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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리 Oct 23. 2021

편의점 2호 철회 요구


아빠가 편의점 2호를 오픈하고 얼마 안 있어 다시 몸져누웠다는 소식은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서 내 귀에까지 들려왔다. 아빠의 우울증에 일종의 트라우마를 앓고 있던 우리 가족은 아빠가 다시 누웠다는 말에 심장이 먼저 반응하기 시작했다. 쿵. 쿵. 쿵

바로 아빠에게 전화했다.

“아빠, 왜요? 본사에서 뭐라고 했길래요? 분명 시작할 때 관리하는 거 도와주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어떡하냐.. 아빠 너무 힘들어서 못 하겠다. 매장도 너무 넓고, 재고 관리도 도저히 못 하겠어. 알바도 한다고 그랬다가 오지도 않고, 손님도 생각보다 없어. 그만두고 싶은데 걔네가 지금 그만두는 것도 안된다고 하니 어쩌냐... 지금 엄마랑 막내가 고생하고 있어. 아빠는 가게 못나겠어.”

아빠는 편의점을 운영한 지 겨우 몇 달 만에 자신의 역량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면서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백기를 들고 항복을 했지만, 계약 기간이 아직 한참이나 남은 상황에서 본사에서는 철수를 요구하는 아빠의 청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처음부터 ‘관리’라는 개념이 아빠가 기대한 것과 본사에서 제시한 것에는 큰 이견이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아빠는 분명 슈퍼바이저가 매장 관리와 인사 관리를 본사에서 해줄 테니 점장님은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고 했다. 그러나 본디 그 매장은 본사 직영점이 아니었기 때문에 본사가 관리해준다는 것은 다른 지점보다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겠다는 거지, 전적으로 그들이 다 맡아서 하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매장관리는 전적으로 점장인 아빠의 책임 영역이었다. 분명 계약서에도 그렇게 명시가 되어 있었지만, 아빠는 계약서의 딱딱한 문구보다 슈퍼바이저의 달콤하고 부드러운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것이다.
 
상황을 어느 정도 숙지하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태중에 아이를 품고 있었기에 화를 멀리하고 싶었지만, 도무지 그럴 수 없었다. 그렇지만 문제를 해결하는데 화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일단은 아빠의 심중을 정확히 알 필요가 있었다. 아빠와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 불가능했고, 아빠는 통화 할 때마다 그저 “못하겠어. 더는 도저히 못 해..” 라는 말만 하셨다. 겨우 아빠를 달래 가며 아빠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여쭤봤다.

 “아빠, 어떻게 하길 원해요? 제가 슈퍼바이저 통해서 본사에 요청 사항을 전달할게요. 아빠가 원하는 것을 말해주셔야 저도 정확히 전달을 할 수 있어요. 편의점 철회를 원하는 거 맞으세요? 지금 철수하면 초기 투자금은 회수 못 하고 잃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괜찮으세요?”
 
 “응. 그깟 몇천만 원 잃어도 괜찮아. 그냥 다 없었던 일로 하고 싶어.” 아빠의 의중을 파악하고 엄마와도 이야기를 나눴었다. 처음에는 아빠가 저러다 다시 일어나지 않겠냐면서 그 돈을 어찌 다 포기하냐고 하셨지만, 일단은 사람은 살리고 봐야 하지 않겠냐면서 최대한 본사와 협의를 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그 열정이 넘친다는 슈퍼바이저의 연락처를 물어서 직접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걸기 전에는 나에게 본사는 곧 슈퍼바이저라는 생각에 그 사람에게 격한 노여움이 들었다. 그런데 몇 번 통화 하면서 이 사람도 결국은 본사에 소속된 일개 직원일 뿐이란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는 중간에 끼여서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그의 모습에 안타깝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나는 아빠의 처지를 대변하면서 읍소할 수밖에 없었다.

 “아빠가 저렇게 앓아누우신 게 우리 가족들한테는  다시 또 큰 상처예요. 그쪽 입장도 당황스럽겠지만 아빠는 손해도 감수한다고 하시니 빨리 철회 부탁드려요.”
 
 “네. 점장님이 저렇게 못 하겠다고 나오실지는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본사에 계속 말하고 있는 중인데 일단 기다리라는 말뿐이에요. 저도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싶은데, 일단 지점을 인수하겠다는 점장님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당장 철수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니, 그러면 그때까지라도 본사에서 운영해주시면 안 될까요?”
 
 “저희도 그러면 좋겠지만, 당장 인력이 부족하기도 하고… 조금만 버텨주시면 최대한 빠르게 정리하겠습니다.”

슈퍼바이저와의 통화를 아빠에게 전달했고, 나는 아빠에게 부디 조금만 버텨달라고 했다. 분명 본사에서도 처리하겠다고 했으니 정리가 될 것이라고. 그렇게 지지부진한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갔다. 그동안 양쪽 가게는 집에 있던 두 동생과 엄마가 시간이 나는 대로 도와가며 꾸려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다 잘 해결될 것이란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아빠가 그 긴 첫 번째 터널에서 결국 빠져나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분명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모두가 믿었다.



 


커버 사진: © make_it_special,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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