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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석 Sep 09. 2019

소소(So-So)한 하루.

한마리 4,500원

두마리 8,500원

세마리 12,000원


딱히 할일없는 일요일 오후,

소파에 기대  '저녁 뭐먹을까?' 라며

귀찮음이 묻어나는 아내 질문에

맥주나 한잔 하러 나가자고 했다.



둘다 편한 옷차림에 슬러퍼를 신고, 

잡동사니 파는곳에서 기웃거리다,  어슬렁 어슬렁,

'옛날통닭' 이라는 이름의 집근처 호프집으로 향했다.


'**치킨',  '000치킨'...

흔하디 흔한 프랜차이즈 치킨집들 사이로

'옛날통닭' 이라는 촌스러운(?) 이름이

오히려 유니크 하다.


튀김기름에 번들거리는 테이블이 싫어서

창가쪽 나무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포장을 해서 가면 가격이 더 착해서 그런지, 

주문하고 직접 찾아가는 손님들이 많았다.

밀린 배달에 주문한 통닭이 밀린다.


각양각색의 차림새와 표정으로 지나가는 직립보행자들을 구경하며,

아직은 100점 짜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시원해진 밤바람에 약간의 기다림도

느긋해 진다.


"이거 오천원이면 괜찬치?"

잡동사니 가게에서 산 작은 프라이팬을 

얼굴에 갖다대며 묻는 아내의 반달같은 눈이 착해보인다.




'넌 치킨먹을때가 제일 이뻐' 라는 가게안 글씨에 

치킨먹을때의 아내 얼굴을 연예시절의 심안으로 한번 지켜본다.


어디선가 들었던  '1인 1닭'  이라는 말이 생각나,

작은 사이즈의 통닭을  1인 1닭으로 주문했다.


아마도 삼계탕용 사이즈 인듯한 통닭이 두개의 트레이에 담겨 나왔다.


'남기는 사람이 돈내기 다~' 하며,

의기양양 비닐장갑을 끼는 아내 모습이 많이 어려보인다.






"가서 아버지 좀 모셔 오너라"

잘려고 내복만 입고 이불 속으로 들어갈려는데,

엄마가 말씀하신다.


자주도 아니고,  가끔도 아닌 빈도로

아버지는 노름을 하셨다.


지금 기억으로 11시는 족히 넘었을게다.

아버지를 모시러 가는길....


어찌보면 모시러 간다기 보다는

휴대폰이 없던시절, 엄마가 보내는 문자메시지 정도의 역할이었다.


가로등도 없는 그믐밤의 시골 골목길.

낮에 누가 본다면, 더듬이가 떨어진 곤충같아 보였을거다.


요즘으로 말하면  '하우스'

고물상을 하던 박씨 아저씨 집,  사랑방

동네 아저씨들 몇분이 모여  노란 백열등 아래서

노름을 하셨다.


방문밖에서 나지막히 아버지를 불러본다.

몇번을 불렀다. 

몇분이 한목소리로  "누구냐?"  하신다.

하기야, 그분들 모두 누군가의 아비이니, 

문밖 작은 목소리가 자기 새끼의 것인지 구분이 잘 안가는 모양이다.


"어~ 현수왔나? 

추운데, 빨리 들어온나. 아부지 모시러 왔는가베. 

어두분데 우에왔노. 허허허"

고물상 박씨 아저씨가 아랫목에 나를 당겨 앉혔다.


박씨 아저씨는 돈을 잃었는지, 아버지가 가는게 싫었던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눈길 한번 안주신다.



노름방 뒷편에 앉아있다보면, 

쏠쏠하게 용돈도 좀 생긴다.


담배연기, 누구의 아버지와 다른 누구의 아버지의 사소한 다툼소리,

그판에서 빠진 사람들끼리 부딪히는 소주잔 소리,  멀어지는 잡담소리....

미지근한 아랫목에서 살큼 잠이 들었나보다.



코끝에서 느껴지는 매콤한 냄새에 잠을 깼다.

'현수야. 일라봐라. 이거좀 무끄라.'


노름은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가 보다.

탁자위의 술병, 먹다남은 안주, 열댓병의 박카스, 배달나온 다방아가씨가 두고간

빨간색 보자기, 옆으로 누워있는 보온병과 커피잔....


박씨 아저씨가 밀어주는 까만색 냄비안에는

'닭도리탕'이 한가득이다.

-그시절에는 닭볶음탕이라는 말은 없었다-



감자를 어린애 주먹만하게 썰어넣고, 매콤하게 쪼린 닭도리탕.

그날 닭도리탕의 맛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단어는

내가 알기로는 없는거 같다.

냄비 바닥을 긁는 나를 보고, 아버지가 희미하게 웃으신다.


날이 희뿌연하게 밝을 무렵,

아무말씀 없는 아버지 뒤를 따라 집에왔다.



며칠후  9시 뉴스가 끝날무렵, 

"엄마~~ ,  아버지 모시고 올까?" 했다.


어머니는 그냥 두라 하셨다.







아침겸 점심이 적었는지,

크지는 않지만, 통닭 한마디를 다 먹어내는 아내.


난 가슴살이 퍽퍽하다며,  조금 남긴다.


프라이팬을  우승트로피 마냥 흔들며,

사기충만해서 앞장서서 가는 아내의 뒷모습에

가게안 글씨가 생각난다.








2019.  9.  9.       ㅅㅓㄱ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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