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원하는 일을 스스로 하게 할 것!

by 작가 혜진

예전에 사교육을 시키는 원칙은 간단했다. 일단 내 생각에 아이가 좋아할 것 같은 일을 찾는다. 잘할 것 같은 일들이다. 혼자 하면 재미없어할 것 같아, 같이 할 수 있는 친구를 찾았다. 동네 언니들이 이 시기에 해야 한다는 사교육 학원을 찾고, 레벨테스트를 보고 넣었다. 아이의 의사를 묻긴 했지만, 너무 하고 싶다며 눈망울을 반짝이지 않았다. 해야 하느냐며 한 번 묻고는 그냥 했다. 하기 싫은데 한번 해준다는 표정이었다. 그래서였는지, 몇 번 가다가 그만하면 안 되냐고 묻곤 했다.

생각해보니 싫은 게 당연한 거였다. 본인이 선택한 것도 아니었다. 하고 싶다는 마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억지로 시켜놓고, 우리 애는 왜 이렇게 잘하려는 마음이 없는지를 탓했다. 애가 참을성이 없다며 아이를 다그쳤고, 이걸 하지 않으면 좋아하는 다른 걸 못하게 된다고 협박을 했다. 소리를 쳤고, 화를 냈다. 때리지만 않았을 뿐 폭력이었다. 아이가 살아가게 될 세상에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살아온 세상에 재단해 아이를 키웠다. 내가 배웠던 방식으로 했다. 수학 문제집을 풀고, 영어 학원에 보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이 들었다. 내가 아는 방식으로 키운 내 아이가 과연 나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무기력을 학습한 아이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찾을 수 있을까? 아이는 가진 재능이 많았다. 운동을 좋아했고, 잘했고, 한번 본건 쉽게 따라 했다. 그림 그리기도 좋아했고, 클레이도 잘 만들었다. 잘한다고 생각되는 재능을 키우겠다고 사교육을 시작했다가 가진 재능마저 망치는 기분이었다.


매번 아이는 내게 말했다.


“엄마는 내가 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겠지만, 엄마 욕심일 뿐이야.”


아이가 잘하길 바라는 마음이, 아이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그런 엄마의 모든 마음이 그저 내 욕심이었을까. 그저 허망하기만 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뭐야? 뭘 하고 싶다는 거야?”


“혼자 살고 싶어. 엄마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어.”



그런 아이의 얘기를 들으며 무서워졌다. 이내 곧 아이의 뜻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엄마인 나와 멀어질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딸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날, 아이가 원하지 않는 사교육을 모두 정리했다. 대신 아이가 원하는 일들을 하나씩 해주었다. 빵을 굽고, 병아리 부화에 도전하고, 코카콜라에 멘토스를 넣어보고, 생일잔치에는 친한 친구들을 불러 신나게 게임만 시켰다. 그제야 반짝이는 아이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남자 친구들과 위험하게 노는 아이가 불안해 다른 친구들을 일부러 놀게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아이가 좋아하고, 아이가 즐거워하는 건 따로 있었다. 그러니 굳이 내가 일부러 찾아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것 같다. 아이가 원하는 일이 안전하고, 사회에 반하는 행동이 아니고, 해줄 수 있는 일이라면 그냥 해주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초등 저학년의 경우, 엄마들이 친구들을 결정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팀을 짜서 수업을 돌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그룹에 끼지 못하면 친하기 어려워진다. 엄마의 개입이 많다 보니 자주 만나는 친구와 친해지게 된다. 예전에는 그 그룹에 끼지 못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학교 생활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고, 마치 앞으로 아이의 시간이 불안으로 가득 차는 것만 같았다. 아이의 성향이 맞지 않아도 억지로 맞추어야 한다고 윽박질렀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아이를 점점 심드렁하고 열심히 할 필요 없다고 느끼게 만들고 있었다.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가장 큰 것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날카롭게 찾아 갈고닦는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어떤 선택을 했을 때 내가 더 행복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살 수 있다. 그렇게 키우고 싶다.


놀이를 빼앗긴 아이에겐 무슨 일이 벌어질까?

“나중에 굶어 죽으면 어쩌려고 그래?” “계속 놀기만 할 거라면 용돈은 없다.”
한국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자기 의견을 말할 권리는 허용할지언정 아이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의향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아이가 기껏 제 의견을 솔직히 표현하면 부모들은 이런 식으로 타이르거나 윽박지른다. 적어도 어린 시절에 부모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아이는 없다. 요구를 거부하면 처벌로서 사랑을 철회하겠다는 부모의 협박은 아이에게 큰 공포이며 이를 이겨낼 수 있는 아이는 없기 때문이다. 의견을 표현해도 부모에게 거절 혹은 묵살당하는 경험이 반복되면 아이들은 의견을 말할 권리를 스스로 포기해버리고 만다. 의견을 말할 기회를 주더라도 입을 다물어버리거나 부모가 바라는 대답을 하는 데 익숙해진다.

<실컷 논 아이가 행복한 어른이 된다>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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