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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적운 Sep 07. 2022

분노도 조절이 가능한 거였나요 上

내 감정 그래프는 진폭이 크다

2022년 2월 14일, 입원 21일 차


담당의가 바뀌었다. 작년 입원했을 때 나를 담당하셨던 전공의 선생님이 다시 나를 담당하시기로 한 것이다. 익숙한 사람이라 면담이 어렵지 않다. 처음 보는 선생님이었다면 마음속에 높은 벽이 생겨 대화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참 다행이다.

담당의와의 면담에서는 왜 자해나 자살 충동이 심한 것인지, 지금 가장 스트레스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학교를 다니는 것이 당장 가장 큰 스트레스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다른 친구들은 다 잘 해내는 것, 수업에 출석을 하고 제때 과제를 제출하는 것 등이 너무도 어렵다고 했다. 선생님은 휴학을 하면 나아질 것 같냐고 물으셨다. 나는 그건 또 아니라고 대답했다. 휴학을 한다면 이미 졸업을 하고 취업까지 마친 대부분의 동기들과 나를 비교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나이를 먹고 또 휴학을 하면서 졸업을 미루다니. 하고 싶은 것도 찾지 못한 채로……

담당의는 내가 자기혐오와 자아비판이 너무 심하다고 하였다. 그래서 숙제를 내주셨다. 그건 바로 하루에 세 개씩 잘한 일을 적는 것이다. 어릴 때 쓰던 감사 일기가 떠올라 살짝 웃었다. 그래도 꾸준히 써 보기로 했다. 담당의와의 약속이니까. 매일 자기 직전에 적어 봐야지.




2022년 2월 18일, 입원 25일 차


오늘 면담 때 담당의가 내게 '성과를 내는 것만이 잘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해 주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잘하는 것이라고. 예를 들어, 자해를 하지 않고 지금까지 참아온 것도 잘하는 것이고, 면담 때 나 자신을 숨기려 하지 않는 것도 잘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한테 계속 잘하고 있다고 말해 주는 사람(담당의)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나는 왜 나한테 이렇게나 박한 것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나를 사랑하고 용서하는 일이 쉽지가 않다. 내 안의 변호인을 얼른 키워야 할 텐데……




2022년 2월 23일, 입원 30일 차


오늘은 복지사 선생님과 개인 면담 시간을 가졌다. 나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며, 내 가족들은 어떤 사람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등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 와서 옛날 얘기를 하자니 어린 시절의 기억을 끌고 와서 '이때 이래서 나 힘들었어!'라 말하는 기분이 들어 공연히 민망했다. 25살이나 먹고. 내가 이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자 복지사는 나이 45살 먹은 분들도 다 초중학생 때 부모님 때문에 힘들었단 이야기를 하며 엉엉 운다고, 괜찮다고 말했다. 오히려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

나는 부모님이 나에게 거는 기대에 대해 말했다. 부끄럽게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영재 소리를 듣고 자랐던 나는, 실제로 또래들보다 여러 방면에서 습득 속도가 빨랐다. 그래서 부모님은 분명 나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을 것이다. 현재 나는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만한 대학교에 재학하고 있긴 하지만, 아마 부모님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부모님은 서울대를 원하시지 않았을까.) 그러니 나는 실패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복지사는 나의 낮은 자존감과 스스로를 향한 '가치 없음'에 대한 비난이 모두 부모님의 지나친 기대, 그 높은 바람과 시선을 그대로 답습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했다. 엄마와 아빠는 늘 내가 더 잘하길, 내가 더 열심히 하길 바랐다. 나 역시도 그랬다. 그러니까 적어도 내가 지금보다는 더 열심히 살길. 그래서 난 게으른 내가 너무나도 싫었다. 열심히 살고 싶었다. 복지사는 나의 '열심히 살고 싶다'는 생각은 사회적인 욕구라고 했다. 인간은 천성이 게으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게으른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즉, 내가 계속 열심히 살고자 하는 것은 부모님의 영향이며, 부모님의 시선으로 여전히 나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내가 남 탓을 너무 안 한다고 했다. 지금 내 성격이나 내가 겪고 있는 문제(불안, 낮은 자존감, 낮은 자기만족, 충동, 공격성 등)는 분명히 내가 어린 시절 겪어 온 상황 탓이고, 어머니, 아버지, 언니, 할머니, 그때의 친구들 등 모두가 다 조금씩 지분을 가지고 있으니 모두를 탓하면 된다고 했다. 그 말씀에 나는 "저는 착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남 탓을 하면 착한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답했다.

복지사는 나에게 자기 연민이 필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이미 충분하다고 말했는데, 그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난 지금껏 내가 자기 연민과 자기혐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아주 오랫동안 그 쳇바퀴를 굴리며 살았다고 생각했다. 지독한 자기 연민의 늪이 너무도 싫었다. 그러나 복지사의 말을 들으니, 그래도 내가 심각한 자기 연민을 앓아 온 건 아니었구나, 나 그래도 잘못하지 않았구나, 싶어 마음이 안정되었다.

자기 연민에 빠지는 건 물론 좋지 않지만, 지금 나에게는 자기 연민이 꼭 필요해 보인다고 복지사가 말했다. 이제 채찍질은 충분하니까 스스로를 다독여 주라고. 부모님의 시선에서 나를 바라보는 것은 당장 멈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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