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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석 Aug 30. 2019

초조함을 버리고.....

동네마다 나름 유명한 빵집과 그집의 효자빵들이 있다.

안동 맘모스 제과  '크림치즈빵'

대전 성심당  '튀김소보루'

남원 명문제과  '꿀아몬드빵'....


내가 좋아한다고 딸아이가 경주에서 사온 '밤톨이'라는 이름의

빵도 참 맛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맛있는 빵은 참 맛있다.


게걸스럽게 먹는게 신경쓰이는지,

아내가 '빵은 우유랑 먹어야지 맛나다' 며

난 소화를 잘 못시키는 찬 우유를 한컵 가득 가져다 놓는다.


예전 대구 남산동 대한극장 사거리 근처에 '석탑제과'라는 빵집이 있었다.

학교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어

빵집 앞 횡단보도에서는 남,여 학생들이 자주 섞여 지나쳤다.

그집 단팥빵이 참 맛있었다.


고교시절 그 사거리에서 처음 만나 잠시 사귀었던,  

여자애와 같이 갔던 석탑제과 생각이 난다.

단팥빵, 소보루빵, 칠성사이다를 차려두고

시답잖은 이야기를 거창하고 진지하게 지껄이곤 했다.


아무리 조신하게 먹는다고 해도 소보루 같은 빵은 부스러기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내 눈을 피해 부스러기를 탁자 아래로 조심스레 쓸어내리는 그아이의

수줍던 손등이 참 하얬다.




TV 속보가 나온다.

최고권력자의 고삐를 잡고 있던 어떤 아줌마의 딸래미에게

말을 사준거를 가지고,

공부를 잘해 法服을 입게된 늙은이들 여럿이 고생을 한다.

그중 대장 늙은이가 하위법원으로 파기환송을 하게된 사유를

자기들만의 언어로 장황하게 설명한다.


고삐를 잡힌 아줌마의 무책임과 아둔함이나,  

고삐를 잡고 떵떵거리고 산 아줌마의

안하무인과 교활함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도 않다.

고삐 잡힌 아줌마에게 붉은색 인장을 찍어준 나의 죄도 있으니,


수십억짜리 말을 타며,  수많은 이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박탈감을 준 그 여자애의

어릴적 장래희망은 승마선수였을까?

아니면,  제일 튼튼한 고삐를 잡고있던 엄마가 그아이를 말에 태운것일까?

지금은 단벌의 옷만 입게된 고삐잡은 아줌마는 그 고삐를 놓게되지 않았다면

어디까지 달렸을까?


TV속 공항 인터뷰에서 말을 타던 그 여자애의 큰 눈이

예전 놀이공원에서 딸아이를 태워준 한바퀴에 삼천원짜리 조랑말의

힘겨운 눈과 오버랩된다.



속보가 끝나고 나니, 다른놈이 다시 나와 뉴스를 계속한다.


요즘은 조상때부터 대대로 살던 나라라는 조국이

'조국' 이라는 두글자의 홍수에 빠져있다.


그양반의 집에 그양반의 차가 주차 되어있다는게,

그양반 집에 창문이 열려있는데, 인기척이 없다는게

뉴스속보로 나온다.

정말 미친세상이고,

언론이라고 하는것들은 더 미쳐서 더 미친세상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쏟아지는 속보 속에 그양반의 딸래미의 진학, 장학금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물론 언론이 지껄이는 모든게 진실은 아닐것이다.

하지만, 흔히들 이야기 하는 '카더라'의 이야기를  '카더라' 보다

조금 짙어진  '맞는거 같더라' 정도의 이야기로 발전시켜 나가는 기술도 부린다.


그런 '카더라'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자식 가진 부모로서의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지는건 사실이다.

부정하고 싶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직업의 귀천과 사회적 지위, 경제력 또한

대물림 되고 있고 그렇게 될수밖에 없음과 해줄수 없음에 대해

새끼들에게 미안하고, 움츠려든다.


좌우진영의 색깔 또는 정치편향을 가지고 이런 미친세상을 보고 싶진않다.

그양반에 대해서는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시간이 그 좋은 인상의 결론을 보여줄거라 생각한다.







'빵보다는 과자 만드는걸 더 많이 배우고 싶다.'


지금 가진 그아이의 꿈은 맛있는 과자를 만드는 것이다.

거창하게 꿈이라고 까지 하지 않더라도

꼭 한번 해보고 싶은 것이라고 하는게 그아이의 소박한 말에 더 어울릴수 있겠다.


꼭 한번 해보고 싶은걸 찾을때까지 많이 걱정하며 기다렸다.

물론 그 아이는 나보다는 더 많은 고민을 했을것이고,

안들킬려고한 눈치도 보았을 것이다.


'빵보다는 과자 만드는걸 더 많이 배우고 싶다.' 라는 한마디에

일정부분 기대에 대한 포기와 맞을수도 있을거 같은,

맞았으면 좋을거 같은 해답을 찾은 느낌이다.

그렇게 느끼고,

설사 아니더라도 맞다고 믿고싶다.



과자를 만들어 보고싶다는것을 말하기 전에도

다른것들을 해보고 싶어했다.

그것을 안다.

그 해보고 싶은것들 중에 많은것을 제지했고, 부정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아니지만,

그때는 그것이 맞았다고 생각했고,

그 맞았다고 생각한 이유는 지금보다 조금은 더 많은 여지와 선택이 가능했다고 믿어서였다.



"너가 만든 과자 한번 먹어 보고 싶구나. 나중에 꼭 맞보여 주렴"

학원을 간다고 나서는 아들놈 등에다가 꾹꾹눌러 말했다.


'지금껏 해준것도 없고, 더 해줄수 있는것도 없구나'

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누구처럼 말을 사줄수도 없고, '카더라'의 말처럼 논문도 써줄수 없구나'

라는 말은 생각만 했다.


"군대까지 다녀온 놈이면 다 컸으니,

본인이 알아서 잘 할거다" 라고

내가아닌 모든사람들은 나에게 한결같이 이야기 한다.


'너만 아니면 아무 걱정이 없다' 라는

보고싶은 엄마의 말씀과 걱정이 생각난다.

그때 나는 내가 알아서 다했는지도 생각해본다.


혼자 떠드는 TV를 끈다.


밤톨이 빵이 참 맛있긴 하다.






2019.  8.  30.    ㅅㅓㄱ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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