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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우 Apr 10. 2021

초심과 달리

비밀; 사랑할 때 감춰야 하는 마음들

사랑은 변한다. 진정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사람 어디 있는가.     

사람한테 느끼는 감정은 마르지 않는 강물 같아서 언제나 흐른다. 변하는 게 있다면 계절에 따라서 흘러가는 강물의 양과 감정의 양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 자주 비가 내리는 여름철, 물이 불어나 강이 범람하듯이 사람에게 쏟은 정성의 양이 지나치면 옆 사람을 휩쓸고 가버릴지 모른다. 또 가뭄이 자주 드는 가을철엔 그 강에 의존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목마르고 허기지게 한다. 그럼에도 강물은 여전히 흐른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때, 마음은 목적 없이 부는 바람에도 자주 일렁인다. 잔열이 지속되는 감기를 오래 앓은 것처럼 예민하고 불안하다. 강물로 치면 하루에도 몇 번씩 가뭄과 홍수를 반복하는 일, 그런 울렁임을 속에 담고 사는 일이 누군가를 지독히 사랑하는 일이다. 여행은 떠나기 전 공항으로 가는 길이 가장 설레는 것처럼, 사랑도 시작하기 전에 몰아치는 파도가 가장 웅장하다. 이때 파도는 두리번거리지 않는다. 그녀가 서 있는 곳, 오직 그곳만 보고 달린다. 누구도 막아설 수 없도록 파도는 망설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파도는 없다. 영원한 설렘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막상 그녀와 사랑을 약속한 사이가 되면, 파도는 잔잔하게 흐르던 강물로 되돌아간다. 막상 여행지에 도착해서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 연인은 그런 당신의 마음에 적잖이 실망하게 될 것이다. 가졌으니 변했다고. 한동안 당신은 연기를 하게 될 것이다. 파도의 유효함을 증명하려 안간힘을 쓰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다 그 마저도 지치면 떠나는 거다. 

 파도가 수그러 드는 일, 강물이 파도치기 이전의 온순한 강물로 돌아가는 일, 나는 그러한 일들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연인이 변함없이 파도치기만을 바란다면 그건 나 스스로가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사춘기 소년 시절에 머물겠다고 응석부리는 것과 같다. 자연은 막을 수 없어 자연이고, 사계절이 돌고 도는 것처럼 변했다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마음도 자연의 일부분이라면, 그 변화를 막을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남았다면 물길의 방향을 바꿔주는 일일 것이다.       

 은밀한 비밀 하나를 고백한다. 사랑하는 동안 나는 늘 삽 한 자루를 가지고 다니면서, 당신의 마음에 물길을 내고 있었다. 당신은 몰랐겠지만, 지금까지 당신이 흘러온 길은 내가 소리 소문 없이 파놓은 은밀한 길이었다. 만약 내가 물길을 내지 않았다면, 당신이 흐르기로 예정되어 있던 길을 걸었겠으나 그 길 끝에 이별이 있을까봐 의도적으로 당신의 물길을 바꿔놓았다는 사실을 이제와 고백한다. 그 물길의 모양은 뫼비우스 띠와 같아서 당신은 앞만 보고 흘렀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길을 계속 따라 흐르다 보면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어 있었다. 내겐 파도를 거스를 힘이 없고, 자연의 이치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당신의 마음이 변한다 해도 막을 방법이 없는, 여리고 약한 존재라서 할 수 있는 대로 당신을 붙잡아 두려는 얄팍한 속셈이었다. 이런 나의 의도를 알고도 모른 척 하는 건지, 정말 모르는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어느 쪽이더라도 계속 이 길을 따라 흘러주길 바란다. 

 우리가 걷는 길이 경사가 높아 힘들지 모르지만, 물길을 파는 나도 그 길을 따라 걷는 당신도 초심이라는 시작점에서 한 번은 다시 사무치게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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