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어른 외 16권
요즘 서평을 아예 쓰지 못하고 있다. 쓰려고 생각 중인 책은 많았는데 글 쓰는 시간을 따로 내지 못한 것이다. 옌롄커의 『그해 여름 끝』도 개인적으로 뜻깊었기에 쓰고 싶었고, 이달 말에는 『룬의 아이들 데모닉』을 모두 읽었기에 지금까지 읽은 윈터러와 데모닉에 대한 이야기를 적고 싶기도 했었다. 하지만 문제는 타이트한 일상 스케줄에 있었다.
7시에 눈뜨면 바삐 학원에 가고, 일주일의 절반은 학원 수업이 끝난 이후에 검도장에서 10시까지 보내고는 한다. 1년째 하고 있는 검도가 늘 새롭고 늘 재미있게 다가온다. 앞으로도 오래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평일중 남은 이틀은 자격증 시험 필기 공부에 썼다. 학원에서는 갑작스럽게 해당 자격증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준비하자는 말을 꺼냈고, 시험이 3주 후에 있었기에 도저히 다른 곳에 시간을 쓸 수 없었다. 지난 한 주는 그토록 사랑하던 검도조차 빠지고 필기시험에만 모든 시간을 투자했다. 필기시험에 붙지 못하면 남은 학원 수업 기간이 무료하고 무의미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위에서 늘어놓은 말은 전부 변명이다. 여기는 아니지만 평소 F1과 관련된 글을 써서 올리기도 하고, 다른 글을 쓰기도 했기에 서평까지 길게 쓰지 못했다. 다른 것들을 내려놔야 하는데 학원을 다니지 않던 시절의 시간이 넘치던 때처럼 글을 쓰다 보니 시간이 모자랐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뭘 내려놔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사회에 다시 합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학원이 끝나면 취업할 수 있을까. 세는 나이로 벌써 30이다 보니 가끔씩 두려움이 올라오기도 한다. 그런 마음을 이겨내기 위해 많은 글을 쓰고, 다른 사람들과 내가 아는 것을 나누고 있는데... 앞으로도 이 마음을 잃지 말아야지.
이번 달에는 총 17권의 책을 읽었다. 솔직히 이게 말이 되는 수치인가 스스로도 돌아보게 된다. 아침저녁으로 버스를 타고 등원하는데 오가는 시간만 2시간이 넘다 보니 저절로 그 시간을 책 읽는 시간으로 쓰게 되었다. 하루에 2시간씩, 거기에 점심시간과 쉬는 시간에 틈틈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로 읽을 수 있다니. 물론 대다수가 소설이고 빠르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는 점도 한몫하겠지만 적은 독서량은 아니라고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은 양이다.
그런데 막상 이에 대해 리뷰를 써보려고 하니 양이 너무 많아 시작하기도 전에 숨이 턱 막혀온다. 할 이야기는 하고, 하지 않을 이야기는 하지 않으면서 최대한 조절해야지.
1. 어떤 어른 - 사계절
이 책에 대한 리뷰는 예전에 썼던 서평으로 대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책에 대한 간단한 서평 아닌 감상을 이야기하자면 내가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기도 했다. 검도장에서 어린 학생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그 시절에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던가, 나는 그들에게 어떤 어른으로 보이고 싶고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가 많이 고민했었다. 솔직히 대단하고 멋진 어른은 아니어도 부끄러운 어른은 되고 싶지 않았다.
최근에도 고등학생들과 카톡방을 만들고 가끔씩 카톡 하면서 서로 살아있나 죽었나, 검도는 열심히 하고 있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멀리 기숙사가 딸린 고등학교에 진학한 한 친구는 학교 검도부에서 차근차근 다시금 수련하고 있다고 한다. 누구는 학원 때문에 검도장에 오지 못해서 검도를 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고, 누구는 남고에 진학해서 괴롭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충실한 고등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고.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너무 많은 짐을 짊는 것은 아닌가 가끔 생각이 든다. 물론 우리 때도 학원을 다니는 학생들은 많았지만 지금의 사교육열에 비할 바가 되지는 못하고 점점 신격화된 내신과 수능은 이제 인생 성공을 위한 처음이자 마지막 루트가 되어버렸다. 그 시험 하나로 인생의 방향이 결정되고, 나는 그 시험에서 성공했으니 너희 우민들과는 차별화된 인생을 살아도 된다는 선민의식을 심어주기도 하고, 과연 이게 올바른 사회 교육의 방향일까. 이렇게 이야기하면 누군가는 내가 성공하지 못한 인생을 살고 있어서 이런 볼멘소리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성공하지 못한 인생을 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솔직히 많은 돈을 만지면서 떵떵거리고 사는 삶을 보지 못해서 그런지 어떨까 상상할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가끔은 작게라도 행복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학교에서 악기를 만지고 서로 뛰고 놀며 작은 행복을 느꼈어서 그런지, 아이들도 그런 작은 행복을 가끔이라도 좋으니 느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내 능력이 된다면 그 장소를 검도장으로 만들어주고 싶은 사람이기도 하고.
