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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Mar 02. 2020

조직문화 관점에서의 재택근무

핵심은 불안도 관리와 신뢰입니다.

앞서 재택근무에 대한 글을 쓰기도 했고, 요즘 브런치에도 재택근무에 대해 근무자의 입장에서 효율을 높이는 방법과 고려할 점에 대한 좋은 글들이 매우 많아서 굳이 다루지 않을 예정이었습니다만 이를 조직문화 차원에서 생각해볼 부분도 있겠다 싶어 추가 글을 씁니다. 




1. A사의 리더, 그리고 구성원들


예전에 몇몇 기업의 조직문화를 살펴볼 일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한 회사(A 사라고 합시다)가 아주 인상적이었는데요. 조직 리더와 구성원들은 각각 아래와 같은 특징이 있었습니다. 


[조직 리더들 특징] 


1. 매우 목표지향적이다. 
2. 불안도가 높고, 짜증이 많다. 
3. 스트레스 레벨이 매우 높다. 
4. 자기가 주도하려는 성향이 매우 강하고, 자기주장에 대한 확신이 강하다. 
5. 새로운 것에 대해 부정적이고, 학습욕구가 낮다. 
6. 일에 대한 책임감과 성취욕구가 매우 강하다. 



[구성원들의 특징]


1. 불안이 높고, 짜증을 많이 느끼지만 이를 드러내지 않는다. 

2. 수동적이고, 변화를 싫어한다. 

3. 체계를 만들기보다는 만들어진 체계 속에서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을 선호한다. 

4. 책임감은 강하지만 성취욕구가 약해서 누군가 감시하지 않으면 적당히 하려는 성향이 많다. 

5. 맞춰주고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런 분위기에서 사무실 이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경영진과 핵심 부서만 먼저 옮겨가고 나머지 부서들은 잠시 다른 곳에서 원격근무를 하게 되었죠. 하지만 원격근무 부서의 리더들 또한 경영진과의 회의를 위해 본사로 자주 불려 갔기에 사무실에는 직원들만 남아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원격 근무에 대한 조직원들이나 리더들의 평가가 어땠을까요?



2. 닦달하고 괴롭히는 리더들


우선 리더들은 불안감에 못 이겨서 원격 근무하는 직원들을 끊임없이 닦달했습니다. 카톡과 전화로 말이죠. 리더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은 구체적으로 두 가지입니다.


직원들이 일 안 하고 놀면 어떡하나? 안 그래도 시키는 것만 하는 애들인데?

데드라인 맞춘다고 어떻게 믿어? 닦달해도 안 해오는 애들 투성이인데... 걔들 우리 없으면 일 절대 안 해. 


그러다 보니 리더들 사이에서는 직원들 근태 관리를 위해 웹캠을 설치하거나, 컴퓨터 화면 공유 프로그램을 깔아서 들여다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그럼 직원들은 어땠을까요?



3. 원격근무가 악몽으로 바뀐 구성원들


하루 이틀은 신이 났습니다. 매일 짜증만 내고 갈궈대는 상사들 대부분이 자리에 없으니 기분 좋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무두절(無頭節)', '어린이날'을 우리끼리 기념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하지만 원격근무가 악몽으로 바뀌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전화로 일을 처리하면 그나마 빠르긴 한데, 너무 자주 연락하면 일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메일이나 메신저를 주로 이용했습니다. 노트북 화면 보여주면서 말로 보고해도 될 일을 전부 이메일로 처리하느라 다시 문서로 작성해야 했습니다. 일을 두 번 하게 된 것이죠. 게다가 글자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다 보니 같은 말이라도 뉘앙스가 달라져서 불필요한 오해도 생겼습니다. 그럼 또 전화를 해야죠. 보고도 2중, 3중으로 하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부서장들이 중간관리자에게 시도 때도 없이 연락 와서는 상황을 보고하라고 쪼아대니 중간 관리자들은 자기 일 하랴, 부서장들 닦달하는데 대응하기 위해 다른 직원들 업무 상황을 실시간으로 체크하느라 일만 곱절로 늘어났습니다. 감독 안 하니 칼퇴한다는 비아냥을 듣기 싫어서 억지로 남아서 야근했고 퇴근 후에도 업무 진행 상황 업데이트를 위해 본사 임원에게 왔다 갔다 했습니다. 


