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계속 흐르고, 우리에겐 몇 번의 기회만 남았다.
도봉실내스포츠센터에서 자유 수영을 하고 돌아오는 길. 서울시 자전거인 따릉이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저녁이라 바람은 아직 쌀쌀했지만, 물속에서 한바탕 놀고 나온 뒤라 그런지 바람이 상쾌하게 느껴졌다.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이렇게 수영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바람을 맞으며 기분 좋아할 수 있지만… 과연 이런 날들이 얼마나 남았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많지 않다. 횟수로 따지자면 몇백 번? 시간으로 따지면 겨우 며칠? 갑자기 이 순간들이 엄청 귀하게 느껴졌다. 오래 산다고 해도 나이가 들면 몸이 말을 안 들을 것이고, 또 인생이라는 건 워낙 예측 불가라 언제까지 이런 자유를 누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이 바람, 이 기분을 최대한 음미해야 한다는 소소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고 보면 모든 것은 생각보다 짧다. 나는 지금 결혼해서 부모님과 따로 살고 있다. 부모님을 만나는 횟수는 명절 두 번, 생신에 각각 한 번씩 두 번. 가끔 추가 만남이 있을 수도 있지만, 연간 총합은 손에 꼽을 정도다. 하루 종일 함께하는 것도 아니고, 보통 저녁 식사 후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 정도. 그러면 앞으로 부모님을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대충 계산해 보니 충격적으로 적다. 영원할 것 같았던 부모님과의 시간이 사실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니! 만나면 괜히 잔소리를 듣고, 나도 투덜거리지만, 언젠가는 그 잔소리마저도 그리워질 것이다. 아니, 거의 확실하다.
이런 생각을 하며 자전거를 타는데 바람 때문인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지금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도 찰나의 존재다. 앞으로 다시 마주칠 일이 있을까? 어쩌면 저 사람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사후의 천국과 지옥을 말하고, 누군가는 죽으면 그냥 끝이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윤회를 이야기한다. 뭐가 맞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건 내가 지금 느끼는 모든 것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 봄이 올 때마다 벚꽃을 볼 날도, 겨울에 눈을 맞을 날도, 월드컵을 볼 날도 몇 번 남지 않았다.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다 보니, 원래도 짧았던 시간이 더 짧게 느껴진다.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묘하게 서글퍼지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가 둔감해서 그렇지, 사실 모든 것은 더욱 짧은 찰나다. 똑같이 자전거를 타고 똑같은 길을 지나도, 오늘과 내일의 기분은 다를 것이다. 그리고 자식이 있다면? (아직 없지만 상상해 보자면) 지금은 작고 귀여운 아기지만, 몇 년 후면 “제발 내 방에 들어오지 마세요.”라며 방문을 쾅 닫는 청소년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놈이 자식인가 웬수인가 하겠지만 이것도 한순간이겠지? 성인이 되면 “나 결혼할래!”라며 부모 곁을 떠날 때고. 같은 자식이어도, 지금의 모습은 언제나 찰나일 터.
모든 것이 귀하게 느껴지는 오늘이다. 이런 날은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된다. 평소에는 짜증 났을 일조차도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길에서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쳐도 “아, 이마저도 찰나의 인연이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이 마음이 내일까지 갈 거라는 보장은 없다.)
부모님과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잘해야지, 자주 연락해야지 다짐해 본다. 하지만 내일이 되면 또 원래대로 살겠지. 자전거가 말을 안 들으면 또 씨부렁거리겠지? 늘 그랬던 것처럼. 그래도 지금 이 순간, 스쳐 지나가는 감사함이라도 온전히 느껴야겠다. 결국, 삶이란 그렇게 찰나 속에서 살아가는 것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