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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석 Jan 15. 2018

아버지의 빨간약

예전 같은 병실에 있었던 거제도에서 개농장을 한다던 개아범이 생각난다.

무릎이 부서져 일년넘게 병원생활을 하던 병실 고참이었다.


오른다리 아킬레스 파열로 입원해본 후 10여년만에

이젠 왼쪽무릎이 고장나서 다시 환자복을 입었다.


'반월상 연골파열'로 인한 '연골판 절제술'이

내가 받은 진단과 그에 따른 수술처치이다.

(담당의사는 간단한 수술이라고 했지만, 아프다)



약 일년전, 엄마산소에서 잡목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했다.

무사히 작업을 마치고 좋은기분으로 내려오는데, 무릎이 이상했다.

시간이 지나도 좋아지질 않았다.


'산소에서 손대지 말아야 할 나무를 베어서 그런가???'

짐작되는 일도 없고 사전예고가 없었던 부위라서 이상한 생각도 들만큼

아픈 원인을 가늠키 어려웠다.


세월이 좋아 무릎을 수십층의 사진으로 포(脯)를 떴다.

흑백의 비싼 사진에서 무언가가 (버릴때가 훨씬 지나버린

접어신은 운동화마냥) 너덜거리고 있었다.

산소에서 나무를 잘못 벤게 아니고,

내몸에 베어내야할 끄트머리가 있었다.



일년정도의 고민과 망설임후에 수술대에 누웠다.


멀쩡하게 걸어 들어와 입고온 옷과 신발을 벗고

'Hospital'이라는 영어가 어지러운 하얀 옷과 슬리퍼를 신자마자,

좀전의 멀쩡한 이는 중병의 병자로 변신을 한다.


옷한벌의 차이로 이렇게 짧은 시간에 사람의 내.외면이 극명하게 봐뀌는 곳은

아마 병원이 최고일듯 싶다.

외모도, 행동도 환자가 되어버리고,

의사,간호사를 비롯한 다른 멀쩡한 이들도 나에게 많은것을 배려하고 양보한다.


그럼 난, 환자복으로 갈아 입기전까지는 환자가 아니었나?

물론 정상이 아니니까, 병원을 찾아오고, 소독약 냄새가 풀풀나는 흰옷으로 갈아 입었겠지만,

하여튼, 아주 짧은 시간에 난 환자가 되었다.



30여분의 수술후 척추마취가 풀리기를 기다리며 10시간 정도를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다.

간호사는 머리도 들지 마라 한다.

그말에 갑자기 머리들일이 많아지고, 주변이에게 참견과 잔소리도 많아진다.

구속을 당하면 왜그리 답답하고 불편한지는

옆병상과 앞병상의 깨지고 부서진 이들을 봐도 매한가지 이다.


몇시간이 지나도 가슴아래께 부터 발끝까지 느낌이 없다.

(그러니까, 고통없이 수술을 했겠지만)

아랫배가 단단하다.  소변이 걱정이 되었다.


걱정도 잠시,

다시 만져본 사타구니가 축축하다.


멀쩡하게 걸어와 불과 몇시간후 침대에서 오줌을 쌌다.


축축한 매트위에서 오만가지 생각에 머리속이 복잡해진다.

이렇게 내가 원해서 시작한 외상치료에 의한 병원신세가 아니고,

'불가피해서 또, 원하지 않아도 어쩔수 없이 병원신세를 지게 된다면...', 이라는

결국은 다가올 만약이라는 짧은 가정에 생각은 더 어지러워지고, 늘어진다.


만하루를 지나지 않아 짜증과 답답함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잔소리를 해대는데,

그때가 되면 이라는 생각을 하니,,,,,

그때는 퇴원시기를 짐작도 못할것이다.


생각을 더 하기 싫어져, 그 생각을 밀쳐놓아도 밀쳐놓은것들은

더 가깝게 다가와 구체적으로 자꾸 무언가를 보여준다.



