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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우 Apr 10. 2021

둘도 좋지만, 가끔은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지

비밀; 사랑할 때 감춰야 하는 마음들

매일 혼자 먹는 아침밥이 있어 나는 악해지지 않는다.     


전작 에세이 <혼자 있는 시간에 익숙해질 때> 출간으로, 이미 혼자의 소중함에 대해 여러 번 어필한 바 있다. 간혹 책 제목만 보고, 연애 못하는 남자의 자기변호쯤으로 생각하는 분도 계셨고, 비혼주의가 아니냐는 질문도 수차례 받았다. 하지만 둘 다 아니다. 혹시라도, 솔로의 마음에 공감해서 책을 구매하신 분이 계시다면 이 자리를 빌려 사과한다. 나는 사랑 없인 못 사는 사람이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힘을 얻고, 주었던 사랑을 되돌려 받을 때 그 힘이 폭발한다. 나는 그 에너지를 차곡차곡 모아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일상의 힘겨운 쳇바퀴를 굴리는데 사용한다. 연인의 사랑은 대가 없이 따뜻하게 덮어주는 오리털 이불이니까. 

 그럼에도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랑하는 것은 내가 허언증 환자라서가 아니다. 나는 사랑 없이 못 살지만, 혼자만의 시간 없이도 살지 못한다. 이건 사실이다. 

 일상에는 작은 눈치조차 보지 않을 때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 오전 열시, 햇살이 막 집안을 환하게 비출 무렵 창가 언저리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햇살이 자기로 빚은 잔에 스미는데, 이때 잔 표면에 상처난 얇은 스크래치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이게 신기해서 잔을 이리저리 돌리다, 결국 한쪽 모퉁이가 깨진 부분까지 발견하게 된다. 매일 같은 잔을 사용하지만 햇살이 없고, 혼자가 아니어서 눈치 채지 못했던 커피 잔의 상처를 뒤늦게 발견하고 위로한다.

 영화도 둘 보다 혼자일 때 집중이 더 잘 된다. 장르가 멜로라면 더욱 그렇다. 배우 한석규, 심은하 주연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봤더라면 알겠지만, 이 영화 지독히 쓸쓸한 영화다. 내가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한석규였다면, 죽는 날까지 심은하 손잡고 놀이동산도 가고, 바다 보러도 갔을 거다. 하지만 한석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자기가 죽은 뒤에 연인에게 남겨질 아픔을 배려해, 심은하로부터 한 발짝 물러서기로 결심한다. 쓸쓸히 혼자 죽기로 마음먹고 연락조차 않는다. 영화에서 한석규는 사진관을 운영하는데, 죽어가면서 하는 거라곤 자신의 영정사진을 스스로 찍는 것뿐이다. 아, 이렇게 착한 남자. 

 몇 해 전, 심하게 무더웠던 한 여름 밤에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면서 눈물을 그렇게도 많이 삼켰다. 여전히 나는 우는 내 모습이 부끄러워서 울지 못하는 사람, 만약 사랑하는 사람과 이 영화를 봤더라면 중간에 일어나 길가를 서성였을지도 모른다. 눈물을 다 삼키고, 붉어졌던 얼굴이 다시 하얘지면 말없이 돌아왔겠지. 당신은 내 행동이 무척 당혹스럽겠지만, 그 이유를 세세하게 설명하진 않을 것이다. 나는 감정에는 솔직하지만, 표현에는 다소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다. 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지만 겉으로 티내긴 싫다. 항상 뭔가 숨기는 사람 같아 내게 섭섭해할지 몰라도, 혼자여서 감정에 솔직해지고 나면 당신에게 좀 더 다정해지는 경향이 있으니 쌤쌤아닌가.      

 입을 다물고 정신이 멍해질 때 발견하게 되는 사소한 것들, 나는 가치라고 쓰고 보물이라고 읽는다. 어쩌면 나는 그 숨겨진 보물을 찾기 위해 삶을 사는지도 모르지.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혼자의 시간이 내 인생 전반에 끼치는 영향은 실로 엄청나다. 

 혼자일 때 세상으로부터 흐릿해질 수 있다. 아무도 나를 존재로 인식하지 않는 유일한 시간에 나는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소멸된다. 그리고 나는 한 치의 좁은 틈도 없는 완벽한 소멸을 꿈꾼다. 그래서 자주 당신을 남겨두고 어딘가로 가려 한다. 혼자 있는 시간에 내가 가진 슬픔을 꺼내놓고, 그 슬픔의 원인을 찾고 싶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고맙지만 이건 온전히 나의 몫이다. 타인의 눈에서 사라지고 난 뒤, 작은 눈치도 보지 않는 시간에 솔직해진 내 마음이 그 해답을 알려줄 것이다. 이거 하나는 약속한다. 내가 잠근 방문을 열고나올 때, 제일 먼저 호명하는 사람은 당신일거라고. 그러니 하루에 단 몇 분이라도 내가 혼자의 시간을 넓은 이해심으로 감싸주시라.

 만약 누군가,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작심하고 내게서 혼자의 시간을 빼앗아 간다면 나는 가족을, 연인을 어둠으로 물들이려 할지 모른다. 당신으로부터 의도적으로 혼자가 되려는 수작을 아주 오래 부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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