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조기가 참 맛있다.
그 언제부터가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질 않는다.
예전에는 씁씁한 내장을 그대로 뱃속에 넣고 밥상위에 오르는 비릿함과
살은 별로 없고, 큰 대가리와 억센 가시만 무성한 조기에
손이 가질 않았다.
아버지는 조기를 참 좋아하셨다.
그것도 씹어봤자 건질것도 없고, 번거럽기만 할 것 같은
대가리와 씁쓸한 내장은 꼭 드셨다.
어릴적, 그런 아버지의 식성이
예전 부모세대들의 공통분모인
먹을게 귀한 시절에 격은 배고픔과
그 고달픔의 기억에 기인한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다.
산촌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나는
어머니가 가끔 오일장에서 사온 고등어로 해준
고등어 구이를 정말 좋아했다.
오죽했으면, 바닷가 출신의 며느리를 보아야겠다고 까지 하셨다.
처가집이 바닷가이니, 생선이야 흔할것이고,
생선중에 또 흔한게 고등어 이니 하신 말씀이었다.
지난 주말 아내와 포항 죽도시장으로 생선을 사러 갔다.
생선이야 동네 마트에도 종류별로 다 있는데,
굳이 포항까지 가서 생선을 사야겠냐고 투정을 부려보았지만,
날씨도 좋고, 드라이브 겸 가자는 아내의 말에 미적대며 따라 나섰다.
"어짜피 생선은 자기가 더 좋아하면서 왜그러냐" 며
가는 차안에서 핀잔을 들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익숙한게 편한가 보다.
여기서 '편함' 은
복잡한 시장통을 여기저기 둘러보고, 가격을 물어보며
이 물건, 저 물건을 견주어 보는 수고를 하지 않겠다는
'편리함' 의 의미이다.
가끔씩 가는 죽도시장 어물전,
아내는 아내의 얼굴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화장실 안내간판 아래에 전을 펴놓은 할머니한테서 꼭 생선을 산다.
그렇다고 딱히 다른데 보다 특별히 좋아보이지도 않은데도 말이다.
나중에 그 이유를 물어보니,
그 할머니한테 처음 생선을 살때,
덤으로 두어마리 더 챙겨준것과 '조기를 꾸덕꾸덕하게 말려서 먹으면 더 맛있는데,
그렇게 하기가 어려우면, 밀가루를 발라서 꾸워먹어' 라며
시집간 딸래미 마냥 이야기 해준게
그 할머니한테서만 생선을 사는 이유의 전부였다.
한번은 감포항에 아내와 낚시를 가서 헛탕을 치고
감포항 근처 횟집에서 낚시로 못맡은 고기 비릿내를 뱃속에다 채웠다.
식사를 마치고 나온 횟집 주차장 한켠,
작은 리어카 위에 가자미 말린것을 팔고 있었다.
워낙 생선요리를 좋아하니, 열마리 정도를 사와서
그날 저녁, 아직 비릿내가 가시지도 않은 입으로 가자미 구이를 씹었다.
부드러운 하얀살과 품고있는 불그스름한 알집이 고소했다.
고등어는 몰라도, 조기와 가자미는 구워야 맛나다.
며칠후, 가자미 몇마리 구워서 소주나 한잔하자며
수라간 상궁님께 청을 드렸다.
한참을 기다려 노릇한 가자미 구이 한상을 '성은이 망극' 한 표정으로 받았다.
일단 소주 한잔으로 입을 행구고,
잔뜩 기대를 하며, 가지미를 손으로 크게 뜯어 한입 먹어본다.
'엥? 맛이 왜이렇지?'
쾡하니, 돔배기 맛이 난다.
이유는 간단했다.
꾸덕 꾸덕하게 말린 생선을 보관을 할 요량이면,
김치냉장고가 아닌, 냉동실에 보관을 해야했다.
수랏간 시절에는 냉장고가 없었다고 아내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여튼, 짧은 흥정도 없이 아내는
투박한 "갱상도" 말투의 할매에게서
고등어 7마리에 덤으로 3마리, 합이 10마리를 2만원에 샀다.
조기를 10마리에 덤으로 3마리, 합이 13마리를 2만5천원에 샀다.
바로 냉동실로 직행할 반건조 가자미도 덤까지해서 15마리를 샀다.
한동안 주방에 고기 비린내가 자주 번질듯 하다.
어물전 시세야 바다날씨에 따라 왔다갔다 하겠지만,
고등어 한마리에 2천원이라면 정말 저렴하다.
영일만 방파제에 고등어 낚시를 갔적이 있다.
낚시장비야 원래 가지고 있다고 치고,
바늘이며, 채비, 미끼준비, 방파제에 가는 뱃삯까지 생각하면,
그날 잡은 작은 고등어 대여섯마리는 가성비가 너무 떨어진다.
물론, 낚시의 재미와 고등어 활어회를 제외하면 말이다.
조기의 가격도 마찬가지 이다.
(물론 제사상에 올리는 큼지막한 참조기는 아니지만)
사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저렴한 가격의 조기는 참조기가 아닌
부세조기이다.
가격은 10배 이상 차이가 나고,
내입에는 다 맛있으니, 생애 마지막 조기가 아니면
굳이 참조기를 고집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참조기와 부세조기를 구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참조기는 머리에 다이아몬드가 박혀있다.
눈과 눈사이 머리뼈를 자세히 살피면, 참조기는 마름모 모양의 다이아몬드
골격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비싼것은 물론 아니고,
워낙 참조기를 선호 하다보니, 지금은 씨를 말리듯이 잡아서 비싸진거다.
집근처 막걸리 집에 사이드메뉴로
작은 사이즈의 조기구이가 몇마리 나왔다.
술잔을 부워주는 친구가 조기살만 대충 발라먹고,
대가리를 옆으로 밀쳐놓는다.
친구놈 대가리를 집어서 입안에 넣고 씹으며,
분쇄기로 돌린거 마냥 조기 대가리속 뼈다귀만
뱉어내니,
친구놈이 신기한 눈빛으로 맛도 없고,
뭐 먹을게 있냐고 한다.
막걸리집 주모가 '아이고~ 삼촌. 조기 먹을줄 아네' 하며
조기접시를 채워준다.
단골집 주모는 내가 조기가 맛있어 진것이
내가 나이가 들어 입맛이 봐뀐것이라도 했다.
나이가 들어서 입맛이 봐뀐것이 좋은일 일까?
나이가 든다는것이 좋은일만은 아닌데,
입맛에 맞는 음식이 새로 생긴것은 좋은일인 듯도 하다.
"이놈아.
너도 나처럼 나이가 들어보면, 조기맛을 알때가 올거다."
라고 친구에게 한마디 해줬다.
조기내장의 씁씁한 첫맛 뒤에는 짠맛의 고소함이
대가리의 비릿함 뒤에는 구수함이 묻어있다.
같이 앉은 밥상위에서 누군가가 조기대가리를 먹지 않으면,
나는 겪지못한 아버지 시대의 빈약한 먹거리와
그 먹거리 속에서 더 애달팠을 어머니의 상차림이 생각나
그 맛보다는 아깝다는 생각이 앞선다.
짭짤한 조기대가리에는 눈물맛도 같이 난다.
2019. 10. 20. ㅅㅓㄱ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