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을 아는 게 중요한 이유
오늘은 2회차 상담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앞서 5화에서 '나와 소통하지 않은 결과가 드러났다'고 표현한 바로 그 회기이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울었나 머쓱하지만 그때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평생 달리기 선수로 살며 금메달을 꿈꾸고 있었는데, 가벼운 염좌로 들른 병원에서 '선천적으로 뛰지 못하는 몸입니다. 지금까지 뛴 것만도 기적입니다'라는 진단을 받은 것 같았달까. 나의 자랑이었던 시간들이 자기학대로 돌변한 기분이었다. 더불어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했던 것 같다.
내 기분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2회기는 공교롭게도 1회기보다 기분 좋게 시작되었다. 상담사와의 소통이 처음보다 훨씬 부드러웠기 때문이다. 또, 내가 1회기 이후 작은 진실 조각을 스스로 찾아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 선생님, 제가 지금까지 제 자신과 건강한 관계를 맺지 못했던 것 같아요.
다시 상담사와 만날 때까지 나는 평정을 잃은 내 상태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그러면서 지금껏 몰랐던 증상을 자각했다. 내가 타인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 무의식중에 숨을 참고 내 표정을 간수하려 든다는 점이었다. 상대방이 얼굴을 보지 못할 상황에서조차 그랬다. 마치 내가 내 눈치를 보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상담사는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웃음을 터트리며 이렇게 말했다.
상담사: 상담 그만하셔도 되겠는데요. 어떻게 그렇게 바로 정답을 내셨어요?
글로 써보니 알겠다. 정말 무서운 대답이다....하지만 그때의 난 그가 날 칭찬한 거라 받아들였다. 타인의 인정에 목마른 어린 양은 무시무시한 계시를 눈치채지 못하고 일주일 간의 성과를 자랑스럽게 보고했다. 상담사는 열심히 맞장구치며 간간이 '대단하다'고 감탄했다. 칭찬을 한껏 들이켜 만족스러워진 나는 오늘이야말로 내 진가를 선보일 수 있겠다고 자신했다. 의연하고 여유 있는 사회인으로서의 모습 말이다.
그 기대감은 그리스 비극의 형태로 실현된다. 나는 그날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던 내 참모습을 보게 됐으니 말이다.
상담사: 오늘은 MMPI와 TCI 결과에 대해 해석할 거예요. 저번에 하신 검사들이요.
MMPI와 TCI에 대해 잠시 설명해야겠다. 사전 정의를 가져온 거라 말이 어려워도 이해해주길 바란다. MMPI는 '개인 성격과 정신병리학적 특성을 판별할 수 있는 현존하는 가장 신뢰도 높은 검사'다. TCI도 비슷하다. 다만 이 검사로는 '개인의 선천적 기질과 후천적 성격 특성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보통 둘을 같이 실시하는데, 그래야 내담자를 다각도로 분석할 수 있다는 모양이다.
앞서 2화를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예전에 성격기질 검사를 했을 때 나는 상담사로부터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때문에 또 한 번의 칭찬을 기대하며 말에 귀를 기울였다. 상담사는 MMPI 검사로 서두를 열었다.
상담사: 우선 이 그래프는 얼마나 정직하게 검사에 임했는가를 보여주는 거예요. 이 결과에 따르면 내담자 분은 솔직하고 순수한 사람이에요.
순수함과 솔직함. 내 안에서 '선한 사람'의 기준을 충족하는 결과에 만족감을 느꼈다. 하지만 한국어는 끝까지 들어야 하는 법이었다.
상담사: 그런데 그게 과해요. 보통 사람들은 본인을 높이고 싶어하는 건강한 허영심이 드러나거든요. 그 수치에 너무 오차가 없어요.
