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루틴이 중요한 사람이다. 일상을 평범하지만 쫀쫀하게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한때는 월, 화, 목에는 필라테스를 가고, 화요일에는 아이스하키를 가고, 금요일에는 바이올린을 배우러 갔다. 요즘엔 화, 목, 금 필라테스를 가고, 월, 수에는 수영을 가고, 금요일에는 바이올린을 배운다. 한 달에 하루는 등산을 간다. 일주일에 하루는 거의 움직이지 않으며 충전을 하고, 일주일에 하루는 누군가를 만나 일주일치 수다를 한꺼번에 쏟아낸다.
집이 동향이라 알람을 해두지 않아도 새벽 여름이면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곤 했다. 요즘처럼 해가 늦게 뜨는 가을이면, 아침 6시 30분쯤 일어난다. 눈을 뜨자마자 양치를 하고 음양탕을 마신다.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보고 마시게 된 음양탕은 의외로 효과가 좋았다. 음양탕은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7대 3의 비율로 마시는 것이다. 포인트는 뜨거운 물을 반드시 먼저 넣어야 한다는 것. 찬물은 밑으로 내려가려고 하고, 뜨거운 물은 위로 올라가려고 하는 대류현상 때문에 사람이 마실 수 있을 정도의 약간 뜨거운 물이 완성된다. 100도씨로 팔팔 끓인 물이 좋다는데 우리 집 정수기 최대 온도는 85도인지라 나름 그 정도에서 만족한다. 물을 끓이려면 전기포트를 새로 사야 하는데, 그렇게 살림을 늘리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완성도를 높이기보다는 할 수 있는 선에서 쉽게 만족하는 인간형이다. 음양탕이라는 이름은 마치 인스타에서 파는 공구 한약 같은 이름이다. 그래서 효과가 있을까 의심스럽지만, 마시고 나면 효과를 바로 느끼게 된다. 몸이 이상하게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혈액순환이 되는 것 같달까.
한겨울에도 눈뜨자마자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진하게 마시는 나로서는 처음 느껴보는 따뜻함이었다. 온몸에 따뜻한 기운이 한 바퀴 돌고 나면. 명백한 효과는 활발한 장 운동에서 나타난다. 느닷없는 빠른 효과 때문에 길 한복판에서 진짜 똥들이 입구를 비집고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든 적도 있었다. 여기에 루테인, 마그네슘, 프로폴리스 알약을 챙겨 먹으면 영양제 루틴도 끝. 아침에 까먹고 못 먹으면 그날은 약 못 먹는 날이다. 참 희한하다. 하루가 24시간이나 되는데도 영양제는 아침에 못 먹으면 그냥 못 먹게 된다.
다음에는 간단한 복근 운동을 5분 정도 한다. 필라테스 선생님이 공복에 복근운동을 하면 효과가 좋다고 강조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역시도 지금 하지 않으면 못하기 때문이다. 필라테스 선생님은 죽을 것처럼 힘든 순간이 와도 꾸준히 할 것을 강조했다. 1년 정도 꾸준히 하면 몸의 라인이 달라질 것이라며 적극 추천해 주었다. 지금까지 3개월 정도 했는데 복근에 힘이 조금씩 붙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사실 나는 내 몸의 변화를 거의 눈치채지 못한다. 눈바디가 제일 어렵다. 필라테스 선생님은 나도 모르는 새 내 필라테스 레벨을 늘리기 때문이기도 하고, 나의 체력이라는 것은 언제나 랜덤이라 어떤 날은 갑자기 엄청 잘되었다가 어떤 날은 말도 안 되게 처지기도 하기 때문. 아침에 눈뜨자마자 힘을 빡 주면 배에 실금 같은 라인이 슬며시 보이기도 하는 것으로 공복 복근 운동의 효과를 가늠할 뿐이다.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싶다. 예전에는 도수치료 선생님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기도 했는데, 이제야 뭔가를 해야 한다고 준 숙제기에 소중하게 여겨지기도 하다. 작년만 해도 어깨에 힘을 빡 주면서 운동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어깨의 힘을 많이 덜고 운동하게 되었다. 그리고 꽉 끼어서 불편하던 옷들이 많이 헐렁해졌다.
