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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적운 Sep 21. 2022

퇴원까지 한 발자국

퇴원까지 몇 발자국?

2022년 3월 22일, 입원 57일 차


두통이 조금 심해졌다. tms 치료 때문일 수도 있다는 전공의의 말에, 앞으로 tms 치료는 받지 않기로 했다. 퇴원 후에도 말이다.

마지막 날이니 더 평소처럼 보내고 싶었다. 자주 그랬듯 간식 노트로 컵라면을 시켜서 저녁 대신 먹었다. 오늘을 최대한 평범한 하루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퇴원을 하면 당분간 라면은 끊어야겠다. 너무 자주 시켜 먹었다.

전공의와 면담을 하느라 학교 실시간 강의에 참여하지 못했다. 같은 이야기가 빙빙 도는, 조금은 답답한 면담이었음에도 수업보다는 나았다. 마지막을 만끽하고 싶었다. 잘 만끽한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런 것으로 후회하지는 않기로 다짐했다.


복지사와도 짧게 마지막 대화를 나눴다. 그는 나가서 꼭 잘 지내야 한다며 내게 응원이 담긴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죽기 전에 뭔들 못 하겠어. 어차피 죽을 건데. 그러니까 죽고 싶어지면, 죽기 전에 꼭 병원으로 와서 얘기해. 선생님들 보고. 알겠지?"

나는 그러겠다고 답했다.


오늘은 짐 정리를 어느 정도 끝냈다. 두 달 가까이를 이곳에서 보냈어서 그런가, 쓸데없는 짐이 굉장히 많았다. 집에 가져가도 쓰지 않을 것 같은 물건들을 다른 환자들에게 나눠주었다.


퇴원이 눈앞까지 다가오니, 퇴원 후에 과연 내가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 쌓인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해 봤자 나만 힘들다는 걸 안다. 그래서 최대한 걱정을 덜어보려고 하는데, 잘 안 된다. 잘 지낼 수 있을까? 잘 지낼 수 있겠지?




2022년 3월 23일, 입원 58일 차


굿모닝. 입원할 때에는 롱 패딩을 입고 왔었는데, 벌써 완연한 봄이 되었다.

아무리 폐쇄병동이라고 하더라도 정들었던 어딘가, 그리고 누군가를 떠나는 건 마찬가지라서, 괜히 미련이 남곤 한다. 후련하기만 한 건 아니다. 그래도 입원 전의 나를 떠올려 보면 많은 것이 달라졌고, 그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고, 이렇게 바뀐 내가 너무 마음에 든다. 두 달이라는 짧고도 긴 시간 사이에 내가 나를 완전히 사랑하게 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확실한 건, 나를 일부분만이라도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전공의와 약속을 하나 했다. 병원에서 그동안 만들어 놓은 관성, 사이클(cycle)을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병원에서 아침을 먹던 시각에 아침을 먹고, 약을 먹던 시각에 약을 먹는 것. 너무 멀리까지 바라보지 말고, 딱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데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나는 나를 믿기로 했다. 나는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잘 지내지 못하더라도, 그 역시도 나라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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