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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우 Apr 10. 2021

이해할 수 없는 너의 취향

비밀; 사랑할 때 감춰야 하는 마음들

미용실에 앉아 있다. 펌이 곱슬곱슬 말리도록 열을 쬐는 동안, 읽다 엎어둔 시집 한 권을 집어 들고 자리를 고쳐 앉는다. 머리를 잘라주던 여성이 커피를 가져다주면서, 슬쩍 표지를 훑고는 묻는다. “이런 거 읽어요?”

 “이런 거요?”라고 되물을까도 생각했지만, 그녀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간 손에 시집을 들고 있을 때마다 적잖이 들어왔던 터라 참는다. 굳이 답하지 않았다. 굳이 대답하지 않은 것은, “네. 이런 거 읽습니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미용실에서 나와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자주 가는 카페로 발걸음을 옮긴다. 늘어진 계산 줄을 기다리며, 앞선 사람들의 주문 메뉴에 관심을 갖는데, 한 여성이 시럽 세 번 넣은 라테를 주문하는 것을 보고 “이런 거 먹어요?” 묻고 싶은 것을 속으로 삼킨다.     

 나는 ‘ㅅ’을 사랑한다. ‘ㅅ’을 노트에 적는 때 왼쪽으로 한 획, 오른쪽으로 두 획을 긋게 되는데, 나는 이게 꼭 사람의 앞머리를 가르는 작업 같기도 하고, 우거진 수풀을 헤치고, 어디 떨어져있을지 모르는 보물을 찾는 작업 같기도 해서 묘하게 흥분 된다. 그리고 나는 이 은밀한 속성을 가진 ‘ㅅ’옆에 어울리는 자음을 가져다 붙이는 것으로 나라는 사람을 소개하기도 한다. 그러면 시옷이 가진 은밀함의 기운이 내가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들을 적절히 감쳐주는 것만 같아 타인 앞에서 조금 더 용감해질 수 있다. 대게 나의 일상을 함께하는 ‘ㅅ’들을 소개한다.      

 시 서점 사랑 실험     

 시를 읽는다. 시를 읽는다는 건, 일종의 작가가 설정해둔 비밀번호 4자리를 맞춰는 일, 그가 걸어둔 생각의 자물쇠를 푸는 일과 같다. 언제부턴가 너무 쉽게 읽히는 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나체만 보면 흥분을 감추지 못하던 사춘기 소년의 신경은 이제 잠잠하다. 적당히 가려진 것들로부터 매력을 느낀다. 나체보다 매끈한 윤곽에 예민해지는 시기가 되었다. 글도 마찬가지.

 침대에서 내려오기 전, 시 한줄 읽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따르지 않는 처지로서 일어나는 시각에 대한 규정이 없다보니, 몇 시인지 확인하려고 집어든 휴대폰에 오전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잦았다. 밤새 충전이 필요한 휴대폰은 침대에서 멀찍이 꽂아두고, 그 자리에 시집을 놓아두면서 고단한 내면에 아침과 시詩가 찾아왔다. 어떠한 동물도 키우지 않는 입장에서 내게 시는 반려견의 자리를 대신한다. 시로부터 사랑을 받고, 나는 그 사랑을 연인과 가족에게 나눠주니까. 그래서 읽을 시가 떨어지면 서점에 간다. 시가 없다는 말은 사랑이 없어 속이 허하다는 말과 같다. 

 서점만 가면 나는 ‘이런 거’ 읽는 사람이라는 것을 체감하게 되는데, 시집 한 권을 선택하기 위해 서가 앞을 독차지하고 있어도 비켜달라고 눈짓하는 사람이 없다. 자기계발 도서가 즐비한 서가 앞에서 시가 꽂힌 서가는 무인도가 된다. 여론에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잘난 척이 되기도, 같은 걸 먹지 않아서 불편해하기도 한다. 그걸 또 모르지 않아서, 적당히 감추고 사는 것을 우리는 사회생활이라고 부른다.      

 요즘은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에 만족한다. 좋은 건 이유 없이 좋기도 하지만, 싫은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이유를 발견하는 과정은 수학문제를 푸는 것과 같아서 한 문제에 대해 지독히 오래 생각할 때만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싫은 것이 많다는 건, 그만큼 나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는 말, 해야 되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정확히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보편적인 것들을 버리는 때 나를 알게 되는 거라 믿는다. 아무도 찾지 않는 시를 읽으러 서점에 가고, 서점을 즐겨 오는 연인과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이 밋밋해지지 않도록 다채로운 실험을 거듭하는 건, 다 시詩 한편 때문이다.     

 이해하기 힘든 연인의 취향이, 어쩌면 사랑을 지탱하고 있는 뿌리일 수도 있는 거다. 우리는 그 뿌리에 물과 양분을 주고 잘 키워내도록 부여받은 임무를 또 다른 사랑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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