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10대였던 1980년대, 학교는 아이 인생에 전부였다.
학교에 가지 않거나, 이유 없이 결석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때는 도덕과 예의범절, 반공 교육을 많이 했다. 우리 집에서 쌍문초등학교는 5분이면 닿는 가까운 거리다. 내가 초등학교 6년간 유일하게 지각한 날이 있다. 4학년이 되고 얼마 안 되었을 때다.
지금은 상상이 안 되지만, 1980년대 초등학교는 한마디로 ‘콩나물 교실’이었다. 한 반에 약 60명의 아이들로 바글거렸다. 그 때는 인원수를 감당 못 해 교실이 부족했다. ‘콩나물 교실’로 불리며, 저학년에서는 오전반, 오후반을 운영했다. 두 반이 한 교실에서 일주일씩 돌아가며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눠 썼던 것이다. 그런데 4학년 학기 초에, 내가 오전, 오후 순서를 착각했다. 한 주의 첫 월요일, 나는 오후반으로 착각해 오후 1시에 등교했다.
내가 교실에 들어서자, 아이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본다.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내가 더 어리둥절했다. 그 때 아이들 책상 위에는 모두 책가방이 놓여있었다. 나는 순간 ‘뭐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애들은 가방에 교과서와 공책을 넣으며 집에 갈 준비를 하던 참이었다.
나는 선생님이 서있는 교탁 앞으로 갔다. 선생님은 “왜 지금 온 거냐?”고 물었다. 나는 “오늘이 오후반인줄 알고 지금 왔다”고 말했다. 나는 교실에 오자마자, 바로 집으로 돌아 가야했다.
집에 와서 엄마에게 얘기했고, 오늘 수업은 전혀 못 했으므로 결석이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내 4학년 통지표에 하루 지각한 걸로 처리되었다.
4학년 11반 담임이었던 김영림 선생님의 배려 덕분에 나는 쌍문초등학교 6년을 개근했고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모두 개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