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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리 May 05. 2022

슬프지만 웃을 수 있어

약속을 잡고 보니 아빠 기일이었다.


아빠는 둘째가 태어나기 열흘쯤 전에 돌아가셔서  주년 기일인지 자동으로 셈이 된다. 올해로 벌써 9주기가 됐다. 제사를 지내는 집안은 아니라 아빠 기일이라 해도 특별한 이벤트는 없고, 어린이날이  연휴라 아빠 산소는   전주에 다녀오곤 한다. 지난주에  가족이 아빠에게 가서 대답을 들을  없는 ‘아빠  번이고 부르고 왔다.




5월 4일은 여동생 생일이기도 하다. 하필 자신의 생일이 아빠 기일이 돼버려서 애석해지지만, 아빠 생일에 동생의 생일을 축하할 수 있다는 것에 퍽 다행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적어도 친정엄마에게는 그날이 슬프고 아프기만 한 날은 아닐 거란 위안으로 삼을 수 있어서 말이다. 그리고 그날, 나는 이제 태어나 갓 100일을 넘은 아가를 만나고 왔다.


예민했던 둘째가 어린이집에 갈 수 있을 때까지 키운 후, 다시 얻은 직장에서 만난 동료 선생님의 아가였다. 그 선생님과는 일하는 지점은 달랐지만, 본사에서 신입 강사들 교육을 할 때 처음 만났다. 당시 신입 강사들은 나보다 훨씬 어린, 푸릇한 총기와 패기가 넘쳐 보였다. 아이 둘 엄마는 나뿐인 듯해서 살짝 주눅이 들뻔했는데 이 선생님은 내가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인 줄 알았다는 기분 좋은 소리를 해줬다. 그래서 친해질 수 있었을지도. 무엇보다 모의 수업을 할 때마다 가장 열정적으로 임하는 모습이 참 귀했다. 나보다 8살이나 어렸고, 언제나 기분 좋게 잘 따라주는 샘이 참 고마워서 무작정 잘해주고 싶었다. 지점은 달랐지만 종종 만나서 티칭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서로 조언을 구했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학부모들, 아무리 해도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들에 대한 하소연을 나누며 위로와 격려, 무엇보다 서로 공감해주며 꽤 긴 시간을 함께 버텼다.


나는 다시 육아로 일을 그만뒀고,  샘은 다른 곳으로 이직을 했지만 종종 안부를 물으며 지냈다. 그사이 샘은 결혼했고,  1월에 아이를 낳았다.  눈엔 그저 솜털 보송한 애기 같았던 샘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됐다니 기특하고 반가웠다. 엄마의 세계에 입문해서 진짜 동지가  것이. 마침 이사  집도 우리 집과 멀지 않아서 드디어 태어난 아이를 만나러  것이다.


까만 머리카락이 가득 덮여있고 밤톨처럼 어여쁜 얼굴형에 딱 어울리는 눈코입이 앙증맞게 박혀있는 사내아이였다. 사진에서 볼 때보다 훨씬 작디작은 아가는 손과 발을 버둥거리며 자신이 살아있음을 내게 알렸다. 그렇게 나지막하게 생존 신고를 하더니 순식간에 꿈나라로 빠져 자신의 엄마와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고 3시간 내리 잠을 자주는 놀랍도록 순하디순한 아가였다.


유모차를 옆에 두고 우리는 꿈결 같은 수다에 한참 빠져들었다.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 학부모 그리고 동료들 에피소드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 어찌나 신기하던지. 참 힘들기도 하고 때론 벅차오르게 뿌듯하기도 했던 그 시간을 추억하며 여전히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 함께하고 있음에 우린  “좋다, 좋아”를 연발했다.


맛난 점심을 대접해줘서 당연히 커피는 사주고 싶었는데, “, 오늘은 제가  내게 해주면 안돼요?” 했다. 무슨 소린고 하는 눈빛을 보내니 “우리 만나면 항상 샘이 사주신  알아요?! 오늘은  제가 사드리고 싶었어요. 제발요…저도 이제 엄마 됐잖아요!” 하더랬다. 내가 그랬던가. 사실 밖에서 만난 횟수가 많지도 않았고, 상대가 나보다 한참 어렸으며 사회에서 만난 사람 중에 그냥 아무 조건 없이 사주고 싶은   되는 사람   명이었던  같다. 내가 좋아했던 마음을 알아줬다는 것에 고마워 기꺼이 비싼 커피와 디저트까지 얻어먹었다.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다시 확인하고,  사람이 낳은   생명의 신비로움에 탄복하며 그렇게 아빠 기일을 보냈다. 생과 사의 끝없는 반복,  운명의 장난 같은 삶에 때론 지치고 무너지지만,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이렇게 불현듯 만나는 놀라운 생명력을 마주할 때가 아닐까. 아이와 헤어지고 남은 하루를 보내면서 나는 바둥거리던 아이의  희고 자그마했던 손을 생각하며 웃을  있었다. 슬픔이 차오르지만 웃지 않을 수 없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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