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감정 그래프는 진폭이 크다
2022년 3월 2일, 입원 37일 차
개강을 했다. 병원에서 수업을 듣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 휴학을 할지 말지 오랫동안 고민했는데, 결국에는 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코로나 때문에 대부분 비대면 수업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너무 걱정하지 말자. 어떻게든 되겠지. 이번 학기는 부디 힘들지 않은 학기가 되길 바란다.
아침에 수간호사 선생님과 짧게 대화를 나눴는데,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다. 특히 감정을 다루는 것에 대해서.
감정에 옳고 그름은 없다. 그 감정을 느낀 것에서 옳고 그름을 따질 수는 없다. 그러나 행동에 옳고 그름은 있다. 우리가 화가 난다는 이유로 남을 해쳐서는 안 되는 것처럼.
자신의 감정을 인정할 때 신기하게도 그 감정은 누그러진다. 내가 화가 났고, 왜 화가 났는지 등을 인지하는 순간, 감정은 누그러들 것이다. 만일 누그러지지 않아도 괜찮다. 어쨌든 감정을 인정하고, 자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게 해 보자. 지금 나한테는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 급선무다.
전공의와의 면담에서 나는 살고 싶은 욕구(혹은 욕망)가 강한 사람 같다는 말을 들었다. 하고 싶은 것도 있고 좋아하는 것도 많고. 선생님은 "어떻게 하면 더 살고 싶어질까?"라는 말을 하셨다. 모르겠다고 대답하려다 참았다. 선생님과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모르겠다'라고 말하지 않기. 어떻게든 생각해내기. 떠오르는 것을 말해 보기. 선생님은 내게 말했다. "적운 님은 다 생각하고 있고, 다 알고 있는데, 자꾸 모른다고 말하고 덮어 두려고 해요. 우리 같이 그 생각을 더듬어 봐요.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전공의는 나에게 숙제를 내주었다. 바로 '감정표현의 종류 적어 보기'. 소노부터 대노, 박장대소 등, 생각나는 감정은 다 글로 표현해 보기. 쉬울 것 같았는데 막상 해 보니 어렵더라. 스무 개쯤 적으니 더 이상은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감정의 종류를 적어 보는 것도 어려웠지만, 무엇보다도 나의 감정을 인정하는 일이 생각보다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지금 나에게 제일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중요하다는 걸 알기에 더더욱 어렵게 느껴지는 건 아닐까?
내 감정을 인지하고 인정하다 보면, 언젠가는 더 나아가 나 자신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순간도 오지 않을까? 그게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