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食口)’라는 말은 한자 뜻 그대로 ‘먹는 입’이다.
식구가 여덟 명이라는 것은, 한 집에 먹는 입이 8개라는 뜻이다. 한참 성장기에 얼마나 먹고 싶은 것이 많고 배불리 먹고 싶었을까. 어린 시절 생각하면 어려운 형편임에도, 한 번도 끼니를 거른 적이 없다. 또 식량이 부족해 양껏 먹지 못 한 적도 없다. 내 체구에 맞게 엄마가 해주는 밥을 양껏, 뭐든지 맛있게 먹었다. 사실 넉넉지 않은 집에서 매일 삼시 세끼, 8식구가 먹는 일은 그리 만만치 않은 일이다. 생계는 결국 먹고 사는 문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시절, 여섯 명이나 되는 자식들을 어떻게 먹이고 키웠을까. 철부지 막내로 자랄 때는 몰랐는데, 철이 들고부터 새삼 부모님의 희생을 생각하면 애잔한 마음이 든다. 막내딸인 나는 이런 가정환경에서 식탐이 먼저 생겼다.
내가 좋아하는 소시지, 오뎅(어묵), 계란은, 밥상에서 순식간에 없어진다. 그래서 내 밥그릇에 좋아하는 반찬을 미리 올려두고 먹었다. 어릴 적 이런 습관 때문인지, 어른이 되서도 식당에서 여럿이 식사할 때면, 좋아하는 반찬을 내 밥그릇에 먼저 올려놓는다. 본능적으로 나오는 이런 내 행동에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딸 다섯, 맨 밑에 아들 하나, 나는 딸 다섯 중에 막내라, 늘 막내딸로 불렸다. 형제 많은 집에 막내로 자라다 보니 내 옷, 내 학용품, 내 신발, 내 방 등 유독 내 것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내게 새 옷과 새 신발이 생기는 때는 입학 시즌이나 설날, 추석 등 명절이다. 그래서 내가 가장 기다리는 날이 입학식, 설날, 추석이었다. 추석을 앞두고 엄마와 시장에 가는 것이 가장 즐거웠다. 새로 산 옷을 입고 새 운동화, 새 구두를 신고 온 동네를 팔짝팔짝 뛰어다녔다.
내가 자라면서 가장 큰 불만이 있었는데, 나만 돌 사진이 없다는 것이다. 내 아기 때 독사진은 유모차에 앉아 있던 거 달랑 한 장이다.
내가 이따금씩 “왜 나만 돌 사진이 없어?” 물으면 엄마는 “그때 어렵게 살았어”라고 한다.
나는 “하필 왜 내가 돌 때만 어려웠어? 어렵게 살았어도 언니들과 동생은 다 돌 사진 찍어주고, 왜 나만 없는 거야?” 이렇게 말하면 엄마는 아무 말을 못 했다.
며칠 전 사진을 정리하다가, 나는 또 돌 사진 얘기를 꺼냈다.
“왜 나만 돌 사진 안 찍었어?”
이번에는 엄마가 반격한다.
“내가 너 쌍문초등학교 입학 때 수유시장 가서 원피스 예쁜 거 사다가, 꽃밭 앞에서 찍어주고, 그 사진 얼마나 예쁘니? 갓난아기 때, 사진 없는 게 뭐가 큰 문제라고?”
‘그래, 내 쌍문초등학교 입학 때 예쁘게 찍은 사진이 있구나. 이거라도 있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