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03.
어려서부터 일찍이 편부모 가정에서 자라며 '너는 어른스러운 아이니까'라는 말을 정말 지겹도록 많이 들어왔더랬다. 철없던 당시로서는 어른스럽다는 말 한마디가 이상하리만치 나를 향한 최고의 칭찬으로 들렸던 것 같다. 조금 더 어른스럽게 보이기 위해서 생각하고, 또 행동했었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 나이에 신문 기사를 찾아 읽었고, 어른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사뭇 이 세상을 이해하는 척 점잔을 떨기 바빴던 것이다. 지금에서 돌이켜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아이로서의 시간을 제대로 보내지 못한 채, 너무 일찍이 어른이 되어야만 했었던 당시의 내가 측은한 마음일 뿐이다.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보인다는 것이 내 마음을 지켜내기 위한 일종의 심리적 방어 기제였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의 내가 아이답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었더라면 아마도 지금의 나는 확연히 다른 인생을 살아내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어쩌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다양한 꿈을 꾸었을 것이며, 사람들과 나누는 정의 오고 감에 인색하지 않은 어른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어린이로서의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당시의 나를 이제는 그저 아무 말 없이 보듬어 주고 싶을 따름이다. 그때를 되돌아보는 지금의 내 마음이 그렇다.
'나중에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는지'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기가 어려웠던 이유는 당시의 내가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나름의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된다. 사고의 제약 없이 다양한 꿈을 꾸어야 할 시기에 현실을 직시하는 사고를 가지게 되면서 미래를 그려내는 능력이 무뎌지게 된 것이다. 실제로도 나는 어른이 되어서까지 다소 수동적인 인생을 살아왔었다. 반항기 가득하던 시절에야 나름의 꿈이 있기는 했지만, 당시에 이야기하던 꿈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내 나름의 소심한 반항이었던 것 같다. 나는 절대로 당신처럼은 살지 않겠노라 거칠게 내뱉어 보는 무의식적 독백에 가까웠다고 해야 할까.
이유야 어찌 됐든, 나중에 커서 뭐가 될지에 대한 질문을 당시의 나는 속 시원하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내가 어떤 꿈을 꾸거나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한다고 해도 우리에게 닥친 현실의 크기는 학생이었던 내가 감당하기엔 다소 벅찬 크기의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있는 힘껏 현실을 부정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신체적 나이가 어느덧 성인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고, 스스로가 이미 어른의 정신세계에 머물러 있다 생각했던 나는 '진짜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시기를 좀처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언제까지고 어린아이의 시점에서 '어른스러운' 나로 존재할 수는 없었는데 말이다.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한다'는 주변의 시선들이 나를 옥죄여 왔던 것은 이러한 기억들로부터 시작된다. 이십 대 초입에 들기 직전까지는 세상 앞에서 당당하고 자유로운 멋진 어른의 모습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어른스러운 생각을 하는 나의 계산으로도 사회라는 세상은 언제나 예상 밖 사건들로 가득한 경우가 태반이었다. 심지어 사회에서는 나에 대한 평가가 오로지 결과로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 꿈을 이야기하기엔 눈앞의 현실은 언제나 냉혹했었고, 실패의 과정을 견뎌야 했던 것은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오직 나의 몫으로 남게 되었다.
꿈을 꾸는 과정이 생략되면서 실패의 경험을 빠르게 쌓아가지 못했던 부분이 사뭇 아쉬운 마음일 뿐이다. 하지만 별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것도 결국은 내 삶의 일부였기 때문에.
인생의 다음 장을 넘기기 위해선 그에 합당한 소정의 결과가 필요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다만 지나치게 높은 목표나 완벽한 계획에 초점을 맞췄던 것은 적당한 변명거리가 떠오르지 않을 만큼의 내 실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현재의 능력으로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세웠더라면, 그렇게 조금씩 작은 성공의 경험을 반복했더라면, 어쩌면 조금은 다른 모습의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에 이르러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내게 주어진 오늘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을 살아감에 있어 어른스러운 나의 생각 따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아낸 오늘이 쌓여가면서 진정으로 바라는 내일의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한편으론 과정이 쌓여 단단한 나로 거듭난다는 것이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차지하는지에 대해서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어른스러운 어제의 나를 뒤로하고,
느리지만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오늘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