세상을 버리기전 할머니는 '큰아들이 당신을 때렸다는 둥,  큰애가 밥을 안준다'는 둥

치매 증상을 보이셨다.

아버지의 나중도 할머니의 정신놓음보다 정도가 약하지는 않았다.

결국은 끝까지 모시지도 못했다. 

아니, 못한게 아니고 안했다라는게 맞다.


아버지 말씀이 생각난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자식들 고생시킬만큼 아프게 되면,

한입에 털어 먹으면 깨끗하게 갈 수 있는 약을 준비했다'

그냥 하시는 말씀으로 들었다.


사실, 할머니의 치매증상을 겪고, 평생 양약(洋藥)을 업으로 사신분이라

아버지는 쉽게 구할 수 있었을게다.


어릴적 내가 본 그 약은 선홍색의 윤기가 나는 알약이었다.


그 말씀이 어떤 의미 였을까?

물론 아버지는 당신의 말씀처럼 정신줄을 놓았다 잡았다 하셨지만,

그약의 존재조차 잊을때까지 한입에 털어넣지 않으셨다.


아버지의 복잡한 속을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발병후 세상을 버리실때까지 -사실 아버지가 세상을 버리신게 아니고,

세상이 그리고, 내가 아버지를 버렸지만-  보여주신 것들

- 물론, 당신의 생각과 의지와는 전혀 다르게, 또 그런게 그 병의 증세이지만 - 을 생각해보면, 

감히 조금 가늠이 되기도 한다.


수술날 저녁에 병상에서 몇시간 지키고 있는 딸아이와 아내를

고집을 부려 집으로 돌려 보냈다.

너희가 가는게 내가 더 편하게 쉴수 있다는게 돌려보낸 이유이자,

그들이 설득당한 이유이다.



나도 할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엄마를 닮아 세상을 버리기전

(아니면, 세상이 나를 버리기전) 오랜시간을 병자로 버틸까?


모든이의 바램이겠지만, 제발 안그랬으면 좋겠다.

사실 그것이 원하는대로 되겠나... 그렇다면 인명재천(人命在天)이라는 말도

없을것이고, 병원은 벌써 다 굶어 죽었을 것이다.


세상이, 의학기술이 또, 나랏님이 만든 복지제도가 좋아져

예전과 모든게 달라졌다해도,

환자와 그 환자의 보호자는 병상의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긴병에 효자없다는 말처럼 환자는 골치덩이로 그 환자의 보호자는 

자책감과 무력감에 고민하고 갈등하는 피해자로 봐뀌는것이 봐뀌지 않을 사실이다.



그렇다고, 얼마나 남았을지도 모를 앞으로의 일에 대해

조건과 상황을 구분하여 나중에 나의 보호자에게 어떻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언표나 증표를 남길수도 없고,

한다고 해도 그 해달라함은 더 큰 아픔과 고통을 주는 또 하나의 가학이 될 것이다.


아버지의 빨간약이 생각난다.

아마도 아버지는 그 빨간약을 구하고, 당신만이 아는곳에 숨겨두시고,

또 가끔씩 꺼내서 확인을 했을 것이다.

그때마다 무슨 생각을 또, 어떤 고민을 하셨을것이다.

숨겨두신곳을 잊기전까지는 그랬을 것이다.


아버지의 빨간약은 지금의 나에게는 단순히 치사량의 독약이 아니고,

지키고 싶지만, 실행을 장담하기는 어려운 남은이에 대한 배려는 아닌가 싶다.

배려가 거창하다면, 아버지가 가졌던 고민이라고 해도 좋다.



주변의 사랑하는 이들과 그들의 보호자들이

먼훗날 힘들어 하는 시간이 짧기를 기도하며,



병상에 누워서

때를 넘긴 약봉투를 찢는다.





2018. 1. 14.    ㅅㅓㄱ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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