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란게 그렇지 뭐... 나를 위한 작은 변명
에어팟 프로의 오른쪽 유닛이 어느 날부터 이상했다. 목소리에 가래가 낀 것처럼 '지글지글' 소리가 났다. 처음엔 내 귀가 이상한 건가 싶었다. 혹은 내가 예민한 건가 싶었다. 하지만 실상은 이어폰 문제인 것을 모를 정도로 둔감했고, 알아보니 종종 오른쪽 유닛이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았다. 알고 나니 더 거슬러졌다. 모를 때는 참을만했는데 알고 나니 '지글지글'한 소리를 참을 수 없었다. 새로 구입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다. 그러니 더욱 그 소리를 참을 수 없었다. 잠깐이라도 들리면 짜증부터 났다. 내 마음은 이미 기존 에어팟에 돌아섰고, 그렇기에 이 자식이 뭘 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이어폰은 일상에서 필요하니 당연히 허락할 줄 알았다. 아내는 실망스럽게도 자신의 이어폰을 주겠다고 했다. 본인을 잘 안 쓴다고. 아쉬웠지만 그런대로 만족했다. 아내는 소니의 WF-1000 XM4(용어가 어려워 항상 이름이 뭐였지? 하며 찾게 된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였다. 내 것보다 성능이 좋았다.
하지만 아내 것도 문제가 있었다. 이어폰을 귀에 꽂으면 5분도 안되어 배터리가 나갔다. 처음엔 충전이 덜 되었나 싶었다. 아내의 이어폰을 충전했다. 문제가 정확히 뭔지 모르기에 이어폰 충전시간이 만겁의 시간 같았다. 난 왜 문제가 있는 상황을 견디기 어려워하는가? 문제가 있을 때 마음이 급해지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반문하며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간신히 그 시간을 참아내고, 충전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연결이 되었고, 배터리는 70%였다. 이제 되나 싶었다.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아무도 없는데 왜 속으로만 환호성을 질렀지? 엉뚱한 생각을 하며 음악을 틀고, 에어팟 프로보다 좋은 소니의 WF 어쩌고저쩌고 하는 친구를 즐겼다. 하지만 놀라운 속도로 배터리가 닳았다. 다시 5분도 안되어 배터리가 방전되었다. 그 허무감이란..
왜 이런지 인터넷에 검색했다. 찾아보니 소니는 배터리 문제가 있었다. 대략 1년 정도 시점에 배터리가 급격히 닳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1년 이내는 무상으로 교체해주기도 하였다. 희망을 갖고, 언제 구입했는지 살펴보니 지나도 한참을 지났다.
방법이 없나? 하며 찾아보니 배터리를 교체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배터리를 구입해 셀프로 고칠 수도 있고, 어느 사이트에서는 조금 더 비용을 보태면 고쳐준다는 것을 알았다. 갈등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셀프냐? 유상수리냐? 그것이 문제로다. 셀프는 자신이 없기도 했지만 수리영상을 보니 할만해 보였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을까?? 만약 실수라도 한다면?? 아찔했다. 하지만 유상수리를 맡기자니 교체하는 방법이 쉬워 보였는데 돈을 추가로 내는 것이 너무나도 아까웠다. 고민 끝에 도전을 선택했다. 돈이 아까워서가 메인이긴 했지만 그래도 도전이라는 멋진 이름을 붙여보기로 했다.
배터리를 온라인으로 찾아봤다. 왜 이런 것들은 한국에 안 팔고 항상 해외배송인가? 한국의 인프라가 아쉬웠다. 모든 사이트가 10일 이상의 배송시간이 걸렸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 시간은 나에게 너무 길었다. 끈질긴 투쟁 끝에 배송에 2~3일 걸리는 곳을 찾아냈다. 이 기업은 이 배터리를 미리 수입해 놔서 다시 배송을 해주는 듯했다. 게다가 가격도 저렴했다. 기뻤다. 서둘러 구입했다. 그런데 그 기업에서 문자가 왔다. 물건이 다 떨어져 해외에서 다시 주문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18일 이상 걸린다고 했다. 나에게 좋은 기업이었는데 순식간에 나쁜 기업이 되었다. 하지만 다시 구입하기에도 에너지가 들었다. 그냥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영겁의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아쉬운 대로 에어팟 프로를 사용했다. 다행인 것은 노이즈캔슬링 기능을 끄면 '자글자글'거리는 소리가 훨씬 덜 들렸다. 들을만했다. 글을 쓰다 보니 그럼 노이즈캔슬링을 끄고 계속 써도 되는 거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 친구는 이미 내 마음에서 떠났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배터리가 배송되었다. 수리 영상을 몇 차례보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끝없이 돌렸다. 이런 수리를 할 때는 항상 침착함과 정확함이 필요하다. 심호흡을 알고 수리를 시작했다. 영상을 보니 열풍기로 이어폰을 데우고, 십자드라이버 같은 것으로 이어폰의 사이에 끼워 뚜껑 열듯 이어폰을 열어야 했다. 열풍기가 없어 헤어드라이기로 대신했다.