음양탕부터 복근운동까지 다 하는데 보통 10분이면 충분하다. 마음먹는 게 어려워서 그렇지, 사실하는 게 어려운 일들은 아닌 일들이다. 7시에 일어나도 어떻게든 할 수 있고, 늦게 일어나도 사실 상관없다. 다만 눈 뜨고 일어나자마자 하는 것이 중요하다. 눈 뜨고 일어나 TV를 트는 순간, 나의 소중한 모닝 루틴은 눈 녹듯이 사라진다. 누가 보든 말든 상관하지 말고, 아무 생각 없이 모닝 루틴을 하고 난 뒤, 아이들 아침으로 먹을 빵이나 과일을 간단하게 준비해 둔다. 둘째 드림 렌즈 빼주고, 첫째 깨우면 7시 10분. 첫째랑 아침에 골프 연습을 하기로 약속하면서 아침 시간이 부쩍 바빠졌다.
첫째 골프 연습장에 데려다 주기 전에는 모닝페이지를 1페이지씩 썼었다. 지금은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을 생각나는 대로 막 치다 보면 금방 1페이지가 차버린다. 처음 쓰려고 했을 때는 할 말이 없어서 하루 일과를 정리하기도 하고, 남편 욕을 쓰기도 하고, 애들 불만을 늘어놓기도 했다. 아이 둘 엄마의 일정은 언제나 바쁘다. 그렇게 한두 달 꾸준히 쓰다 보니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조금씩 더 집중하게 되었다. 일주일에 하루는 날 위해 뭘 할까 고민하며 미술관 산책이나 서점을 가기도 하고, 맛있는 커피를 찾아 떠나기도 한다. 해보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지우면서 하면서 깨달았다. 그동안 내가 하고 싶다고 말만 하고 못하던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는 걸 말이다. 사실해보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도 않은데, 무슨 이유로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기만 했는지 아쉬웠다. 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안 하고 있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도 없고 말이다.
사실 나는 내 글이 쓰고 싶었다. 남의 글만 쓰며 10년을 살았는데, 사실 그걸로 잘 먹고살긴 했는데 나도 내 글을 쓸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내가 쓴 글 앞에 다른 단체의 이름이 실리는 것 대신 김혜진이라는 이름이 나왔으면 했다. 잘 쓰는 글이든 못쓰는 글이든 간에 (기왕이면 잘 쓴다는 말들로 가득 채워) 내 이름으로 된 글로 평가를 받고 (칭찬만 받고) 싶었다.
작년 한 해 동안 책 쓰기 워크숍 수업도 들어보고, 초고로 100페이지 넘게 써보기도 하고, 출판사에 기획안을 보내 보기도 하고, 우연히 알게 된 작가분께 피드백을 받아보기도 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내가 쓴 글은 왠지 모르게 징징거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도 불편했다. 뭔가 대단한 걸 쓰고 싶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그저 모든 걸 멈춰버리게 되었다. 모닝페이지를 썼던 건 딱 그 무렵이었다. 줄리아 카메론이 쓴 아티스트웨이 책을 읽고, 그냥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아침마다 모니터를 보며 뚝딱거렸다. 10년 지기 대학교 친구를 만나러 프랑스 파리로 혼자 여행을 떠나고, 아이 둘 데리고 코타키나발루에서 3주 살기를 했던 것들은 그간 마음으로만 품고 있었던 ‘하고 싶다’ 리스트에 있던 것들이었다.
막연하게 해보고 싶다는 마음만 있었던 일들을 실제로 실행해 보니 알 수 있었다. 나한테는 어떤 면이 어울리고, 어떤 부분은 못 참는지 말이다. 그러고 나니 하고 싶은 또 다른 일들이 생겼고, 또 그 일들을 하나씩 다시 해보면서 나아갈 수 있었다. 암튼 지금은 아침에 눈뜨자마자는 모닝페이지는 못쓴다. 더 일찍 일어나면 되긴 할 텐데, 더 일찍 일어나면 점심 먹고 난 직후가 너무 졸려서 낮잠 없이는 버틸 수가 없었다.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 중간에 낮잠을 한 시간 자는 것과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낮잠을 자지 않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낮잠을 한 시간 자고 나면 뒷 일정이 너무 늘어져버렸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져 버리길래 낮잠을 버리고 적당한 시간에 일어나 바쁘게 움직이는 편을 택하게 되었다.
