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엄마가 모범생이다.

by 작가 혜진

돌이켜보면 나는 엄청난 모범생이었다. 선생님과 부모님께 사랑받기 위해 말도 잘 들었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숙제를 다하고 놀지 않는 상황이 너무 불편해서, 무조건 할 일을 다하고 놀았다.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현재도 모범생 기질은 이어지고 있다. 오전 중에 해야 할 일을 다 끝내고, 오후에는 육아에만 올인했다. 오전 중에 할 일이 끝나지 않으면 오후에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유튜브를 보여주는 한이 있더라도 일을 끝냈다.


엄마의 모범생적인 기질은 아이들 키울 때 부작용이 났다. 아이들이 본인이 해야 할 일을 끝내지 않으면 너무 화가 났다. 할 일을 다해야만 놀이터에 간다고 했더니 아이들도 같이 화를 냈다.


“엄마, 숙제를 왜 해야 해?”

“엄마, 공부를 꼭 해야 해?”


당연히 숙제를 해야 하고, 당연히 공부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여기에 왜라는 질문을 붙이다니! 이런 불경스러운 아이들을 보았나.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씩씩거리며 아이들과 기분이 상한 채로 할 일을 마치고, 놀이터로 향했다. 얼굴 표정이 안 좋은 나를 보니 동네 언니 하나가 무슨 일이 있냐고 말을 건넨다. 여차저차 얘기를 했더니 언니의 말이 충격이었다.


“자기는 어릴 때 숙제 다했어?”

“당연하죠!”

“그럼 자기는 어릴 때 숙제 먼저 다하고 놀았어?”

“당연하죠!”

“나도 어릴 때 숙제 다 안 했어. 그래서 숙제 다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해.”

“네!?”


충격적인 얘기였다. 성실함은 나의 가장 큰 무기였다. to do list를 정해놓고, 지워나가며 하는 걸 가장 사랑했다. 대학에서도 리포트 마감일을 지나 본적이 없고, 사회에서도 마감일 2,3일 전에 미리미리 일을 끝냈다. 그런 내가 엄마로서는 너무 엄격한가 보다.


며칠 전, 남편과 함께 산책하다가 남편이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네가 아이들이랑 자주 놀러 다니고, 책 많이 읽어주는 건 너무 좋은 것 같아. 그런데 틀 안에 갇혀서 키우는 건 좋지 않은 것 같아. 아이들에게 자유도를 충분히 주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아.”


그랬다. 내 계획에 아이들이 따라오지 못하면 무척 화가 났다. 패키지여행 상품기획자 출신인 나는 심할 때는 시간대별로 스케줄이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정이 시간 단위로 맞출 수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닫고, ‘오늘의 할 일’ 정도로만 정리했다. 할 일을 문 앞에 써두고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했다. 학원을 가는 대신 최소한 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분량이었다. 이 정도도 못하면 나중에 어떻게 하려고 그러나 싶어 내심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내가 얼마나 많이 양보한 건데, 그것도 몰라주는 남편의 무심함에 무척이나 서운했다.


순간,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내 틀 안에 갇혀서 자란 아이들이 나보다 더 성장할 수 있을까? 반짝거리는 재능을 갖고 태어난 우리 아이들은 내 틀 안에서 나보다 더 자라기 어려울 것이다. 설령 만에 하나 잘 된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기에 만족도도 높지 않을 것이다. 내가 목표를 세워줄 것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목표를 세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표를 왜 하지 않느냐고 닦달하는 대신 언제 어떻게 채울지 확인하는 정도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그런 생각을 가지면서도 내 머릿속은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잘할 수 있을까?


저는 재능은 타고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같은 아이라도 태어나자마자 음악가 집안에서 자란다면, 법률가 집안에서 자라게 된 아이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타고나는 능력보다는 환경의 영향으로 키워진 능력이 더 크게 작용한다고 봅니다. 어떤 환경에 그 사람을 노출시켰느냐의 합이 그 사람이 된다고 믿어요.

<일하는 사람의 생각> 박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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