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헬로해피 Apr 25. 2024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에필로그

나는 장애인활동지원사이다. 이 일은 내가 여성의 입장에서의 ‘돌봄’을 진정성 있게 바라볼 수 있게 했다. 글쓰기를 훈련하며 임 했던 직업이기에 글을 쓰는 데 있어서도 ‘돌봄’이라는 키워드를 결코 놓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내 인생에서 ‘돌봄’이라는 화두를 빼고는 나를 설명할 수가 없다.

나는 부모님의 보살핌으로 누군가를 보살필 수 있는 존재로 자라났고 온 기류의 순환처럼 나도 내 가족을 돌보며 또 돌봄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하물며 현재에는 돌봄 노동이 내 직업이 되어 있다. 그만큼 돌봄은 내 삶에 있어 아주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가족을 돌보는 일, 사회를 돌보는 일, 그리고 나 자신을 돌보는 일까지, 나는 또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아가며 살고 있다.

이처럼 돌봄은 우리 삶에 깊숙이 스며 들어 있다. 정치도 노동도 여행도 유희도 일종의 우리 자신을 돌보기 위한 행위이다. 행정이라는 기반 아래 사회 시스템을 만들고 실행하는 일도 궁극적으로 사람을 돌보기 위함인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돌봄이 개인의 몫으로 또는 일부 부류의 몫인것처럼 남겨진다. 사람을 보살피는 것은 우리 삶에 있어 가장 고귀하고 중요한 일임에도 사회의 낮은 계층에 일임이 되어버린 것이 무척이나 안타깝다. 하여 나는 우리의 삶이 어느 한 사람의 희생으로 존속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나는 가족돌봄, 사회돌봄을 거쳐 자기돌봄에 이른다고 생각한다. 이는 내가 걸어온 삶의 길이라 할 수 있고 대부분의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공식과도 같을지 모르겠다. 우리는 처음 가족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게 된다. 부모가 나를 키우고 나는 또다시 내 자녀를 키운다. 가정 안에서 서로를 보살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의 고리를 체화해 간다.

그리고 가정 안에서 배운 그 보살핌의 정서는 ‘사회’로 확장된다. 각자의 위치에서 노동으로, 정치로, 행정으로, 지식으로, 우리는 서로를 돌보는 시스템을 만들며 살아간다. 그 시스템으로 사회 저변에 깔린 인간 존엄의 추락을 건져 올리는 일이 바로 사회 돌봄일 것이다.

성숙된 사회란 돌봄이 삶에서 어느 수준의 확장성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불균형한 사회시스템이 불평등한 사회를 종용해 왔다. 그 기울어진 구조 안에서 상처와 회복이 반복되고 순환하며 우리의 삶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나는 장애인 활동지원사라는 사회적 활동을 통해 나를 돌보는 법을 배웠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자극이 없었다면 나는 진정한 나로 살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얼마만큼 촘촘히 연결되어 있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사회적 돌봄의 경험이 ‘나’로 나아가는 동력이 되었고 관계에 미숙한 내가 한층 성숙된 ‘나’로 살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서 클라이먼 교수(‘care’의 저자)는 “돌봄은 사회를 하나로 이어주고 삶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는 아이를 키우고 환자를 간병하고 장애인을 돕고 죽어가는 사람을 지키며 우리 자신을 돌보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사회와 사람을 돌보는 일이 결국 나를 돌보는 일이라는 것이다. 나를 잘 돌본다는 것은 내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얼마나 유기적이고 따뜻한 마음의 온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하는지를 말한다. 이처럼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살아가고 있다.

이전 28화 나는 지금 휴면 상태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