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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적운 Sep 14. 2022

폐쇄 병동, 코로나로 폐쇄되다

퇴원까지 몇 발자국?

2022년 3월 4일, 입원 39일 차


아침부터 난리였다. 한 환자가 인후통 증상이 있어 격리실에 가 PCR 검사를 받았는데, 세상에, 양성이 뜬 것이다. 곧바로 병동 내가 아비규환이 되었다. 환자들을 대상으로 전수조사가 진행되었다. 모든 간호사들은 방호복을 입고 다니기 시작했고, 병동 환자들에게는 '병실 밖으로 절대 나오지 말라'는 특단의 조치가 취해졌다.

저녁밥을 먹고도 한참이 지난 후에야 담당의가 찾아왔다. 그는 얘기할 것이 있다며 말을 이었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라 진심으로 충격을 받았다. 바로, 1인 코호트(격리) 혹은 퇴원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통원 치료가 어려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각 4인실인 병실을 혼자 쓰도록 하고 다른 환자들끼리 최대한 생활 반경과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 '1인 코호트'. 대부분의 환자들에게 퇴원을 권고하고 있긴 하지만, 내 주치의인 교수님께서 나에게는 퇴원보다 이곳에서 계속 지내면서 치료를 받는 편이 좋겠다고 하셨다며,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물어왔다. 나는 퇴원하지 않고 이곳에 남겠다고 말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선생님은 내일부터 내 병실, 내가 지내던 이곳에 남아 혼자 지내면 된다고 했다. 자해 여부가 걱정되셨는지 하고 싶어지면 그때 꼭 말해 달라고 신신당부하시기도 했다. 제발 하기 전에 말해 달라고.

취침 약까지 다 먹은 후, 방에 혼자 누워 있는데, 갑자기 담당의가 찾아왔다. 늦은 시각이라서 많이 놀랐다. 그는 나를 면담실로 데려가 나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넸다. "급하게 퇴원하게 된 분이 많아 그분들 위주로 먼저 상담을 진행했어요. 그러다 보니 적운 님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비교적 늦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어요. 이 부분에 대해 굉장히 죄송합니다." 나는 이렇게 사과해 주실 줄도 몰랐고, 그 부분에 대해 조금 불안하긴 했어도 기분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굉장히 감동적이었다. 동시에 죄송한 마음도 생겼다. 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죄송하다 말하니 담당의는 손사래를 쳤다. 치료자가 의료진에게 죄책감을 느끼면 안 된다고 말씀하시며, 그렇게 될 경우 두 사람 사이 거리는 멀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이제 병동에는 대여섯 명밖에 남지 않았다. 병동에는 적막만이 흐른다. 누가 틀어놓았는지 모르겠는 텔레비전의 소리가 문 너머로 들려온다. 괜히 반갑다.




2022년 3월 7일, 입원 42일 차


담당의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나는 한 번 더 검사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음성 판정을 받았다.

담당의의 확진으로 인해, 당분간은 새로 오신 1년 차 레지던트 선생님과 면담을 진행하기로 했다. 선생님은 내게 숙제를 내주셨다. 바로 일주일치, 한 달치, 일 년치, 십 년치 버킷 리스트를 작성해 보는 것이었다. 십 년 뒤에 과연 내가 살아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동시에 진지한 마음을 담아 리스트를 작성했다. 스페인 여행하기, 홋카이도 여행하기…… 적고 보니 여행 이야기가 많았다. 생각해 보면 코로나가 유행하기 전에는 매년 꼭 해외여행을 두세 번씩 다녔던 것 같은데. 최근에는 어디에도 갈 수가 없었다. 이것도 내 우울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을까?

코로나가 어느 정도 괜찮아지면 꼭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 일단 이 병원부터 코로나가 잠잠해져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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