그는 나의 학업 성취도를 고려할 때 자아를 억압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했다. 한 마디로 좋은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상담사와 눈이 마주쳤을 때 가슴이 뜨끔했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단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는데, '착한 아이여야 한다'고 속으로 되뇌던 밤이 떠오른 탓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즈음이었다. 그 시기에 a와 나는 엄마를 중앙에 두고 셋이서 잤다. 퇴근하고 돌아온 엄마는 가끔 우리가 달라붙는 걸 불편해했고, a는 엄마에게 더 매달리고 싶어서 날 견제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창문 쪽에서 혼자 자기 시작했다. 엄마가 뒤에서 불러도 괜찮다고 하면서. a를 자극하고 싶지도 않았고 엄마를 피곤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마주한 벽이 차가워서 눈물이 나도 꾹 참고 잠을 청했다. '이래야 착한 아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작은 기억이 왜 그리 생생하게 떠올랐는지 모른다. 내가 말을 잃은 사이, 상담사는 다른 지표들을 하나씩 설명해갔다. 우울감, 히스테릭, 강박, 수줍음. 나와 관련 없다고 생각해온 지표들이 눈을 찌를 듯이 치솟아 있었다. 지금껏 믿어온 나란 존재가 허구였다고 고발하는 것 같았다. 이럴 리 없었다. 대체 왜? 난 그런 사람이 아닌데. 혹시라도 그런 사람이 될까봐 얼마나 노력했는데.
상담사가 '극히 내향적'이라는 얘기를 꺼냈을 때는 완전히 당황해서 반박했다.
나: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은데요. 말도 잘하고 사람도 잘 만나요. 애초에 내향적이면 이 일을 못해요.
상담사는 답했다. 아주 확고하게.
상담사: 노력하시는 거죠. 그럴 수 있어요. 잘해왔다면 성과에는 문제가 없었겠죠.
그는 덧붙였다. '하지만 그 노력을 스스로가 인정해주지 않으면 마음에 문제가 생겨요.'
상담사는 히스테릭과 강박은 기질에 맞지 않은 일들을 수행하며 강화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벅찬 목표를 수행해야 했기에 신경질적이고 강박적으로 자신을 몰아붙였다는 것이다. 그동안 나의 자랑이었던 노력의 날들은 성과 외에도 원치 않는 흉터로 내면에 남아 있었다.
TCI 검사 결과는 더 충격적이었다. 기질의 네 가지 지표 중 '위험회피'와 '자극추구'가 너무 높았다. 그 중 위험회피는 검사로 나올 수 있는 최고치였다. 그게 뭔지 모르는 상태로도 단어에서 불길함을 느꼈다. 방어기제에 이어 기질까지 회피 만렙이라고?
내 표정을 본 상담사는 위로하듯 말했다. '이런 분이 처음은 아니예요.'
상담사: 자극추구는 쉽게 말해 호기심이에요. 뭐든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거죠. 근데 위험회피는 경계심이라 하기 전에 걱정부터 하게 돼요.
자동차에 비유하면 자극추구는 엑셀, 위험회피는 브레이크다. 편하게 운전하기에는 둘 다 무난한 편이 좋다. 그러나 나처럼 양쪽이 극단적으로 높은 경우, 운전 스킬이 중요해진다. 이때 핸들에 해당되는 지표가 '자율성'이다.
자율성 점수를 보여주기 전에 상담사는 말했다.
상담사: 이것 때문에 저를 찾아오신 것 같아요.
나는 화면의 지표를 보았다. 막대 그래프가 한없이 마이너스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그 옆에 달린 점수는 8이었다. 최대 100이 나올 수 있는 검사에서 8.
죽을 때도 아닌데 지난 날이 주르르 눈앞을 스쳐갔다. '대체 어떻게 살아온 거지?' 망연자실한 나에게 상담사는 서둘러 자기 사례를 이야기했다. 자신도 자율성이 많이 부족했다, 점심 메뉴도 못 정했다, 좋아하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등등. 나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 그의 말을 끊었다.
나: 저는 아니에요. 회사에서 중요한 일은 제가 주도하는데요. 하다못해 점심 메뉴도 제가 정하는 편이고.....
그랬다. 크고 작은 프로젝트부터 회사 워크샵, 회식, 팀원 케어까지 나는 많은 일들을 주도적으로 진행했다. 내가 선호하는 취미, 음식, 색깔도 뚜렷했다. 모두가 말하는 나는 주관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
그런데.....주관이 강한 사람이 모두에게 호감을 살 수 있나?