2. 누가 용사를 죽였는가 - S 노벨
일본에서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은 미스터리 추리극 형식의 라이트노벨이다. 평소 라이트노벨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장르, 그러니까 판타지 미스터리 추리라는 기묘한 컨셉의 장르는 보통 라이트노벨에서 그려지는 작품들이기에 내 입맛에 맞는 작품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인터넷 서점을 통해 구매했다.
일단 라이트노벨을 책으로 읽은 건 거진 십수 년만에 처음 있었기에 종이를 만져보고 놀랐다. 라이트노벨이 단행본보다 저렴한 1만 원, 혹은 그 이하의 가격에 보급될 수 있는 이유는 단행본보다 저렴한 종이를 사용하고 원가절감이 들어가기 때문이구나. 내부 삽화도 그레이스케일, 종이도 단행본에 비하면 퀄리티가 떨어지는 종이 표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이런 최대한의 원가 절감과 적은 페이지 수에 비해 만 원이라는 금액이 나오는 걸 봐서 요즘 해당 시장이 박리다매조차 힘들다는 걸 느끼게 되기도 하고. 과거에는 라이트노벨은 절대 만 원을 넘을 수 없다는 불문율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깨졌다. 시장 자체가 축소되었기에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내용은 훌륭했다. 용사는 마왕을 죽였고, 돌아오는 길에 죽었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래서 용사는 어찌하여 죽었는가, 함께한 동료들 중 누군가가 죽인 것은 아닌가, 이에 대해 화자 x가 각 인물들과 대담을 나누며 조사를 시작하고 그 과정 속에서 숨겨진 이야기가 하나하나 밝혀진다. 참고로 스토리는 판타지 세계관 기반답게 추리와는 하나도 관련 없이 판타지스럽게 이야기가 풀려나가고 판타지스러운 뒷배경이 밝혀지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추리라고 부를만한 요소가 거의 없다. 그냥 중간에 볼드체로 강조된 문구가 있으면 기억해 뒀다가 후미쯤에 짜 맞추면 끝나는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했다고 평가하는 이유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신선한 전개 방식에 있었다. 용사는 분명 재능 있고 강한 인물이라고 들었는데, 어째서 평범한 이가 용사가 되었고 그 이전에 평범한 이는 어떻게 용사가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독자의 감정선을 따라 세심하게 포인트를 찍어간다. 독자는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고 그들이 함께한 여정, 긴 이야기가 다뤄지지 않음에도 중간에 있었을 수많은 장면들을 상상하게 된다. 그래서 모든 영웅들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는 마치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온 것처럼 죽은, 죽었는지 아직 확실하지 않은 그를 애타게 찾게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감정의 클라이맥스라면 이후는 다소 허망하다. 판타지스러운 진실과 아쉬운 해결, 하지만 모든 게 잘 되는 해피엔딩.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면 앱에 4.5점이라는 점수를 줄 이유가 있나,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건 순전히 개인 취향이었다. 나는 이런 감정선을 건드리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읽던 당시 나도 꽤나 몰입하면서 읽었고 다 읽은 후에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면서 짧은 여운에 잠겼다. 좋은 책인가? 물어본다면 아쉬운 점이 적지 않은 책이라고 말하겠다. 책 내부적인 요소도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외부적으로도 아쉬운 점이 있었다. 특히 프롤로그의 번역 상태는 이게 맞는 문장이 써진 것인가, 스스로도 해독하기가 쉽지 않아 몇 번씩 앞장으로 넘겨 다시 읽을 정도로 좋지 못했다. 이후에는 많이 개선되었지만 가끔씩 발목을 잡는 문장이 있었고. 하지만 취향만 맞는다면 이건 훌륭한 책이 되리라 생각한다. 특히 미스터리 추리는 기본적으로 한색을 띤다. 차갑고 냉정하고, 다소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하지만 해피엔딩,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를 떠올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말고 이루펀트의 노래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청춘스러운 이야기와 꿈과 희망이 남는 이야기를 어떻게 싫어할 수 있을까.
