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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석 Nov 07. 2017

북엇국

'어, 입술이 부르텄네?'


안경케이스를 잊어 버렸다며 일명 천원샾이라고 부르는

가게로 나를 끌고가던 딸아이는 어두운 밤, 어두운 조명에도

용케 알아보았다.


엄마보다 나에게 관심이 많은건지,

피곤해보이지만 선뜻 따라나서 주는 아빠와의

데이트에 기분이 좋아진건지는 모르지만,


딸아이의 그 알아차림에 외면하고 싶은 창피함이 돋아났다.




피곤했다.

전날의 과음에도 불구하고 연이틀 술을 마셨다.

철새들의 회귀본능과 연어들의 거슬러오름 보다 만취한 아저씨의 귀가능력이

더 뛰어난거 같다.


'집이구나' 라고 느낀게 다음날 10시,

안방 침대위에 얌전히 누워 눈을 떴다.

한참을 깨어 누워있었다.

간밤에 일들을 되짚어 본다.

중간중간 잊음과 약간의 뒤죽박죽은 있었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스토리는 이어졌다.


알지도 못하는 일종의 안도감이 생겨나고 그때서야 자신의 회귀능력과

자고있던 아내를 깨우지 않으려 노력했던 간밤의 가상한 기억에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가을을 탄다는 되먹지도 않은 핑게를 대며 일종의 일탈을 해보고 싶었다.


그 일종의 일탈이라는게 주말부부 생활을 하는

-주중에 혼자 생활하는 중년의 술 좋아하는- 아저씨가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음탕한(?)  그런 일탈은 아니었다.


여자친구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정치판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요즘 정치판에 더 자주 나오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이라고 치부할수도 있겠지만,

솔직한 표현이다.

나를 모르는  말이 통하는 이성(異性)과 시답잖고,  마음에 안담아도 되는

가벼운 대화를 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아내와 무슨 문제가 있는것도 아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남자들은 가끔씩 이쁜 여자 보다는 낯선 여자를 만나고 싶어한다' 하는 말이

딱맞지는 않지만, 약간의 이유로 설명될 수 있겠다.


똑같은 생활속에서 약간의 긴장감과 낯섬을 느끼고 싶어서 일까?

나이가 나보다 열살도 더 많은 중늙은이가 자랑하듯  '생활의 활력소'라고 말한 무언가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일까?


아내와 나와는 아무 문제가 없다.   -내 생각에는 그렇다-

아내는 지금도 아름답고   -이것도 내눈에는 그렇다-

나한테도 잘 대해 주고, 얘기도 잘 들어준다.


긴 연예기간을 빼고도 20년을 넘게 부부로 살았다.

차라리 '나' 보다 '너'를 더 잘 알정도이다.

-혼자 살아온 시간보다 같이 살아온 시간이 더 많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수도 있겠다-


동료들과 함께  2차로 찾은 단골식당에서 주인아주머니한테 술이 취해 건넨 

장난스런 말이 많아진 술병 앞에서 약속으로 변했다.

고민스런 다음날,

'약속을 했으니, 우짜겠노' 하는 생각은 낭패스러움과 망설임을 냈다.


무슨 선을 보는 자리도 아니고,  -지금 생각해봐도 좀 웃긴다-

커피숍에서 미국커피를 한잔하며 인사를 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식당 주인아주머니는 장사를 한다고 가버리고,

같이 나온 예비 여자친구(?)와 남게 되었다.

할말이 없고, 딱히 궁금한것도, 그러니 물어볼것도 없었다.


그때 든 생각은  '커피숍에서 다른(?)여자와 둘이서 앉아본게 아내외에는 없구나'

-이것도 큰 일탈이다 라고 생각할만큼 난 착한걸까?-


전날 술이 취해 주인아주머니한테 괜한 말을 했다며 씨알도 안먹히고,

또 그 씨알이 먹히면 싸대기를 맞을 만한 이야기를 횡설수설 거렸다.


본인도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나 나눌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

나왔다며, 저녁겸 술이나 한잔 하자 한다.

상견례 중  못마땅해 하는 예비 시어머니 또는 장모와 둘만 있는듯한 이런 어색함 보다는

그냥 술이나 한잔하고 빨리 가는편이 좋겠다 싶었다.


술자리도 어색하긴 매 한가지,

아는 동생이라며 여자가 한명 합석,

잠시후,  그 아는 동생의 신랑이라며 나보다 대여섯살 많아 보이는 대머리 아저씨가 또 합석한다.


술을 마셨다.

깨지않은거 같았던 전날의 술이 깨는거 같다.


-네명의 테이블에서 난 술병과 대화하고 있었다. 세명의 같은 색깔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난 이해하기 어려웠다-


피식 웃음이 났다.

을 다시 잡았다.


마지막 기억은 그 대머리 아저씨에게 정중하게 잘먹었다고 인사를 했다는것이다.

아마 그 대머리 아저씨가 집으로 오는 대리차량을 태워준듯 하다.



아무도 없는 정오의 식탁에서 아내가 차려둔 북어국을 앞에 두고

허한속에 커피를 한잔 마셨다.


거실 창밖에 가을볕이 참 좋다.

창을 활짝 열고 담배연기를 깊게 한모금 삼켰다.

흩어지는 연기속에 가을은 많이 짙어진듯 바람이 제법 차갑다.


이렇게 가을은  또 가는가 보다.

일탈을 해봤으면 하는 잔망스런 생각도 가을과 함께...




빨랫대에 걸린 옷가지에서 바싹 마른 솜이불 냄새가 난다.






2017.11.6     ㅅㅓㄱ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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