일반 직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부서장들이 업무 일지를 꼼꼼하게 쓰라고 엄포를 놓는 바람에 업무 진행보다는 일지 작성에 더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게다가 심한 경우에는 일은 안 하면서 일 한 증거는 만들어놓기 위해 보고서만 열심히 쓰는데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중간관리자들이 퇴근을 하지 않으니 직원들 또한 불필요한 야근을 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고 얼마 뒤에는 심지어 직원들 사이에 스파이가 있어서 직원 개인별 근태는 물론, 무슨 말을 하는지까지 임원들에게 몰래 보고한다는 소문까지 돌았습니다.  


이 회사는 평소에, 즉 한 건물에 모여서 같이 일했을 때 조직 문화는 어땠을까요?



4. 원래 막장이었던 조직문화


예상하셨겠지만 평소에도 조직문화는 막장이었습니다. 실적도 엉망이었고 임직원의 조직문화 만족도도 당연히 바닥이었죠.


임원들은 비용이나 매출 같은 숫자 외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목표 달성을 위해 직원들을 채찍질하고 실적이 나쁜 직원은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망신 줬습니다. 정신 상태가 해이하다며 주말에 부서장들을 모아놓고 하루 종일 욕하고 갈궜습니다. 


부서장들은 걸핏하면 보여주기 식 야근을 했습니다. 일이라도 하면 다행일 텐데 직원들을 모아놓고는 밤 10시까지 목표 달성을 위한 훈화 말씀, 구체적으로는 지난주처럼 또 서류 집어던지면서 화내고 그때 했던 말을 오늘 또 했습니다.  


직원들은 삼삼오오 모이면 윗사람들 욕하기에 바빴습니다. 하지만 막상 업무 시간에는 몰래 인터넷 쇼핑하고, 외근은 적당히 때우고 몇 시간씩 빈둥거리다 들어왔습니다. 


이런 회사가 실적이 좋으면 이상한 거죠..



5. 재택근무의 장단점


한 회사의 원격근무를 예로 들었습니다만, 완벽한 제도와 문화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재택근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택근무는 아무래도 커뮤니케이션의 효율성과 업무 집중도 측면에서 한계가 매우 많은 방식입니다. 일의 진도에 대해 개인의 책임이 명확해져서 직원 입장에서는 오히려 부담스러운 방식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리더들이 구성원을 믿지 못하면 크나큰 낭비가 발생합니다. '일 했다'를 출근으로 증명할 수 없으니 업무 일지를 꼼꼼히 쓰라는 요구부터 나오게 되는데 이것 자체부터가 큰일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니까요. 


대신 출퇴근에 시간을 소모할 필요가 없어지니 시간 관리에 여유가 생깁니다. 직원의 자율성과 자기 유능감이 올라갈 수 있고 개인의 책임이 명확하므로 직원의 발전에 대한 평가와 계획을 세우기 좋은 시스템입니다. 조직 구성원 간 신뢰가 있고 실제로 일이 그 신뢰대로 진행된다면 아주 좋은 제도입니다.  




요약하자면 재택근무는 1) 직원 개개인의 역량과 집중력이 좋고 2) 리더들의 불안도가 낮으며 3) 조직 내 상호 신뢰가 높으면 아주 효율적인 시스템이 됩니다. 반면에 이 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A사처럼 되는 것인 시간문제입니다. 


평소 건강한 조직문화를 가진 조직은 코로나로 인한 강제적 재택근무 상황에서도 성과와 실적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만, 평소 엉망인 회사는 재택근무를 해도 엉망진창이 됩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 나간다고 새지 않을 리가 없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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