처음부터 고난이었다. 손으로 이어폰을 잡고, 헤어드라이기를 켜니 이어폰이 데워지기 전에 내 손부터 데워졌다. 원하는 시간만큼 손으로 잡을 수 없었다. 이에 땅바닥에 놓고 이어폰을 데우니 이어폰이 드라이기의 바람에 날아갔다. 어찌어찌 대충대충 데우고, 십자드라이버로 이어폰의 사이에 끼워야 했다. 하지만 십자드라이버가 없었다. 방을 뒤져 간신히 엇비슷한 귀이개를 찾았다. 귀이개를 사이에 꽂았지만 꽂아지지 않았다. 귀이개의 두께가 그 사이보다 두꺼웠다. 귀이개가 이토록 두꺼웠단 말인가? 아무리 쑤셔도 들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흠집만 잔뜩 났다. 흠집 하나 날 때마다 유상수리가 생각났다. 나는 왜 함부로 도전을 택했던가?
'이대로 포기해야 하나'라는 마음으로 영상을 다시 봤다. 다시 보니 힘으로 두 사이를 벌리고, 십자드라이버를 넣는 것을 보았다. 몇 번이나 봤었는데 난 왜 이걸 몰랐을까? 희망을 갖고 사이를 벌리려 힘으로 눌렀다. 하지만 쉽사리 되지 않았다. 안 되겠다 싶어 입으로 깨물었다. 흠집이고 뭐고 일단 열고 싶었다. 드디어 틈이 벌어졌고, 귀이개의 끝이 그 사이로 들어갈 수 있었다. 행복했다. 간신히 열고, 머릿속에 시뮬레이션을 돌린 대로 배터리를 갈아 끼었다. 섬세한 작업이었는데 뭔가 집중을 하자 평화로운 마음이 들었다. 이런 것도 직업으로 삼으면 재미있지 않을까?라는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천신만고 끝에 양쪽의 모든 배터리를 갈아 끼었다.
하지만 이어폰을 돌아오지 않았다. 난 하라는 대로 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유상수리가 다시 생각났다. 몇 만 원 아까워 이어폰을 통으로 날리다니... 후회가 되었다. 내 마음 한쪽에선 '그래도 좋은 경험을 했잖니? 이어폰 배터리도 갈아보고, 하하하!'라는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했지만 실상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충전이 덜 된 건가 싶어 배터리를 다시 충전했다. 하지만 끝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20여 일간의 이어폰 배터리 교체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뭔가 시간 낭비, 돈 낭비한 마음에 속상했다. 별일 아닌 듯한데 마음이 어지러워졌다. 별일 아닌데 마음이 어지러워지는 내 마음이 더욱 어지럽게 했다. 뭐랄까? 별일 아닌 걸로 속상해하는 내가 초라해 보인다고 할까?
2~3년 전부터 많은 책을 봤다. 내면소통, 불교를 철학하다, 불교는 왜 진실인가, 내려놓음,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등등 주로 마음공부에 관한 책이었다. 책을 보고 마치 뭐라도 아는 것처럼 굴었지만 실상은 이어폰 하나에도 마음이 들썩거리는 게 현실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냐? 이 마음마저도 괜찮다 해줘야지..
신기하게도 이렇게 두서없이 글을 쓰다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그것을 바라보니 조금은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글만으로는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결국 인터넷에서 가성비 제품이라는 QCY 멜로버즈를 구입했다. 원래 4만 원대인 것 같은데 운 좋게도 2만 원대에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다.
이어폰 하나 때문에 이렇게 많은 감정을 오갔다니, 우습기도 했다. 그래도 어쩌겠나. 마음이란 늘 예측 불가능한 것이고, 때론 작은 물건 하나가 생각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수도 있는 법이다. 그러니 이 마음마저도 그냥 괜찮다 해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