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생긴 약속에 문밖을 나서는데... 비가온다.
그렇게 기다리던 비가 그렇게 기다릴땐 오지 않던 비가
이젠 흘러넘쳐 걱정인데 대출받으라는 스팸전화처럼
받기 싫어도 온다.
이래저래 볼일을 다 보고나니, 비가 그친다.
가지고 나온 우산은 또 하나의 짐이 된다.
비도 내가 자기를 싫어하는지 아나보다.
비소식이 예보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간약속 만큼은 늦지 않아야된다는 강박관념을 넘어선
강박장애로 인한 서두름에
비는 거실과 안방에서 나를 또 기다리고 있었다.
비는 나에게 만은 뒤끝도 있나보다.
외로움의 무게를 계근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의 외로움의 정도와 무게를 알수가 없으니,
상대적인 비교는 어렵겠지만,
그 다른사람보다 나의 외로움의 정도는 적지 않을 듯 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라는 익숙하게 들리지만,
딱히 정의내리기 어려운 철학적 말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걸 보니,
외로움이 중증으로 발전하는 모양이다.
자라면서 외롭지 않게 자라서 그 외로움을 모르게 해준 감사하고 고마운 주위가 점점 소멸하고,
잦아듦에 따라 그 주위의 不在를 인지하면서 못느꼈던 병증을 느껴가는거 같다 라는게
내가 내린 결론이다.
요즘 모바일에 유행하는 Band에서 누가 새글을 올렸나 보다.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동창들의 Band는 하루에도 수십개의 글과 또 그글에 대한
자의반, 타의반의 반응들이 소리와 함께 올라온다.
난 Band에 글을 한번도 올린적 없이 일명 눈팅만 한다.
난 동창회에 가질 않는다.
어머니가 일찍 곁을 떠나시고, 또 일찍 가셔서 인지 일찍 새장가를 가신 아버지.
또, 나의 짐작과 바램보다 일찍 아버지는 내가 태어난 고향이란 곳을 떠나셨다.
난 동창회에 가질 않는다.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것이 없다는 일종의 상실감이었나 보다.
오랫동안 만나던 여자와 매일의 아침을 같이 먹기로 했고, 그렇게 되었다.
20년을 넘게 아침을 같이 먹다보니, 더 준비할 것도 없고 고민할 것도 없이
답을 미리 알려준 객관식 문제처럼 너무 익숙하고 단조로운 뻔함의 시간이 찾아왔다.
그녀의 E-mail, 가입한 인터넷 사이트의 ID와 비밀번호, 통장계좌번호....
그녀는 자신의 것. 자신만 알아야 되는 것도 나에게 물어본다.
난 또 그것을 지체없이 알려준다.
-그녀는 나의 E-mail 주소 하나 모른다. -
문든 한번씩 그녀가 이질감, 생소함을 느끼게 해주는 말이나 행동을 보이면,
‘아직 내가 이해 못할 말과 못본 그녀의 행동이 남아 있구나’ 하며
그 생소함이 반갑기도 하다가도, 그 이질감은 그녀가 변해서 인지 아니면,
나의 변함이 원인 인지는 생각해봐도 모르겠다.
너무 오랫동안 아침을 먹어서 그럴수도 있겠지만,
결론은 나보다 그녀는 덜 외로울거란 사실이다.
이기적(利己的)인 마음과 그 이기적인 마음에서 오는 무책임함의 가벼움과
또 그 가벼움에서 오는 홀가분함이 좋았다.
그 좋음 때문에 나의 곁의 많은 것들이 떠났다.
하지만, 떠난것들을 다시 잡으러 나설만큼 난 이타적(利他的)이지도 않고
그 잊은 듯 지낸시간 또한 짧지 않다.
결국은 눈팅만 하고 탈퇴를 하지 않을 만큼 난 이기적이다.
뒤끝 있는 비는 싸움을 말린 훼방꾼이 없어진 듯,
다시 창밖에서 시비를 건다.
귀찮게 만든 비가 있어 외롭다는 생각은 잠시 다른 잡념에 묻힌다.
비와 이제 그만 화해해야 될거 같다.
2019.8.10 ㅅㅓㄱ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