3. 참 좋았더라 - 남해의봄날
군산 북페어에서 구매했던 책을 이제야 읽었다. 그마저도 반신욕 하며 읽겠다고 욕심을 부렸다가 책을 물에 조금 빠뜨려 으악! 소리 지르기도 했었고... 이 책은 일단 표지 디자인과 장정에 많은 신경을 쓴 책이다. 표지도 굉장히 고급스러운 양장으로 만들어져 있고, 내지도 훌륭한 편이다. 거기에 이중섭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답게 내부 삽화도 충실히 들어 있어 독자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포인트가 존재한다.
내용으로 넘어가면 김탁환 작가 특유의 소설 전개 방식이 돋보였다고 평하고 싶다. 그는 국내에서 호불호의 영역에 위치한 작가지만 나쁜 글을 쓰는 작가는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인물들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방언을 사용하는 인물들을 만들었고 더러는 이북의 방언을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서까지 표현해 내는 지독함을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독자는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에 다소 어려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반대로 시대가 뿜어내는 특유의 정취에 취하게 되는 것이다. 전쟁으로 부산에 묶인 다양한 이들이 새로운 터를 만들고 다시금 일어나기 위해, 그리고 예술가로서 좋은 작품에 몰두하는 모습은 낭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보다 더 직설적으로 꽂히게 된다.
이중섭의 생애를 아는 이들은 그의 생애에 따라 이어지는 소설에 때론 아름답고, 때론 덧없고, 때론 쓸쓸하며, 작품에 함께 기뻐하다, 마지막 그려지지 않은 최후를 떠올리며 슬픈 감상을 남기게 된다. 나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중섭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은 많았지만 그는 예술이 잊혀지는 시대인 20년 중반 나름대로 그의 삶을 표현하려고 애썼고 실제로도 화양연화라는 단어로 그를 표현하는데 성공했다. 북페어에서 작가 사인을 받을 때 지방에서 독립서점을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기회가 된다면 거기에 찾아가 책 잘 읽었다고 이야기를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4. 룬의 아이들 데모닉 1~9 - 엘릭시르
서평으로 따로 다루려고 계획 중인 작품 1
1부인 윈터러와 2부 데모닉 사이에 작품의 방향성과 전개 방식, 스타일에 큰 차이를 보이기에 따로 서평으로 다루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나중에 따로 시간을 내서 지난 윈터러처럼 긴 글을 쓰지 않을까 싶다.
추가적인 이야기로 필기시험 때문에 잠시 멈췄지만 지금 3부 블러디드도 읽고 있다. 현재 8권까지 연재가 끝났고(단행본은 6월 30일 출간 예정으로 보인다), 작가 코멘트로 9권에서 완결이 난다고 하니 아마 올해 연말 전으로는 블러디드까지 완결이 나지 않을까 싶다. 지금까지 읽은 감상을 짧게 이야기하면 01년도, 03년도 작품 특성상 문장을 갈아엎어도 구작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1부, 2부에 비해 3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말하자면 직선적인 정통파 인파이터가 갑자기 사우스포로 전향한 이후 운영을 하는 식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데 마치 수십 년간 써왔던 것처럼 왼손을 자유자재로 뻗는다는 느낌. 『전나무와 매』, 『상속자들』로 이어지는 아키에이지 시리즈를 쓰면서 완전히 새로운 문체에 적응했다는 감상을 준다. 과거의 전민희 작가를 좋아하는 사람은 슬퍼할 수도 있지만 새로운 그녀를 맞이해 주는 팬들도 적지 않으리라. 나 또한 이제는 과거의 기억으로 남지 않을까,라는 평가를 철회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게 읽고 있어서 아마 전권이 모두 출간되면 세트로 책을 살 것 같다. 집에 책 놓을 곳도 없는데, 이제는 블러디드를 위한 공간도 마련해줘야 한다니...
