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나는 ADHD 05화

선 지켜? 난 선으로 줄넘기를 해

나는 ADHD EP05.

by 소양

"소양아 우리한테 벽치는 거야?"


알바를 시작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매니저님이 농담을 섞어 물어봤다.

일을 시작하고 줄곧 대화를 하면 기본적인 리액션만 하고 최대 존대를 하며 선을 넘지 않는 내가, 내심 거리 두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서운한 마음에 물어보았던 것이다.

사실 아닌 말은 아닌 것이, 남들은 자연스럽게 말도 놓고 점점 편안한 관계를 만들어갔지만 난 맨 처음의 관계를 쭈욱 유지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근데 제목에선 줄넘기를 한다며?


이게 다 사정이 있다.



대학시절 동아리를 했었다.

다음 기수에 부회장을 맡기로 하여, 현 회장 형과 예비 회장 친구 그리고 나 총 세 명이 기념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그 시절 술자리가 늘 그렇듯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자 진지한 얘기들을 하게 되었다.

동아리에 운영에 대해서 꽤나(?) 심각한 얘기를 했었고 쓴소리 아닌 쓴소리도 하셨다.

쓴소리를 한 후 이제는 때가 되었다는 듯이 말을 놓자고 하였다.

새로운 시작과 함께 더 끈끈해졌다는 뜻이었을 테다.


"으흫 그래, 준혁아! 그렇게 하자. 준혁아@@"

(가명)


이미 술은 양껏 들어갔고 전두엽은 전원이 꺼진 지 오래였다.

평소에도 잘 지키지 못하는 선이 이젠 아예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나사가 빠져버렸던 나는 그만 호형호제가 아닌 친구가 되어버리기로 해버린 것이다.


그 뒤 친구의 증언에 따르면 이때 그 형의 가장 큰 사자후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진지한 분위기 속 결심을 다진 술자리는 나의 찬물에 흐지부지 마무리가 되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혼나던 장면은 뭔가 흐릿하게 기억이 남아있다.



농담을 하거나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게 될 때 선을 지키는 것이 참 어려웠었다.

그 과정에서 실수를 하고 갑분싸가 되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러다 보니 내 나름의 전략이 생긴 것이다.

바로 '가만히 있기'

EP05.png

포켓몬스터에 잉어킹처럼, 그냥 최소한의 리액션만 하는 인간잉어킹이 되기로 한 것이다.

그러면 적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되거나 무겁지 않은 자리인 경우는 눈치를 살살 봐가면서 마음을 놓지만, 일을 할 때는 선을 지키는 것이 참 어렵다.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는 거리를 둔다고 생각할 만큼 오히려 선을 과하게 지키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나도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방법을 모를 뿐.



이런 성격은 아직도 남아있다.

여전히 어려움이 있지만 그 전과 차이가 있다면, 왜 이런 특성을 지니게 되었는지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선에 좀 더 다가가기 위해 책과 검색을 통해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


1년 정도 지나면 나도 잉어킹에서 갸라도스가 되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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