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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리 Oct 23. 2021

아빠의 죽음

그 슈퍼바이저는 잘 살고 있길...



둘째가 태어나기로 예정되었던 날에서 열흘 전, 5월 5일이었다. 어린이날이었고, 동생이 태어나기 전에 홀로 만끽할 수 있는 마지막 어린이날이어서 큰아이와 함께 근교로 잠시 나들이를 하러 갔었다. 그 후,  저녁에는 곧 다가올 어버이날을 기념하며 미리 시댁 어른들과 저녁을 먹기로 했었다.

그날 점심,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신랑이 문자 하나를 받더니 심각한 얼굴로 내게 전화기를 내밀었다. 아빠가 보낸 문자였다.  "큰 사위, 우리 딸하고 결혼해서 잘 살아줘서 고맙네. 앞으로도 세리 아껴주면서 행복하게 잘 살게..”라는 내용이었다. 누가 봐도 섬뜩했고, 신랑은 당장 장인어른께 가보자고 했다.



나는 그 순간 망설였다. 아빠가 이전에 우울증으로 오랫동안 앓으면서 자리에 누워 있을 때 여러 사람한테 비슷한 문자를 자주 보내곤 했다. 늘 죽고 싶다고  말씀하시면서 마지막 인사처럼 문자를 보내곤 했다. 그 문자를 받은 사람들은 초반에는 당장 아빠에게 달려갔고,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을 거라 기대하는 마음으로 얼굴을 비추곤 했다. 그런데 마치 늑대가 나타났다고 번번이 거짓말을 하는 양치기처럼 아빠의 그런 행동이 반복되자 가족들과 지인들은 점점 아빠의 문자에 감흥이 사라졌고, 으레 그러려니 하면서 넘기곤 했다. 물론 나도 거기에 포함이 됐다. 걱정하며 밥을 못 먹고 있는 신랑에게 “괜찮아. 아빠 누워있을 때, 종종 그런 문자 보내곤 해. 걱정 마요. 오늘은 어머니 아버님이랑 약속했으니 내일 가자. 내일 가기로 했잖아.” 마침 그다음 날 친정에 찾아갈 계획이었다.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아서 바로 엄마에게 전화했다. “에휴, 네 아빠 또 시작인가 보다. 은서 아빠한테도 문자 했다니? 사방에 친구들한테 다 문자를 보낸 모양이야. 걱정하지 마. 너희 볼일 보고 내일 오렴.” 하셨다. 그렇게 아빠의 문자를 잠시 잊고 저녁에 시댁 어른들을 만나 미리 어버이날 감사 인사도 전하고, 태어날 둘째에 대한 기대감으로 웃음꽃 피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 집으로 이동을 해서 후식을 먹고 있을 때, 엄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늦은 시간에 전화기에 뜬 엄마 번호가 불길했다.

“엄마, 무슨 일 있어요?”


“.... 세리야.. 여기로 와야 될 것 같아. 아빠가….. "


“아빠가 왜? 아빠 어디에 있어요?”


“아빠가 죽은 것 같아. 지금 병원으로 가고 있어. 구급차가 와서 아빠 싣고 갔는데 이미 죽은 것 같아.. 너 배도 부르고 힘들 텐데 어쩌니…”


“엄마 그게 무슨 말이야!! 아빠가 왜? 진짜로? 말도 안 돼…”

아빠는 그날, 진짜로 주위 사람한테 문자로 인사를 전하고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안방 화장실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있는 것을 엄마와 남동생이 뒤늦게 발견을 했다고 했다. 두 사람은 각자 양쪽 편의점에서 일하고 돌아와서 허기짐에 급하게 저녁을 차려서 먹고 있었고, 당연히 아빠는 안방 침대에 누워있을 거로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날은 어린이날이자,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이기도 했다.




아빠의 장례식장에 조문하러 온 대부분의 손님들은 눈물로 울부짖으며 아빠 이름을 하염없이 불렀다. 애통한 장례식이었다. 특히 아빠에게 문자를 받은 친구분이나 가족들은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고, 모두들 자신들이 아빠를 찾아갔다면 이렇게 허망하게 가지 않았을 거라며 자신의 탓으로 돌리곤 했다. 실제로 몇몇 분들은 집에 아빠가 혼자 계실 때 오셨다고 한다. 아무리 벨을 누르고 문을 두드려도 아빠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문을 억지로 열고 들어갔다면 아빠를 막을 수 있었을까.

장례 첫날, 뒤에서 유난히 더 큰 소리로 울먹이는 이가 있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면서. 바로 그 슈퍼바이저였다. 난 이전에 꽤 여러 번 통화를 나눠서 그런지 처음 대면이었지만 낯설지 않았다.

모두가 본사를 탓하고 책임자를 원망하고 싶어 했지만 나는 차마 그 사람에게 모든 화살을 돌릴 수 없었다. 분명 통화를 하면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했었고,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아빠가 그런 선택을 할 줄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그것은 가족인 우리도 마찬가지였기에 그 누구도 쉽게 비난할 수 없었다.

굳이 유가족들이 비난은 하지 않아도 그가 겪을 죄책감과 상처가 얼마나 클지 가늠할 수 있었다. 이제 막 취업을 해서 의욕에 앞서 있던 사회 초년생이 겪기에는 꽤 큰 상흔이 될 것 같았다. 가끔 그 슈퍼바이저가 생각난다. 그 사람은 아빠를 기억하고 있을까. 계속 그 일을 하고 있을까. 그가 어떤 자리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든 부디 잘 살아가고 있길 응원하는 바람이다. 우리 모두는 충분히 아픈 시간을 겪었으니 말이다.







커버 사진: © Tumisu,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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