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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적운 Sep 19. 2022

비약물적 치료의 시작

퇴원까지 몇 발자국?

2022년 3월 16일, 입원 51일 차


오늘 처음으로 tms 치료라는 것을 해 봤다. 머리에 어떤 기계를 대고 일정 시간 동안 자극을 주는 건데, 물리치료를 받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아플까 봐 걱정했는데 오히려 너무 괜찮아서 졸아버렸다. 졸아도 괜찮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바로 효과가 나타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나는 한두 번 정도 받아 보고 효과가 있으면 지속하기로 했다. 얘가 주는 효과는 정확히 뭘까? 항우울? 항불안? 아무튼 비약물적인 치료도 시작한 것이 좋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전공의와의 면담에서, 퇴원을 한 후에 어떻게 지낼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님들과 가족들은 내가 본가에 들어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내 자취방에서 지내고 싶다. 고등학생 때부터 밖에 나와 살던 나는 혼자 사는 데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본가는 서울과의 거리가 멀어서 그것도 싫고, 온전한 '내 방'이 없는 것도 싫다. (나는 어릴 때부터 친언니와 한 방을 같이 써 왔다.) 사실 이 모든 건 핑계고 그냥 본가라는 곳이 주는 느낌이 퍽 안정적이지만은 않기에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면담 때 나는 '다음 주 토요일에 퇴원하기를 원한다'라고 말씀드렸다. 전공의는 주치의에게 전달해 보겠다고 했다. 내가 먼저 퇴원 시기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길 기다리고 있었다고도 덧붙였다. 밖에 나가서 뭘 할지 기대하고 생각하기보다는 전에 주치의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대로 이곳에서의 관성을 살려, 관성을 따라서 살아야겠다. 그래도 데굴데굴 잘 굴러갈 수 있도록 관성을 만들어 두었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나가 봐야 알겠지.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잘 지내는 것. 그게 최우선의 목표다.




2022년 3월 18일, 입원 53일 차


복지사 선생님과 퇴원 전 면담을 진행했다. 점점 퇴원에 가까워지는 것이 실감이 난다. 퇴원 날짜는 다음 주 토요일이 아닌, 다음 주 수요일로 정해졌다. 주치의 선생님은 살짝 이른 감이 있어 걱정이 된다고 하셨지만 나는 왠지 잘 지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죽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도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다른 걸 할 수 있다든지, 하는 방향으로.

복지사는 내가 자기 표현력이 부족하다고 했다. 여기서 자기 표현력이란 자신을 과시하듯 드러내는 것이 아닌, 내 의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한 마디로 '잘 거절할 줄 아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는 지독한 회피형 인간이라고 스스로를 일컫곤 했는데, 자기 표현력이 굉장히 낮은 사람이라는 표현을 쓸 수도 있겠다.

또, 그는 내가 통제 욕구가 과하게 강하다고 말씀하셨다. 나 자신에 대한 통제도 그러한데, 문제는 내 주변 상황에 대한 통제 역시 강하다고 했다. 사실, 너무도 당연하지만, 내 주변 상황을 내가 통제할 수 없는데 말이다. 그러니 부디 '그럴 수 있다'라는 생각을 잊지 말라고 하셨다. 그동안 면담을 하면서 지겹도록 들었던 말이라 조금 웃겼다. 내가 정말 심하긴 한가 보다, 싶어서.


복지사 선생님께 편지를 써 드렸다. 그동안 감사했다는 마음을 담아서. 복지사와 얘기를 나눌 때면 유독 마음이 편안해져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내리 면담을 진행할 수가 있었다. 참 신기하지. 지금껏 (병원 밖에서) 상담을 할 때면 라포 형성이 잘 되지 않아서 5회기 정도에서 꼭 그만두곤 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내가 복지사 선생님께 많이 의지하고 있었기에, 아마 복지사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병원에서 이렇게까지나 편안함을 느끼지는 못했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입원 기간 동안 여러 치료진들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 라포 형성도 잘 되었고. 퇴원을 앞둔 지금에서야 나와 내 주변을 돌아보고, 많은 분들께 감사함을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내가 자라났다는 거겠지.

이제 정말 퇴원이 눈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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