글자 틀리지 않는 정답이었던 거다.

“아~ 그렇게 보이는구나. 그렇게 다들 생각하는구나!”

“엄마, 엄마 딸 같지 않고 언니 같다는 말 아직도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지?”

같이 다니면 언니 아니냐 말을 듣던 따닝은 신나듯 말했다.

‘어이구, 저걸 기냥 등짝 한 대 팍 쳐 줘도 시원찮겠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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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뭐라 하셨어요? 할머니 아니라고 짜증내셨어요?"

아드닝이 궁금한 듯 물었다.

“아니 울 쪼꼬미들 네 살이었잖아. 네 살이 생각나서 손가락으로 네 살 했어.”

"완전 할줌마야, 할머니와 아줌마가 같이 있는......"

두 아이들 뒹굴듯 배꼽을 잡고 웃고 있다 . 난 웃픈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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