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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석 Sep 20. 2019

북 상  (北上)

"태풍이 북상중입니다."

차안 라디오를 켜니, 앵커가 조바심이난 톤으로 이야기 한다.


이번 가을들어 두번째 태풍이다.

지난번에 왔다간 놈은 바람을 앞세웠고,

이번에 온다는 놈은 비를 데리고 온다고 한다.


기상청, 

당사자들에게는 억울한 이름이겠지만,

구라청이라는곳에서 겁을 덜 줘서 먹는 욕보다는

겁을 많이 줘서 먹는 욕의 강도가 약하다는걸 알았는지,

이번에도 겁을 많이 준다.


티벳지역의 유명한 속담이 생각난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진다면, 걱정이 없겠네....'


태풍은 이름도 다양하다.

예전에는 태풍 이름을 싫어하는 정치인의 이름  또는 애인의 이름,

또는 단순히 발생한 순서대로 번호만 붙힌 이름.

어느나라에서는 알파벳 순서대로 미리 만든 이름표를 사용했는데,

전부 여자이름만 사용했다가 성차별이라고 난리를 쳐서 변경했다고도 한다.


지금은 태풍위원회에 속한 나라별 고유언어로 만든 이름을 번갈아 쓴다고 한다.

'개미, 나리, 매미....'

14개 나라, 10개씩,  140개의 이름을 순서대로 사용한다고 한다.


또하나 재미있는건 피해를 많이 준 태풍의 이름은 없애버리고, 

다른 이름으로 봐꾼다는 것이다.

'매미'라는 못됬던 놈, 지금은 제명이 되었다.


작년에 왔던 '개똥이'라는 놈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이번에 오는놈은 '순둥이'라고 이름을 봐꿔 주었으니,

순하게 지나가겠지... 하는 

기대가 재미있기도 하고,

그 바램이 참 순박하고, 힘없어 보인다.

 


초등시절 '시철' 이라는 이름의 한반 친구가 있었다.

이름 만큼 속아지도 못된 놈이라 한반이 되자마자,

일주일 내내  운동장 뒷편에서

치고 박고 싸웠다.


한날은 그놈 주먹을 세게 맞았는지,

코피가 났다. 

당연히 그날 싸움은 패배로 끝났다.


집에 와서도 코피가 멈추지 않았다.



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다.

한밤 중,  안방 앞 마루에 엄마 다리를 베고 누워

코피를 멈추기를 기다렸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와 머리를 만져주는 엄마의

손길에 겨우 잠은 들었고, 

코피도 잦아들었다.


올라온다는 태풍의 이름이 '시철'이가 아니니,

못된놈은 아닐거 같다.



일하는 현장근처에 과수밭이 많다.

복숭아, 자두 같은 농사를 많이 한다.

과수밭 옆, 울타리에 붙어있는 붉은색의 현수막

'과일값 폭락이다. 정부는 대책을 마련하라 !!!'


정확히 무슨말인지 현수막 쓰여진 글씨만 봐서는 바로 이해가 되질 않았다.


어쩌란 말인지... 

과일 농사가 풍년이라  과잉생산으로 인해

기대값을 못받게 되었으니,  대책을 마련하라는 이야기 인것 같은데,


농사가 풍년이 든것도 정부가 책임을 져야 되는일인지 난 잘 모르겠다.

오죽 답답하면 저런 현수막을 붙이겠나 싶다가도,

복숭아, 자두 같은 과일이 정부 비축물자도 아닌데, 

정부도 딱히 대책이 없을듯 하여 

현수막 속 말들은  답답하고 처량해 보인다.


다행히 수확철이 거의 끝난 시절이나, 

북상중인 태풍에 아직 붙어있는 과일들은 피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그다음날 싸움은 시철이가 코피를 흘렸다.


그시절 시철이네도 사과농사를 많이 했고,

여름방학때 시철이네 원두막에서 먹던 옥수수는 참 맛났다.






2019.  9.  20.       ㅅㅓㄱ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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