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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리 Oct 06. 2021

편의점 2호

아빠의 인생 2막이 시작될 줄 알았다.



"이번에 슈퍼바이저 새로 바뀌었는데 K대학 나왔다더라. 아빠한테도 잘하고 괜찮아."


편의점은 본사에서 파견된 슈퍼바이저가 근무 구역을 나눠서 점장 교육과 점포 관리를 도와준다. 편의점을 처음 오픈할 때부터 슈퍼바이저가 있다고 들었지만, 우리에게 위기가 있을 때마다 그 존재가 무색했다. 너무도 다급한 순간에도 점포를 봐준 일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나는 슈퍼바이저가 있는지 기억도 못 하고 있었다.


"그래요? 신출이면 의욕만 앞서는 거 아니에요? 경력이야 이제 아빠가 거의 10년이 된 건데 아빠가 돕는 것이겠구먼."


 "서로 돕는 거지..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 이 사람이 새로운 점포 하나를 더 오픈하는 걸 권유하더라고. 고등학교 바로 근처이고, 지금 매장보다 몇 배나 큰가 봐. 관리도 본사에서 다 도와준다고 하네. 어찌 생각하냐?"




당시 아빠는 우울증의 늪에서 빠져나왔다고 모두가 안심하고 있던 때였다. 랬다. 아빠는 꽤 오랜 시간 우울증으로 온 가족을 힘들게 했지만, 기어이 그 생을 버텨냈다. 편의점은 광명에서 자리를 잡아 매달 알토란 같은 고정적 매출을 만들어줬다. 아빠는 손바닥만 한 구멍가게였지만 자신이 점장으로 있는 편의점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에 슬슬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아빠를 우울 구렁텅이에서 건져낸 것은 안정적인 매출과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자신감이었다. 제 고향 친구들과의 모임에 가도, 예비 사위를 만나도 '편의점 점장'이란 명함 내미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정도면 서울에서 당신 나이에 제법 괜찮은 벌이를 하고 있다는 우월감까지 느끼곤 하셨다. 비록 편의점 때문에 경기도에 살고 있었지만, 아빠는 서울에 자가 집도 소유하고 있었다. 마침 세를 놓은 서울 집의 전세가가 올라서 여윳돈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뭐라고요? 편의점 2호를 낸다고? 아빠 안돼.. 절대 안 돼요. 이제 겨우 아빠 살만하잖아. 엄마도 우리도 이제 괜찮은데 왜 또 고생을 하려고 해요? 더구나 나는 이제 무슨 일이 생겨도 도와주지도 못하잖아요. 그냥 하던 것만 잘하셔요.  제발요."


나는 아빠가 편의점 2호를 내면 어떨 것 같냐는 물음에 단호하고 냉정하게 대답했다. 결단코 안될 일이었다. 그렇게 본인도 힘들었고, 온 가족이 고난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거리다 이제 겨우 빠져나온 것을 알고 있다면 절대 안 될 일이었다. 당시 나는 태중에 둘째 아이가 있었다.


아빠가 편의점을 오픈하고 우울증으로 힘들고 괜찮아지길 반복하면서 나는 그 사이에 결혼도 하고 첫 아이도 낳았다. 친한 친구들조차 깜짝 놀랄 만큼 일찍 결혼을 한 편이었다. 신랑을 만나서 빨리 안정감을 찾고 싶었고, 어쩌면 아빠로부터 해방감을 느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아빠는 내가 결혼한 후부터 안정기에 접어드셨고, 첫 손녀딸을 안아 보면서 본격적인 인생 2막을 준비하고 계실 때였다. 딱 아빠가 환갑을 맞으신 해이기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편의점 2호라니!! 말도 안 될 일이었다.


그러나 기어이 아빠는 편의점 2호를 오픈하셨다.


"네 아빠가 엄마 말을 듣니?! 엄마는 모르겠다! 이번에는 진짜 알아서 한다고 했으니 두고 봐야지..."


아빠가 결국 2호점 계약을 했다고 전해 들은 후에 왜 아빠를 말리지 않았냐고 다그치는 나에게 엄마가 한 소리였다. 친정에 있던 엄마와 동생 둘은 아빠를 말렸지만, 아빠는 호언장담하면서 이번에는 우리가 힘들일이 하나도 없다고 했단다. 본사에서 재고관리와 인사관리까지 알아서 다 해줄 테니 아빠는 그저 점장 타이틀만 하나 더 가진 셈 치라고 하셨다나.


계약 이후에 오픈까지는 순식간에 진행됐다. 편의점 2호점이 오픈을 하고, 나는 부른 배를 부여잡고 큰 아이, 남편과 함께 아빠를 축하하러 처음으로 편의점 2호를 방문했다. 주말 오후에 방문을 했는데 편의점 1호가 위치한 입지와는 한눈에도 달라 보였다. 큰 대로변에서 한참 들어가 있었고, 아빠 설명대로 고등학교와 중학교가 근방에 있긴 했지만, 그 이외의 유동인구는 많은 곳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감지할 수 있었다. 주변이 온통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었다. 편의점 장사의 8할은 많은 유동인구가 유입되면서 즉흥적으로 들러 소비하는 물품이 주이기 때문에 학생들과 입주민들 대상으로는 큰 편의점을 유지하기란 힘들 거라 예상됐다.


오픈 첫날부터 아빠에게 불안감을 내비칠 수는 없었다.


"아빠 축하해요!! 여긴 진짜 넓고 쾌적하네요. 식탁이 몇 개나 있는 거야!!? 학생들이 라면이나 간식 먹기에도 좋겠다. 그나저나, 본사에서 관리해준다는 건 확실하죠? 아빠 혼자 이거 다 관리하기는 너무 힘들 것 같은데요.."


"그럼 그럼. 좋지? 확실히 넓어서 좋긴 하다. 본사에서 도와준다고 했고, 슈퍼바이저도 수시로 온다고 했어. 걱정하지 말아.."


진정 그 말을 믿고 싶었다. 이제 앞으로 아빠 인생에는 탁 트인 활주로만 펼쳐질 것이라 믿고 싶었다. 네 살배기 딸과 뱃속의 둘째만 생각하기에도 벅찼다.


그리고 2014년 4월, 대한민국 전체를 충격으로 빠뜨린 사건이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나에게도 차디찬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던 일, 수학여행을 떠난 고등학생 아이들이 탄 배가 시커먼 바닷속으로 침몰하는 일이 있었고, 나는 비통함에 빠져 잠시 아빠의 편의점 2호에 마음을 쓰지 못했다.


친정 식구들 누구도 곧 태어날 둘째를 품고 있는 나에게 먼저 쉽게 연락을 못 했던 것 같다. 그 사이 아빠는 세월호와 함께 다시 나락으로 침몰했던 것이다. 한 차례 우울증을 극복한 후에 다시 우울증이 재발한 경우, 그 병의 심각성은 그 전과는 비할 수 없이 크다는 것을 아빠가 떠난 후에야 알았다.




커버사진:© bitter_fruitt,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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