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원 Jun 07. 2024

정신과 초진의 기억

정상일까 두려웠던,

예약을 하고, 약 2주간의 시간동안 어떻게 버티며 하루하루를 보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편린처럼 남아있는 기억은 가끔 다이소에 가서 쓸데 없는 스티커를 2만원어치씩 사서 

다이어리에 마구잡이로 붙이거나,

하루종일 지인의 전화통화를 붙잡고 끝나지 않는 밤을 밀어내려고 

한 얘기를 수도없이 또하곤 했던 일이다.


정신과에 가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대가 되었다. 

요새는 정신과에 가는 것이 흉도 아니었기에, 

나는 이렇게 갈데까지 가서 정신과에 갈 수도 있을만한 상황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정신과를 한번도 안간 나에게 정신과는 금단의 영역같았다.

엄청나게 힘든 일을 겪지 않은 사람은 가서는 안되는 금단의 공간

마치 '별 것도 아닌 일로 왜 여기 왔냐'라는 타박을 들을까봐 두려웠다.


오히려 정상이라는 얘기를 들을까봐 겁에 질리기도 했다.

삶에 이만한 고통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지고 다니는 것이라고. 

당신이 나약해서 이만한 고통도 버티지 못하고 엄살을 떤다는

뉘앙스라도 듣게되면 나의 쿠크다스보다 약한 영혼은 바스닥거리다못해 가루가 될 것 같았다.


우리팀의 모든 직원은 팀장 때문에 괴로움에 허덕이고 있었다.

아침부터 시작되는 험악한 분위기 조성 탓에 아침부터 상쾌한 마음으로 업무를 시작하기는 커녕

메신저로 그의 기분을 살피기 바빴다. 


하루 8시간 이상을 함께 근무하는 직원들이 모두

팀장으로 인한 괴로움을 호소했기 때문에

나는 이 괴로움이 정상적인 것인지 아니면 병리적으로 우울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을지를 궁금해했다.


초진시간보다 30분정도 일찍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은 아주 깨끗하고, 들어가 앉아 대기하는 것만으로도 

어딘가에 소속된 것만 같은 안정감을 주었다. 

예약하기 전 병원 블로그에서 원장 선생님이 자신의 병원에 대해 조곤조곤 얘기하는 글을 읽었었는데,

병원에 들어갔을 때도, 그 블로그에서처럼 차분하고 조용한 병원의 인상에 안심이 되었다.


간호사 선생님께서 건네주는 자가검진표에 체크를 했다. 

생각보다 꽤나 많았던 검진항목 중에 하나는 

자살사고가 있는지에 대한 문항이었다. 


살고 싶은지 아닌지를 이분법적으로 물어본다면,

나는 살고 싶은 사람에 해당했다.

나는 아직 살아서 하고싶은 게 너무 많았다.

전업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세상에는 아직 가보지 못한 여행지도 많았다.

그 때는 코로나를 걸리기 전이었기 때문에

체력은 약했지만, 그럼에도 체력이 약해서 못할 일은 없었다. 


그래서 병원에 오기 전에 내가 우울증이 맞는지에 대해 가장 혼란스러운 부분이 이 부분이었다. 


나는 없음에 체크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은 우울증이 아니고 정상이니, 

돌아가서 계속 괴로운 삶을 영위하세요.'라는 말을 들을까봐 떨고 있었다. 


곧 내 순서가 되어 진료실로 들어갔다. 

선생님의 상담실은 창문이 많았다. 

거기서 선생님과 함께 마주했던 하늘을 보며, 내 이야기를 들어줄 공간에 들어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선생님은 무슨 일 때문에 어떤 증상이 생겨서 오셨는지 물었고,

나는 25분~30분 정도 혼자 내 얘기를 했다.


아마 엄청나게 횡설수설 얘기했을 것이다.

울지는 않았지만, 울먹거렸다.

이야기를 쏟아내느라고 우는 것도 아깝게 느껴졌었다.

팀장 때문에 비롯된 괴로움은 2,3년 동안 지속된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이 괴로움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까

선생님께서 이 괴로움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까 혼란스러웠지만,

같은 팀 팀원이 아닌 제3자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마음에

마구 이야기를 쏟아냈던 기억이 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