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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적운 Sep 23. 2022

퇴원만 하면 괜찮을 줄 알았다

퇴원 후, '잘 살기'

퇴원 다음 날, 나는 병원에 찾아갔다. 진료 예약이 되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누군가와의 약속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병원 앞에 서서 나는 무언가 심각한 일이 있는 사람 마냥 응급실과 병원 본관 건물 사이에서 한참을 왔다 갔다 했다. 삼십 분 정도 입구에서 서성이기만 하던 나는 큰 결심을 하고 병원 본관으로 들어갔다. 2층으로 걸어 올라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 쪽으로 향했다. 내 얼굴과 이름을 외운 외래 간호사는 갑작스러운 내 등장에 놀라신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가 내게 어쩐 일이냐며 묻기 전에 말을 했다.

"제 외래 진료는 다음 주로 예약되어 있긴 한데, 지금 너무 힘들어서요…… 응급실로 가야 하나 고민하다 여기로 왔어요. 혹시 도움받을 수 있을까요?"

다행히 내 담당 주치의가 외래 진료를 보는 날이었고, 나는 간호사의 편의 덕에 곧장 진료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자리에 앉기도 전부터, 나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주치의는 놀라 나에게 왜 그러냐 물었고, 나는 퇴원을 한 후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있었던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퇴원 직후 나는 자취방으로 돌아갔다. 커다란 대로변의 8평 남짓 되는 오피스텔. 자취방으로 돌아오면 방 청소도 하고, 집안의 구조도 바꿔 가면서 나에게 새로운 변화를 주려고 했는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손가락도 움직이기 싫어서 누운 상태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나는 의사들과의 약속을 어겼는데, 바로 술을 마시러 간 것이다. 술을 많이 마신 건 아니었는데, 술자리를 파하고 돌아와서는 또 칼을 찾아 손목을 그었다. 휴지로 대충 피를 닦아냈는데도 지혈이 잘되지 않았다. 술은 내 손에 충동이라는 감정을 쥐여 준다. 알고 있으면서도 마셨다.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손목을 그었다. 그렇게 깊지는 않았다. 그저 내가 자해를 했다는 사실, 딱 그만큼의 기분만을 느끼고 싶었다.

밤새 잠을 자지 못했다. 술에 약까지 먹었음에도 잠이 오지 않아 계속 뒤척였다. 몇 년을 살았던 오피스텔인데도, 병동에 익숙해진 탓에 내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어색하게만 보였다.

쪽잠만을 겨우 자다 해가 뜰 때쯤 몸을 일으켰다. 나는 아무 이유 없이 그 좁은 방 안에서 계속 걸었다. 제자리에서 빙빙 돌았다. 가만히 있기가 힘들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불안했다.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겹겹이 쌓이자, 그다음에는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더 손목을 그었다. 휴지로 대충 지혈을 하면서 한 손으로는 급하게 택시를 잡았다. 당장 병원에 가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진료 때, 주치의는 내게 당장 술을 끊으라고 하지는 않을 테니 조금씩 절주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적운 씨에게는 지금 다른 것보다도 술과 자해가 가장 위험하다고. 내 마음속에서 술과 자해는 늘 맞닿아 있는 것이니, 하나를 줄이면 다른 하나도 자연스레 줄어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치의는 필요시에 먹는 항불안제를 몇 개 더 챙겨 주었다. 이미 지금 먹고 있는 정규 약이 많아서 거기에 추가할 수는 없다고 하셨다. 내 키, 몸무게, 나이 등을 모두 고려했을 때, 지금 내가 먹는 약의 양은 이미 맥시멈이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여기서 나는 뭘 더 할 수 있는 걸까?


진료가 끝난 후, 나는 복지사 선생님을 만나러 사회사업팀 사무실로 찾아갔다. 그는 흔쾌히 나를 반겨 주었다.

나는 밖에 나오니 상쾌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괴로운 일이 너무 많아 힘들었다고 말했다. 내가 내 집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더니, 복지사는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을 거라고 했다. 2개월 정도를 아무 데도 가지 않고 병동 안에서만 보냈는데, 당연히 집이 더 새로울 것이라고 했다.

복지사는 나에게 술을 꼭 끊으라며 신신당부했다. 나 역시도 그러면 좋겠지만…… 내가 술을 끊을 수가 있을까? 난 여전히 술자리가 너무 좋고, 술이 너무 좋다. 날 힘들게 만들고 아프게 만들지만 술을 끊는 건 내게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정신병적으로 나아지고 싶은 마음에게 술이 자꾸 태클을 건다.


잘 사는 건 무엇일까? 나는 퇴원만 하면 내가 잘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동안 병동에 있느라 하지 못했던 것도 하고, 먹고 싶은 것도 먹으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 너무도 안일하게 생각했다. 이 현실이 힘들어서 병원으로 도망친 것이었는데, 당연히 병원 밖이 마냥 행복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도 병원 안에 갇혀 퇴원을 고대하던 과거의 나를 위해, 조금 더 잘 살아 보려 한다. 꾸준히 약을 챙겨 먹고, 힘들면 병원에 가고, 식사를 거르지 않으면서. 아, 술도 조금씩 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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