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몇 년 전 설 연휴에 산악회를 통해 '함백산'에 다녀온 이야기다. 설 연휴 셋째 날을 앞둔 밤, 등산이 떠올라 즉흥적으로 산악회에 신청했고, 다음 날 새벽 곧장 출발했다. 산악회는 3~7만 원 정도의 회비로 왕복 차량과 아침 식사를 제공해 혼자 가기 힘든 먼 산을 가기에 편리했다. 함께 차를 타고 가되, 산행은 혼자 혹은 마음 맞는 사람과 할 수 있었고, 시간만 맞춰 차에 돌아오면 되었다. 함백산 산행 비용은 4만 원, 대구에서 태백까지 편도 4시간 걸렸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자유 산행이 시작됐다. 처음엔 실수로 입구를 잘못 들어 태백산 방향으로 한참 가다가 뒤늦게 잘못된 걸 알고 유턴했다. 한참 후 도착한 함백산 입구에서 혼자 있던 나를 발견한 한 여성분이 내게 목적지를 묻더니 함께 오르자고 제안했다. 초반에는 그 여성분과 함께 올랐으나 속도 차이로 멀어져 결국 혼자 산행을 이어갔다. 상대방은 내 속도를 따라오지 못해서 처음에는 그 사람의 보폭에 맞추려고 애썼지만, 시간도 지체되고 점점 스트레스가 쌓여서 결국 따로 가자고 했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 속도를 맞춰주느라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았고, 애초에 혼자서 산을 오르고 싶었던 터였다.
산행경험이 없어도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초급코스라던 함백산 정상 가는 길은 생각보다 가파르고 힘들었다. 아무래도 쌓인 눈 때문에 바닥이 미끄러워서 더 오르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등산스틱을 안 챙겨간 게 아쉬웠지만, 나무를 잡으며 오를 수 있어서 크게 문제 되진 않았다. 다행히 아이젠은 챙겨갔는데, 이게 없었으면 거의 등산이 불가능했을 뻔했다. 두껍게 쌓인 흰 눈을 밟으며 걷다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눈이 부셔서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함백산 정상까지는 무사히 잘 도착했지만, 다음 코스인 중함백으로 가는 길에서 또 길을 잘못 들고 말았다. 초행길이라 길을 잘 몰라서 산행인들에게 길을 물어보면서 갔는데, 한 산행인이 가라는 데로 갔더니 내가 처음 진입한 입구가 나왔다. 맙소사, 원점회귀코스로 잘못 들어와 버린 것이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갈 엄두가 안 나서 다른 방법이 없을까 싶어서 산악회 가이드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시 왔던 길을 돌아오게 되면 차량 출발 시간을 맞추지 못할 수도 있으니 그냥 거기서 택시를 타든 다른 사람들 차를 얻어타든 해서 절 앞 주차장까지 곧장 오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도로로 나가서 사람을 찾았다. 마침 벤치에서 두 남성이 앉아서 쉬고 있었다. 그들에게 은근슬쩍 말을 붙이고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을 알려줬다. 혹시 여기에 택시가 다니냐는 질문에 그들은 '당연히 안 다니죠' 라며 웃더니 곧바로 내게 목적지까지 태워주겠다고 했다. 이제 막 산행을 마친 뒤 다음 목적지를 고민 중이었는데, 나를 태워주고 그 길로 또 새로운 목적지로 향할 계획이라며, 덕분에 갈 길이 정해졌다는 둥 서로 타이밍이 좋아서 다행이라는 둥 살갑게 말을 붙였다.
나는 그들의 호의에 응하며 차에 올랐다. 차유리에는 ‘차박’ 스티커가 붙어있었고, 차 안은 캠핑용품들로 가득했다. 대화를 나누며 그들이 '서경둘' 이라는 산악회를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나중에 서울이나 경기도 지역에 오면 함께 산을 타자는 제안을 받았다. 전화번호 교환이나 커피 제안도 살짝 했지만, 내 반응을 보고 집요하게 권하지는 않았다. 나쁜 기분은 딱히 들지 않았다. 네이버 밴드 가입도 권유받았지만, 당장 서울 쪽에 갈 일이 없어 가입하지 않았다. 어쨌든 두 사람 덕분에 무사히 주차장에 도착했고, 예정보다 일찍 도착해서 절 구경을 조금 한 뒤 차 안에서 눈을 붙였다.
산악회 차량을 타고 왕복 8시간을 앉아 있으니 몸이 불편했다. 하루를 전체적으로 돌아봤을 때, 특별히 즐겁거나 보람찼던 건 아니었다. 다만 ‘설연휴 동안 함백산이라도 다녀왔다’ 하는 경험 정도는 얻었다는 생각에 아주 약간의 만족감을 느꼈다. 다음 날은 집에서 좀비 영화를 보면서 쉬었다. 비현실적인 공포감이 오히려 짜릿하게 다가왔다.
평소에는 모르는 사람의 차를 얻어 타는 위험한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상황이 어쩔 수 없었고, 결과적으로 아무런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위기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문제해결을 시도한 내 적극적인 태도에 놀랐다. 비록 멀리까지 가서 산을 제대로 즐기지 못 한 건 아쉽지만, 정해진 코스를 완주하는 것보다 이런 예기치 못한 에피소드를 겪은 게 더 값진 경험인 것 같다.
사실 산에서는 언제든 뜻하지 않은 나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단지 이번에는 운이 좋았던 것뿐이다. 지나친 불안과 공포는 용기를 내지 못하게 하고, 행동력을 잃게 한다. 행동력이 사라지면 사람은 집에만 머무르며 인생의 다양한 경험을 놓치게 된다. 내가 그날 즉흥적인 결정을 하지 않았다면 함백산에 다녀올 수 있었을까. 내가 그 순간 그런 용기 있는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무사히 산을 내려올 수 있었을까.
하지만 만약 그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었다면 지금 나는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었을까. 때로는 불안을 억누르고 행동해야 한다. 그러나 그 용기가 어떤 결말로 이어질지는, 결국 운에 달려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내가 아무리 용기를 내도 운이 나쁘면 소용이 없는데. 결과를 장담할 수 없어도, 나는 그래도 용기를 택하겠다. 용기가 언제나 위험을 동반할지언정, 운을 믿지 않고서는 결코 새로운 길을 걸을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