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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리 May 28. 2022

오늘은 좋은 하루였어?

함께 잠들려고 침대에 나란히 누워 신랑 손을 잡고 나긋하게 물었다.


"오늘은 좋은 하루였어?"


그가 회사에 있는 동안 간간히 카톡으로 일상을 공유했고, 퇴근하고 돌아온 그에게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브리핑받았음에도 잠들기 전에는 무슨 의식마냥 그렇게 물어보곤 한다. 오늘은 좋은 하루였는지. 그 물음은 나 스스로에게 던져지는 하루의 마침표이기도 하다. 나는 오늘 하루를 잘 보냈는지, 습관처럼 잠들기 전에 오늘도 무탈하게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들게 해 주신 것에 감사기도를 드리지만, 진심으로 난 그렇게 생각하는지 스스로에게 되묻듯 질문을 던진다.


"비교적 좋은 하루였어."  


신랑도 나도 서로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물론 나 스스로에게도. 이 정도면 꽤 근사한 하루를 보내지 않았는가 하는 날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하루의 마지막 의식을 치르며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비교적' 좋은 하루를 보낸 것이라고 온당한 위안을 받곤 하는 것이다.


지난 토요일은 내 옆에 신랑이 없이 혼자 친정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우리 집에는 없고 엄마 집에는 있는 거실 티비로 하릴없이 여러 채널을 돌려보다가 쏟아지는 나른함에 정신을 잃기 직전, 난 그 순간에도 떠올렸다.


"오늘은 정말 괜찮은 하루였어."





지난 토요일은 날이 온종일 맑았다. 모든 것의 채도가 한 톤씩 깊어진, 그런 또렷한 봄날. 그리고 나는 그날 좋아하는 사람과 데이트했다. 벌써 1년 가까이 이어져 오고 있는 온라인 독서 모임에서 인연을 맺은 분과 현실 데이트를 한 것이다. 물론 인친을 현실 세상에서 만난 것이 처음은 아니다. 함께 글쓰기를 하는 모임에서 만난 이들과 함께 모여 좋은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독서와 글쓰기로 만난 인연들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마치 목욕탕을 함께 다니는 절친 같은 느낌이랄까. 내 모든 것을 까발려 투명하게 보였던 이들을 만나는 것은 긴장됐지만 그럼에도 전혀 거리낌 없이 편안한 자리가 만들어지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날 만난 분과도 독서와 모임, 그리고 글을 통해 서로 진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자연스레 얼굴을 보고 싶다는 바람을 비치곤 했다. 그분은 경기 북부, 나는 경기 남부란 먼 거리가 방해 요소인 듯했지만 서울 덕수궁이란 최적의 장소에서 최상의 봄날에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내가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이토록 힘든 사람이라는 것을 엄마란 타이틀을 붙이고야 알았다. 그동안 내가 몸담고 있던 곳에서는 나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같은 취향, 같은 공간, 비슷한 생각을 공유할  있는 이들과의 만남이었기에 특별히 어려운 것이 없었을 뿐이다.  모든 계급장을 떼고 그저 아이 엄마란 이유로 만난 곳에서 나는 이다지도 서툴고, 사람이 어려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좌절과 열등감을 수시로 느꼈다.  뒤로는  곁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곁에 머물고자 다가와 주는 사람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덕수궁 담벼락에서 만난 우리는 함께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고 덕수궁 길을 한참 걷다가 그것도 아쉬워 근처 시립 미술관에 들어갔다. 마침 한 조각가의 회고전이 마지막 전시를 하고 있었다. 취향이 분명한 우리는 조각에는 무지하단 것도 비슷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저 발길이 닿는 그곳에 미술관이 있었고, 마침 우리를 반겨주는 조각 전시회에서 노실에서 실존을 고민하며 손으로 빚어낸 거장의 조각품을 함께 감상하며 슬몃 인생의 덧없음을, 그럼에도 인간의 위대한 존재를 함께 느낄 수 있었다.



내 뒷모습을 찍어주셨다.


웃을 때 눈이 저런 모양이 되는구나. 기쁠 때는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구나. 네모난 줌 스크린에서도 충분히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만나서 이루어지는 대화와 공감은 형언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이 있다. 책과 글로 만났지만, 역시 삶으로 부딪혀 알아가는 그 맛은 따라올 수 없는 법이다. 그녀가 붙잡고 있던 삶의 끈 자락이 어느샌가 내 손에 쥐어졌을 때 나는 그것을 꽉 붙잡았고, 그녀 또한 내가 건넨 내 삶의 끈 자락을 힘껏 잡아줬다. 그렇게 서로가 진심으로 연결된다는 것. 그 감동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렇게 그분과 헤어지고 홀로 집으로 들어가는 봄의 하루가 여전히 너무 찬란해서 집에 있는 엄마를 덕수궁으로 불렀다. 그렇게 이어진 두 번째 데이트. 엄마의 팔짱을 단단히 끼고 덕수궁 안으로 들어가 고궁도 구경하고, 또 마침 벌어진 국악 야외 콘서트를 관람했다. 절로 "얼쑤"하는 추임새가 튀어나왔다. 말갛게 웃는 엄마와 또 한참을 걸어 유명하다는 콩국수를 먹고, 엄마가 좋아하는 호두파이를 사서 친정으로 돌아왔다.


사람만이 줄 수 있는 위로를 다시 찾은 날이었다. 사람과 어우러지는 세상살이가 나에게만 꽤나 퍽퍽하고 어렵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런 날 내 삶의 끈을 잡아주고 있는 이들을 기억하며 살아가야겠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 그 끈을 멀리서 힘 있게 잡아주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지. 그리고 나에게 들려있는 그들의 끈도 버겁다고 놓아버리지 않고 그것이 내 손에 있기에 오늘도 비교적 좋은 하루였음에 감사할 수 있는 나날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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