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ADHD EP02.
MBC 예능 <라디오스타>에 권상우가 나와서 결혼하면서 생긴 의문점을 얘기한다.
"나는 왜 맨날 혼나지?"
예상치 못한 말이 나와 빵 터졌다. 그런데 웃음 이후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공감이 많이 가고 마치 내 심정을 얘기하는 듯했다.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할 때면 혼나기 일쑤였다.
ADHD인들의 특징 중 하나가 머릿속에 있는 말들이 나도 모르게 밖으로 나온다는 점이다.
단순히 생각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고 있다.
노래를 부르는 게 별 문제는 안 된다만, 가끔은 여자친구를 화나게 할 때가 있다.
한번은 여자친구와 드라이브를 하고 있었다.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 여자친구가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는 걸 재미있게 들으며 운전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막을 새도 없이 나도 모르게 노래에 정신이 팔려 흥얼거렸다.
"예뻤어~ 날 바라봐 주던 그 눈빛~"
바로 여자친구의 옐로우 카드가 나왔다.
"소양아, 너 내 얘기 듣고 있는 거야? 얘기하는 중에 노래를 갑자기 부르는 법이 어딨어..."
"미안해, 나도 모르게 그만... 안 그럴게."
이놈의 정신머리 여자친구가 한참 얘기 중인데 노래로 맥을 끊다니... 스스로도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정신을 바로 잡고 운전에 집중하며 여분의 집중력으로 여자친구의 얘기에 집중했다.
한 30초 지났을까.
"예뻤어~ 더 바랄 게 없는듯한 느ㄲ... 헉"
"너 뭐 해?"
난 전생에 금붕어였던 걸까. 어떻게 1분도 지나지 않아서 바로 또 실수를 하는 것일까.
한 번의 기회는 지나갔고 레드카드를 받고야 말았다.
여자친구는 내가 대화에 아예 집중을 안 한다고 생각했는지 단단히 화가 났고 기분을 풀어주는 데 많은 노력을 했다.
여자친구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억울했다.
'나도 일부러 이러는 게 아니라고!!!'라며 속으로 소리 없는 아우성을 외쳤다.
비 ADHD인들은 이해하지 못할 수 있지만, 진심으로 여친의 얘기에 집중을 했지만 나도 모르게 정신을 빼앗겼다.
배고플 때 길을 걷다 맛있는 냄새가 나면 나도 모르게 홀린 듯이 그쪽을 보게 되듯, 내 의지지만 의지가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다.
한번은 여자친구와 대학병원에 간 적이 있었다. CT촬영 결과를 들으러 가는 것이었는 데, 결과가 안 좋진 않을까 둘 다 조마조마한 상황이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여자친구였기에 내가 보호자로서 잘 케어해 주고 안내를 해주어야 했다.
그런데 보호는커녕 내가 챙겼던 서류를 잃어버려 혼란만 커지고 병원에서 서류를 다시 뽑는 등 번거로워지기만 했다.
내가 ADHD 판정받은 것을 알고 있던 여자친구는 많은 부분을 이해해 주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꽤 실망한 듯했다.
다른 때도 아니고 아프고 걱정이 되어 제대로 보호자 역할을 해주어야 할 때인데, 오히려 혼자 갈 때보다 못한 상황이 생기니 얼마나 마음이 안 좋았을까.
이때 스스로를 질책해 봤지만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막막해 많이 속상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 시트 아래에서 발견된 종이는 마치 나에게 "약 오르지? 약 오르면 니가 어쩔 건데 메롱"이라고 하는 듯했다.
물건 잃어버리는 것은 어릴 때부터 고질병이었다.
비 오는 날 만약 오후에 비가 그친다고 예보가 나와 있으면 난 아예 상태가 안 좋은 우산을 챙겨 나간다. 높은 확률로 어딘가에 놓고 오기 때문이다. 우산을 집으로 100프로 챙겨 오는 날은, 집 올 때도 비가 오는 경우 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난 자연스레 저렴한 우산만 사게 되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짐을 나가는 방향 쪽 다리 옆에 놓는 습관이 있다. 그래야만 까먹지 않고 짐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한번은 노트북을 넣은 가방을 가지고 시내버스에 탄 적이 있다. 이 때는 습관이 생기기 전이라 창가 쪽에 가방을 놓고 정신없이 휴대폰을 보다가 목적지에 내렸다. 내리고 10분 정도 지나고 나서 가방을 놓고 내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두 번이 아니기에 사실 화도 안 난다. 바로 지도앱을 켜서 내가 탄 버스를 추적해서 위치를 찾고, 만날 수 있는 정류장으로 가서 버스를 다시 탔다. 다행히 그 자리 그대로 노트북 가방이 있어 안전하게 회수할 수 있었다.
잊지 않기 위해 적지 않은 방법을 시도해 봤다. 외출하는 김에 쓰레기를 버리려고 차에 봉투를 실었다가 자꾸 까먹으니, 쓰레기 배출지까지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하며 무한외침을 한다던지. 나갈 때 챙겨야 할 물건을 잊지 않기 위해 현관문에 포스트잇을 붙여 놓는다던지.
수많은 시행착오로 알게 된 것은, 내 기억력을 강화하는 방법은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이다. 난 내 기억력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뢰하지 않으니 더 해결이 쉬웠다. 내가 발견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방법을 설계하면 된다. 마치 버스에서 나가는 방향의 발 옆에 짐을 두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병원에서의 일처럼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거나 파훼법을 사용하기 힘든 상황에서는 한 없이 무기력해진다.
요즘은 더 이상 스스로를 질책하는 데에 지쳐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인다.
이게 내 운명인 것을 어쩌겠는가.
이런 성격도 나름의 장점이 있다.
바로 타인의 실수에 관대하다는 것이다.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정말 실수라면 웬만한 경우 화가 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웃기다.
만약 내 생일 때 케이크를 엎어 버린다든가, 내가 아끼는 물건을 파손시킨다던가.(사실 내가 남에게 한 짓들)
난 괜찮다. 내가 그보다 더 한 것을..
이런 성격 덕에 운전할 때에도 별로 화가 나지 않는다.
나도 실수와 이상한 짓을 많이 했을 텐데 내가 화내는 것도 웃기기 때문이다.
(근데 깜빡이는 너무너무 짜증 난다. 실수가 아니니까. 손가락 한 번 까딱하는 게 그렇게 힘드냐?!!)
이렇게 보면 마치 단점 밖에 없는 ADHD 같지만, 막상 또 그렇지도 않다.
ADHD인에겐 다른 이들은 없는 나름의 필살기로 빛을 발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