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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우 Apr 10. 2021

그놈 칭찬

비밀; 사랑할 때 감춰야 하는 마음들

사랑을 시작하는 때가 오면, 굳었던 마음은 녹아녹아 흐를 수 있는 상태가 된다. 봄이라는 단어만으로 간지러울 수 있으며, 길가에 핀 꽃 한 송이에 시선을 압도당하기도 한다. 반면 별 일 아닌 일에 크게 화를 내거나 섭섭함을 느끼기도 하는데, 이게 다 마음이 굳어 있지 않다는 증거. 누군가를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 확신이다. 

 흐를 수 있는 것들은, 담고 있는 용기가 완벽한 균형을 이루지 않는 한, 미세하게 기울어지는 쪽으로 전부가 치우치게 된다. 그래서 자주 웃고 자주 붉힌다. 사랑 앞에서 우린 모두 어린 아이가 되고 마는 것이다. 시소 위에 올라탄 나의 감정이 상대의 무게를 이기고 내 쪽으로 기울어지는 때, 은근한 뿌듯함을 느낌과 동시에 상대의 마음이 그만큼 가볍다는 사실에 섭섭함을 느끼기도 한다. 흐를 수 있는 건 쏟아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매번 그 사실을 잊고 사랑을 시작하고, 실패한다. 

 가득 담긴 물잔에겐 톡 건드리는 실수가 가장 위험하다. 잔이 기울어, 속에 담긴 물이 쏟아지는 상태를 우리는 질투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질투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들을 의식할 때 싹이 트는 독버섯이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그 녀석을 칭찬하는 것이 그렇게도 싫다.        

 사랑을 시작하는 때 누구나 그렇듯, 당신을 온전히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내게도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당신의 마음 안에 남자는 온전히 나 하나이길 바라는 마음이었고, 세상에 나 말고 다른 남자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이다. 

 당신은 그럴 의도가 없었다 하겠지만, 자꾸 그 녀석을 내 앞에서 칭찬하는 소리가 나의 약점을 쑤시고 비트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 건 다 내 속이 좁아서 그렇다고 하겠지. 그래서 말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는 거다. 그의 얼굴이 조금 잘 생기고, 능력이 탁월하다는,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를 사실을 머릿속에서 곱씹으며, 초라한 자격지심을 느낀다.     

 나는 이성친구의 존재만으로 질투하는, 혼자 조선시대를 사는 꽉 막힌 선비가 아니다. 그에게 자꾸 기대려는 낌새가 보이는 때 질투하는 것이다. 칭찬이 그 낌새의 빌미를 제공한다는 것도 모르고, 당신도 눈치 없기는 나를 탓할 일이 아니다. 질투는 언뜻언뜻 휩쓸려 가는 것이며, 정지할 수 없는 것이어서 이성도 막아설 수 없는 것이다. 가끔 나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폭주기관차가 된다.     

 지킬 것들을 지키기 위해, 감추는 것도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한다면, 이 땅에서 당신이 아는 남자는 나 하나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도,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밀약이지 않겠나. 알면서도 속아주겠다고 약속한다. 질투는 상시 끓고 있는 용암과도 같아서, 제거하는 방법은 애초에 없는 것이다. 단지 폭발하지 않도록 잘 다스리는 역할만을 당신에게 기대할 뿐이다. 모든 잘못이 내게 있다 해도, 질투만큼은 당신의 잘못도 다분하니까. 

 그거 하나만 알아두시라. 나는 당신과 열차를 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 녀석이 큰 부자라면 자가용 비행기도, 배도 손에 넣는 것이 가능하겠으나, 열차만은 분명 그렇지 않다. 열차는 애초에 함께 탄다는 운명을 타고난 탈 것이다. 그 기나긴 열차 칸칸을 당신과의 추억으로 채울 수 있는 사람도 나뿐이라는 사실. 아, 질투가 나서 하는 고백은 아니다.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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