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 후, '잘 살기'
집으로 돌아온 후, 가장 힘들었던 것은 다름이 아니라 내가 나를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자못 당연한 사실이었다. 병원에서는 매일 7시 반, 12시 반, 그리고 5시 반이면 내 눈앞까지 식판을 가져다주었다. 밥을 먹고 난 뒤에는 간호사들이 약을 챙겨 주었고, 매일 담당의나 복지사와 면담을 나누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이 모든 것은 순식간에 흩어져버렸다. 아무도 내 밥과 약, 그리고 수면 시간 등을 챙겨 주지 않았다.
하루를 살아가기 위한 관성을 어느 정도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익숙함이 무섭긴 한 건지 내가 나를 챙기는 것이 너무도 어려웠다. 정해진 식사 시간에 맞춰 밥을 먹는 게 어려워지니 약 먹는 시간도 불규칙적으로 변해갔고, 취침 시간 역시도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했다. 어떤 날에는 자정이 지나기도 전에 잠들었고, 어떤 날에는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잠에 들지 못해 침대에 누운 채 두 눈만 깜빡거렸다.
주치의는 내 퇴원이 시기상조는 아니었나, 싶다고 말했다. 나는 그럴지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주치의는 내 상태가 걱정된다며 일주일에 두 번씩 진료를 받으러 오라고 했다. 병원과 가까운 데에서 사는 게 아니라서 조금 귀찮긴 했지만, 나 역시도 나 자신이 걱정되었기에 꼬박꼬박 병원에 갔다. 주치의는 내게 치료 의지가 있긴 한 것 같아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다시 입원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먼 시간 후일지 혹은 가까운 시일 내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버거웠다. 현실이라는 사회에 떨어져 일상을 살아가기에는, 난 아직까지 많이 부족한 사람 같았다.
나는 주치의에게 나를 괴롭히는 이 모든 상념들에 대해 말했다. 주치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내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었다. 그는 나에게 다시 입원하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많이 아프면 입원하여 치료를 받는 것이 맞지 않겠냐면서, 마음이 많이 아플 때에도 입원 치료가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새로운 치료를 시작했다. '스프라바토'라는 나잘 스프레이를 코에 뿌리는 것이다. 처방을 받은 후 의료진들의 앞에서 투약을 하고, 약 두 시간 정도를 병원에서 보내며 부작용 유무를 파악한 뒤에 집으로 귀가하면 된다. 처음 투약을 했을 때에는 마약을 해 본 적이 없지만 만약 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지러웠다. 약간의 해리 현상도 있었는데, 이것은 흔한 부작용들 중 하나라고 했다. 몇 주 정도 이 치료를 받아 보고 효과가 없으면 다시 입원하는 방향으로 생각해 보자고 주치의가 제안했고,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나는 치료를 받으며, 내가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해도 이를 두려워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2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나는 정말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 모든 것이 긍정적인 변화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입원 전보다 훨씬 마음이 편안해진 것도, 더 많은 것을 깨달은 것도 사실이다.
나에게 입원은 사회로부터의 작은 도피이자 내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준 수단이었다. 내가 다시 입원을 한다면, 분명 나는 또다시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구르고 깨지면서 점차 단단해지는 거겠지, 삶이란 건.
그렇게 나는 천천히 살아가기로 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잘 살고 있는 거라고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