5. 변두리 화과자점 구리마루당 1~5 - 은행나무
4.5, 4.5, 4.5, 4.0, 3.5 시리즈 각 권에 매긴 점수다. 보통 읽기 괴로운 정도의 책에 3.5점에서 3.0점을 준다는 점을 생각하면 용두사미가 되어버린 이야기에 화가 나 붙인 가격표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겠다.(실제로 독서모임에서 굉장한 혹평을 했던 『정영진의 시대유감』도 3.5점이라는 최악의 점수를 받았다.)
맨 처음에는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을 떠올리며 책을 빌렸다. 실제로 해당 도서가 출간된 시기는 2014년으로 위 도서가 11년에 출간된 후 라이트문예 장르의 포문을 열고 당시 시장의 흐름을 타고 나왔던 작품 중 일부기도 하니 해당 책에서 그림자를 엿보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당시 일본에는 라이트문예라고 불리는 '라이트노벨'과 '순문학'의 중간점과 같은 애매한 포지션의 도서들이 나오고는 했다. 라이트문예라고 하기에는 깊이감이 있고 순문학이라고 하기에는 청춘 소설과 같은 소설들, 그런 애매한 위치에 존재했던 도서들을 모아놓은 애매한 군집체였다는 이야기다.
도입부를 읽을 당시에만 해도 일부 디테일한 이야기들이 누락되는 느낌을 받기는 했지만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재미와 캐릭터에서 매력을 느꼈다. 이 소설은 명목상 추리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추리적인 요소는 전혀 없고 전개 방식은 일자 진행형의 방식을 채택했다. 모든 사건의 발단부터 결말까지 사건 발생-주인공의 개입-조력자의 도움-화과자를 만들고 이를 먹은 당사자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갈등이 해소되는 일률적인 전개를 선보였고 실제로 이는 당시 라이트문예들이 흔히 보이는 전개방식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얼마나 그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모두가 어느 정도 납득 가능한 선에서 풀어내냐의 차이였을 뿐.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대충 내가 이 책의 점수를 낮게 채점했는지 알 것이다. 문제는 처음 한두 권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3권, 4권을 넘어가는 시점부터 더이상 이 일률적인 전개 방식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가게의 존망부터 사회적인 문제를 품고 있는 인물,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수준으로 사건의 스케일은 점점 커져가는데 주인공은 여전히 화과자 하나로 모든 것들을 해결한다. 그리고 조력자 포지션에 있는 히로인은 처음부터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는 했지만 후반부부터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모든 것을 자신이 가진 권력을 이용해 해결해간다. 그리고 작가가 "저 조사 열심히 했으니 칭찬해주세요!"라고 떠드는 것처럼 떠벌리는 1장하고도 반, 혹은 2장이 넘는 화과자에 대한 길고도 장황한 설명들, 보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걸 5권째 보고 있으면 독자 입장에서는 괴로움이 과중된다.
그리고 으레 그렇듯 해당 시기의 추리 라이트문예는 강직하고 뭐든지 해결할 수 있어 보이는 히로인이 무언가 위협을 당하고 있고, 도움을 요청하는 포지션으로 돌아선다. 그거를 주인공이 해결해주고 서로의 사랑을 다시금 확인하는 클리셰, 나는 이 클리셰를 욕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단지 클리셰를 사용할 거라면 재미있게, 그럴듯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과실치상을 일으킨 인물이 히로인 주위를 계속 돌아다니는데 그는 제대로 된 식사는 커녕 몸 뉘일 곳도 찾지 못하는 떠돌이 짓을 하고 있지만 초인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고, 제과계에서 범상치않은 천재여서 무언가 대단한 능력을 쉽사리 발휘해 주인공의 콧대를 한 번 꺾는다. 그래서 주인공은 기가 죽었지만 끝내 다시금 그 위기를 이겨내고 그를 개과천선시킨다. 이게 과연 모두가 기다려왔던 마지막 권의 스토리일까?