원래 첫째의 골프 레슨 시간은 오후 2시 40분이었다. 골프 프로님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를 키우는 학부형인지라 오후 3시까지만 수업을 하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셔틀 시간에 늦을까 봐 마음 졸이며 5년을 살았던 나로서는 골프 선생님의 초조함에 너무나 공감한다. 그렇기에 나도 아이 골프 레슨 시간은 꼭 맞추고 싶었다. 문제는 아이의 학교 수업은 2시 20분에 끝나고, 청소나 종례시간이 길어지게 되면 집에 2시 50분에나 오는 경우가 있다는 것. 2시 30분부터 세팅해 두고 아이를 20분 넘게 집에서 언제 오나 기다리다 보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그래서 아침에 학교 가기 전으로 레슨 시간을 바꾸기로 약속했다.
현재는 첫째 스스로 골프에 집중해보고 싶다고 했던 터라 일단 해보는 중이다. 아이는 골프 연습장에 내려주고, 나는 30분 정도 덜렁덜렁 동네를 산책한다. 아침 7시 30분. 한산할 것만 같았던 거리에는 출퇴근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장이나 볼까 싶어 슈퍼마켓에 가보는데, 문을 연 가게는 의외로 많지 않다. 아침부터 이렇게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다니. 지하철역 앞은 통근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로 길게 늘어서 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저렇게 입네, 하며 멍 때리듯 걷다 돌아오면 아이의 골프 레슨도 끝나고 간단한 연습도 끝난 상태. 그렇게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오면 아침 8시 30분이 된다. 로봇청소기가 일하기 좋게 마루에 걸리적거리는 아이템 없게 모두 올려두면 아침 일과 끝. 뭘 먹을까 고민하며 장을 보러 가기도 하고,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다녀오기도 하고, 필라테스나 수영을 가기도 한다. 그렇게 휩쓸 듯이 오전이 지나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온다.
예전에는 밤마다 맥주 한 두 캔씩이나 와인 한두 잔씩 마시고 잠들곤 했다. 약간 알딸딸한 기분으로 잠들고 싶었다. 그냥 시간이 이렇게 흘러버리는 게 아쉽기도 했다. 아이들 챙겨버리다 끝나는 시간이 아깝고 짜증 나서 화가 났다. 불만족스러웠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착실한 모닝 루틴을 보내기 시작하면서 아침이 조금 바빠졌다. 그렇게 풍요롭게 보내기 시작하면서 내 삶이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남 탓을 덜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더 집중하고,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아침에 챙겨 먹는 몇 알의 영양제와 복근 운동만으로도 건강이 유지되는 듯 느껴졌다. 아침마다 끼적이는 글들은 마음속 떠다는 잡생각들의 방향을 정해주어 고요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러면서 진짜 하기 싫었던 집안일들도 재미있어졌다. 밥 하는 게 정말 싫고, 다 먹지 못해 버리게 되는 식재료들이 아깝기만 했는데, 하루에 한 끼만 제대로 먹이자는 마음으로 살다 보니 마음이 편해져서인지 식사 준비가 쉬워졌다. 내 인스타피드는 요즘 살림 잘하는 사람들의 영상으로 가득하다. 누군가가 아이들을 위해 밥 하는 영상, 집 치우는 영상을 보며 오늘 나도 하나쯤 해봐야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대단하지는 않더라도 정성스러운 오전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를 보살피는 시간이다. 꽉 찬 아침시간은 평범한 내가 나를 더 사랑하고 예뻐할 수 있는 근거가 되어준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커피 때려먹고 일하기 바빴던 과거는 안녕. 난 이제 잔병치레에서 벗어나서 건강하게 살고 싶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건강하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