그때 어떤 깨달음이, 얼음을 어금니로 깨물었을 때처럼 턱부터 관자놀이까지 찡하게 올라왔다. '한 대 맞은 것 같다'는 관용어를 실감하게 하는 강한 충격이었다. 숨이 가빠지더니 어느 새 나는 울고 있었다.
나: 혹시...제가 남이 원하는 대로 살고 있던 거예요? 의식도 못하고?
학교폭력으로 점철된 중학생 시절, 그 후 고등학생 시절까지 나는 주변에 뭔가를 양보하기 바빴다. 숙제건, 준비물이건, 필기노트건. 뺏기기 전에 내주면 내가 양보한 거라고 자기합리화 할 수 있었으니까. 그때의 비굴함을 자각도 없이 반복하고 있었다고 생각하자 이제까지의 삶을 찢어 재구성하고 싶을 만큼 수치스러웠다. 삶을 지탱해온 자부심이 모멸감으로 전환되는 건, 정말 억울할 정도로 찰나였다.
나는 첫 상담 때보다도 서럽게 울며 횡설수설 했다.
나: 하나도 안 바뀐 거였네요.....저를 식민지처럼 다루고 있었어요. 자각도 없이.....
그때 상담사가 '잠시만요'라며 말을 끊었다. 안 그래도 말이 힘들던 나는 지시를 따랐다. 그는 그런 나를 보더니 결심한 듯 말했다.
상담사: 사실 모든 내담자에게 검사결과를 전하진 않아요. 좋은 것만 알려주기도 하고, 아예 언급하지 않기도 해요. 그런데도 다 공개한 건 내담자 분의 능력을 믿어서예요. 이게 효과적일 거라 판단했어요.
상담사는 덧붙였다. '그런데 예상보다 너무 빨라요.'
갑자기? 뭐가? 나는 눈물이 철철 쏟아지는 와중에 퀴즈를 받은 것 같았다. 부연설명이 이어졌다.
상담사: 알아차리는 속도가 너무 빨라요. 그러면 세세한 감정을 놓칠 수도 있고, 마음이 힘들어질 수 있어요.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에 만날 때까지 아무 생각 말고 쉬어요.
그는 내가 입고 있던 목폴라로 주의를 돌린 후에('멋있어요. 하늘색도 어울릴 것 같아요'), 분위기가 환기되자 부드럽게 말했다.
상담사: 내담자 분은 갖고 있는 자원이 많아요. 잘 해나갈 수 있을 거예요.
그가 말한 자원 중 하나는 '정서 감수성'이었다. 정서 감수성이 높은 사람은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폭이 넓다. 잡히는 채널이 많은 라디오라고 할까. 지금까진 그 탓에 타인에게 쉽게 동조되어 나를 잃었지만, 그 능력을 본인에게 사용하면 내면의 감정을 빨리 감지할 수 있다. 이는 그만큼 나를 빨리 되찾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또, 성격 유형의 두 요소인 '연대감'과 '초월수치'도 월등히 높았다. 이처럼 자율성은 낮고 연대감과 초월수치가 높은 유형을 L-H-H라고 하는데, 상담사에 따라서는 '다정한 타입'으로 분류하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전에 받았던 상담에서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들은 건 이 때문이라 추측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슬프게도 자율성은 행복하고 안정된 삶을 사는데 너무나 중요하다. 자존감의 핵심 키를 쥐고 있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자율성을 키우기 위해 시도해본 방법은 다른 글에서 자세히 다룰 계획이다.
상담이 끝나고 나는 눈물이 멎기를 기다리며 다른 쪽으로 생각을 돌렸다. 마침 이틀 뒤에 서울로 올라갈 일이 있었다. 오랜만에 할아버지의 간호에서 해방된 엄마와 맛있는 것도 먹고, 연극도 보기로 했다. 기분 전환을 하기에 완벽한 일정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페리도트식 마무리 멘트에 익숙해진 분은 아셨겠지만, 나는 예상과 전혀 다른 주말을 보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