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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해피 Apr 06. 2024

그녀들의 마음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행복은 마음먹기 나름

하하하 호호호

까르르륵 까르르륵 


여기는 재활병원 보호자 대기실이다. 무엇이 그렇게도 재미있는지 박장대소가 연일 이어진다. 특수 치료를 받는 아이 엄마들의 수다 현장이다. 이들이 점심을 같이 먹는 식구가 된 지 내가 보아온 것만 해도 2년이 넘었다. 아마도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긴 시간을 함께한 인연일것이다. 그만큼 친밀하고 가까운 관계로 보였다. 

보통 나와 같은 돌봄 선생님들은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부분의 엄마들도 조용하게 담소를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엄마들이 모인 시간은 늘 왁자지껄 즐거운 담소가 이어진다. 이런 분위기는 대개의 대기 시간을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휴식을 취하는 내게는 큰 방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들의 즐거운 마음들이 참 좋다. 그녀들의 즐거운 일상이 참 좋다. 그리고 참 고맙다.

장애인 활동지원사를 시작했던 5년 전, 나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Y의 치료를 위해 발달장애 아동치료센터를 처음 가게 되었다. 낯선 직업, 낯선 환경에 앉아 숨 죽여 주변 환경을 둘러보는데, 사실 나는 조금 놀랐다. 아픈 아이를 데리고 치료를 받으러 온 엄마들의 표정이 무척 해맑았기 때문이다. 그 공간은 하하 호호 농담과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 어느 공간보다 해피바이러스가 넘쳤다. 우중충하고 어두운 내 얼굴과 달리 예쁘게 화장을 하고 깔끔하고 감각적인 패션으로 자신을 표현한 사람들이었다. 

가만가만 왜 이들의 얼굴은 나보다 더 밝고 건강해 보이는 거지? 나는 건강하게 자라준 자식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동안엔 왜 모르고 살았던가? 그들은 나를 참 많이 반성하게 만들었다. 솔직히 이 엄마들이 경쟁 속으로 자식들을 밀어 넣는 비장애인 아이들을 둔 나보다 더 평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못난 편견이 와장창 깨진 순간이었다. ‘행복은 자기 마음먹기 나름’이란 진리를 재고하게 만든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녀들의 마음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어났던 것일까. 곰곰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Y를 데리고 이 치료실에 1년 4개월을 드나들었다. 그러면서 자주 마주친 7살쯤 되는 J엄마와 담소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J엄마는 항상 조금은 짙은 눈 화장을 했고 예쁜 옷차림이었다. 그녀는 원래 화장을 하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한다. 그러나 아픈 아이 때문에 더욱 자신을 가꿔야 했다고. 자신이 밝고 행복해져야 아이를 더 사랑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자신이 초라하지 않고 당당해야 아이와 자신이 사회에서 더 자신감 있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지금 일하고 있는 재활병원에서는 C엄마가 눈이 띄인다. C 엄마는 일하는 여성이다. 직장이 탄력 근무제가 이루어지다 보니 일과 아이 케어를 동시에 하고 있다. 그런데 자기 관리도 참 잘하는 여성이다.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하는 등 조금의 짜투리 시간도 헛되이 사용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또 주변사람들을 얼마나 잘 챙기는지 때마다 소소한 감동의 선물을 주곤 했다. C엄마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자신이 행복해지려 노력 중이라고. 그래야 좋은 컨디션으로 아이를 케어할 수 있지 않겠냐 면서….

‘신이여, 내 아이의 고통을 모두 거두어 주시고 대신 그 고통을 내가 온전히 감당할 수 있도록 부디 허락 하소서…….’ 

아픈 자식이 있다면, 날마다 이런 기도문을 마음에 담고 사는 사람이 부모의 자리 아닐까? 자식을 둔 부모라면 모두가 같은 마음이 아닐까? 그녀들은 자식이 아픈 혹독한 마음들을 견디며 더 쾌활한 밝음을, 더 호탕한 웃음을 찾으려고 애를 쓰는듯했다. 그러므로 삶의 비밀을 누구보다 더 빨리 초 고속으로 찾아낸것 같았다.

어쩌면……, 그녀들은 엄청난 마음의 지옥을 돌아 지금의 밝은 모습에 이르렀을 것이다. 상상컨데, 아니 충분히 예상컨데, 그녀는 벼랑 끝에 선 자신의 발걸음을 겨우 되돌려 비로소 긍정의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을 것이다. 철학자들이 일군 100년의 삶의 철학을 단 몇 년 만에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내게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는 것, 나의 삶에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고 묵묵히 살아 나가는 것만이 우리가 취할 삶의 태도라는 것을. 그것이 이 모순의 세계를 대하는 우리의 삶의 자세라는 것을. 그러므로 행복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것을. 나는 왁자지껄한 그녀들을 보며 철학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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