자꾸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이야기를 꺼내게 되는데, 해당 도서에서는 아주 유명한 고서를 여주인공이 가지고 있다는 소식에 이를 훔치기 위해 그녀를 계단에서 밀었고 그녀가 다치는 장면에서 스토리가 시작된다. 그로인해 그녀는 꾸준히 트라우마적인 성격을 보이고 실제로 몇 번 위험한 상황에 빠지기도 하지만 결국 주인공이 이를 지켜내면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이 이야기는 꽤나 개연성 있게 흐르는 이야기다. 초창기부터 계속해서 이에 대한 빌드업을 꾸준히 쌓았고, 독자들에게 위험한 상황이 있다는 긴장감을 꾸준히 흘리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해당 소설은 공감대 자체가 형성되기 어렵다. 성격의 낙폭에 대한 표현도, 사건에 대한 트라우마와 잔상, 그림자도, 그리고 초인적인 적과 범죄자임에도 결국 화과자로 회개한다는 점까지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자꾸만 전개된다. 그러니 독자의 입장에서는 자꾸 이런 말이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집어치우고 첫사랑 이야기나 해주세요."
솔직히 나는 이런 심정으로 마지막 권을 읽었다. 이런 개연성없는 전개로 이야기를 마무리할 것이라면 그냥 집어치우고 연애 이야기나 하다가 마무리해라.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개연성 없는 전개가 책의 말미까지 이어지고, 마지막에서야 잘 이어졌다는 해피엔딩으로 엔딩이라는 천막을 내린다. 이토록 낙폭이 큰 소설이 있을까. 여주인공이 자신의 수족처럼 본가의 능력을 휘둘러 일을 해결해오다 갑자기 감정의 낙폭을 보이며 독자에게 혼란함을 주는 것만큼 1권을 읽던 나는 5권에서 당혹감과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그 미세한 악취를 맡은 순간이 3권 말미였고, 4권 초순이었다. 솔직히 3권으로 마무리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풀어놓은 보따리 속 물건을 다 정리하지도 못한 채 대충 천 끄트머리를 잡고 둘둘 묶어 어깨에 메었으니 이 불편함은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6. 그해 여름 끝 - 엔드
서평으로 따로 다루려고 계획중인 작품 2
나는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옌롄커의 문제작이라고 불리는 「그해 여름 끝」을 포함해 3편의 단편이 담긴 해당 도서는 혹시 편집자가 원고 배치를 잘못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드는 도서였다. 왜냐하면 다른 두 작품보다 처음 배치된 「그해 여름 끝」이 굉장히 충격적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게 왜 당시에 문제작이라고 평을 받고 중국에서 관리했던 작품이었는지, 왜 그가 이후에 작가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는지 눈에 그려질 정도로 충격적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군 생활을 9년간 해온 내게 이 단편은 뭐라고 해야 하나, 조직이라는 거대한 폭풍 앞에 부딪히는 개인과 같은 감상을 줬다. 폭풍 앞에서 돛단배에 탄 개인은 돛을 내리고 폭풍이 지나가기를 빌면서 이리저리 풍랑에 흔들리는 수밖에 없다. 특히나 위계질서가 단단한 조직은 의도하지 않은 사건사고로 개인의 인생이 이리저리 흔들리기도 하니, 내가 봐온 군대와 너무 유사해서 웃겼다고 해야 할지, 기분이 좋지 못했다고 해야 할지.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서평을 통해 더 떠들어보겠다.
시리즈 도서를 읽다보니 17권이나 책을 읽었음에도 6편의 짧은 이야기가 나왔다. 정확히는 2, 3편을 뛰어넘어 3편의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많은 분량이 나와 스스로도 놀랐다.
그리고 이 글을 쓸 때 한 붓에 모두 써내려가지 못해 중간에 끊었는데 그 사이 『룬의 아이들 블러디드』단행본 연재분량을 모두 읽었다. 다음 도서는 25년 6월 30일 출간 예정이라고 했던가, 해당일 전후로 취업에 성공했다면 1권에서 8권까지 모든 책을 사려고 한다. 윈터러, 데모닉 모두 좋았지만 이번 작품은 특히 각별하다. 학생때부터 생각해왔던 이야기들이 소설에 담긴 것만 같아 더욱 몰입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녀의 작품을 읽으며 자랐고 벌써 30이 되었구나, 01년부터 시작된 작품을 쫓아 달린지 3달, 당시의 나와 지금의 내가 겹쳐 보여 즐거운 독서 시간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다음에는 독서모임 이야기를, 그리고 서평을 가져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