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의식 과잉에 대한 변명
나는 자의식이 굉장히 강한 편이다. 나는 내가 하루 종일 했던 말을 곱씹으며, 나의 행동을 되돌아보고, 뭐 문제 될만한 건 없는지 살핀다. 자칫 피곤해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이 나가 타인과 소통하는 방법이고, 내 자신의 평안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또, 나는 나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애쓴다. 어떠한 의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원래 타고난 성격이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내 생각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계기는 2010년, 약 1년간 다녀온 미국 어학연수였다.
당시 나는 자취는커녕 집이나 부모님을 떠나 뭔가를 혼자 해 본 적이 없는 이십 대 초반의 평범한 대학생이었고, 그다지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사람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맘대로 산다'의 느낌으로 자주적이지도 못했다. 미국에 가서 머무르게 될 곳은 아주 어렸을 때 나를 본 적이 있다고 하신 먼 친척분 댁이었다. 누군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족이니까 괜찮겠지 싶었다. 미국 드라마나 영화, 당시 좋아하던 가수의 뮤직비디오에서 본 장면들을 생각하며 약간의 기대와 함께 어찌어찌 어학연수 길에 올랐다.
어학연수 과정은 5월에 시작되었는데 나는 미리 이것저것 준비를 해놓기 위해 4월에 미국 땅을 밟았다. 가서 정말 재밌는 일들만 가득할 줄 알았으나, 내가 머무르기로 한 친척집의 식구들도 어쨌든 일상이 있고 매일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보니까 나는 어쩔 수 없이 뒷전이었다.(불만처럼 들릴 수 있지만, 그런 의도는 없다. 오히려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다.) 일단 내가 있던 지역이 교외이다 보니 차가 필수였고, (나중에는 차를 끌고 다니긴 했으나) 처음에는 나를 태워다 주고 태워 갈 사람이 없으면 전혀 외출을 할 수가 없었다. 평일에는 거의 집에서 네이트온으로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얘기를 하거나, 가져간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거나(하루에 두 번씩도 쓴 것 같다), 디즈니 채널을 보거나(여기서 sonny with a chance를 처음 봤다. 너무 재밌었다.), 타운하우스 단지를 산책하거나 했다. 내가 왜 이 한 달이라는 시간을 힘들어했는가, 왜 이 시간이 지옥 같았는가를 되돌아보면 가장 큰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 내가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 나는 아마 인생에서 처음으로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 같다. 그리고 나의 부모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것과 별개로, 내가 여기서 아프면, 죽으면 어쨌든 혼자겠구나 하는 생각에 절로 독립심이 길러졌다. 정말 많이 울기도 울었다.
미국 친척분들도 나를 잘 모르셨기도 하고, 현지에서 다니던 교회에서도 나를 잘 모르시니 나는 나를 어떻게든 증명하려 애썼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착하고 친절한 아이는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었다. 나는 사실 비판적이고, 가끔은 깊은 우울에 빠지고, 진지하고, 특정 농담에는 정색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고 보여주고 싶었다. 어쩌면 티 안 나게 나를 드러낼 수 있는가를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가끔 자의식 과잉인 사람들을 다그치는(예를 들어, 아무도 당신 신경 안 씁니다 류) 글들을 보곤 한다. 너무 자신에 대한 생각에 함몰되거나 강박증을 가지게 되면 정신건강에는 좋지 않겠으나, 자의식은 커녕 자신이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하는지도 모르고, 속된 말로, 싸지르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만 같은 현대 사회에서(?) '자의식'이 조금 더 '자기 자신을 돌아본다'는 원래의 의미를 회복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