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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우 Apr 10. 2021

네가 내게 맞춰줬으면 좋겠어

비밀; 사랑할 때 감춰야 하는 마음들


사랑을 할 때 우린 모두 자력이 센 자석이 되고 싶어 한다. 당신이 내게 끌려올 수 있도록. 그럴 수 없다면 무게가 많이 나가는 자석이라도 되고 싶어 한다. 절대 끌려가지 않겠다는 마지막 발악이라 해도 우린 그렇게 하려 한다.      

 주도권을 잡으면 몸과 마음이 편하다. 회사에서나 집에서나 어디에서든 그렇다. 나는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돈까스 먹고 싶은 날 돈까스를 먹어본 기억이 없다. 경상도 사투리 중에 ‘디비 쪼은다.’는 말이 있는데, 어떤 주장을 했을 때, 꼭 반대되는 행동만 하려해서 애를 먹인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당시 부장님에겐 두 가지 능력이 있었던 것 같은데, 하나는 눈빛만으로 혈중 알코올 농도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과 양심의 가책 없이 부하직원을 골탕 먹일 수 있는 능력, 이 두 가지 능력이 업무능력보다 뛰어났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술을 잔뜩 마신 다음 날에만 돈까스를 먹고 싶어 할리 없었다.

 집안에서는 또 어떤가. 혼자 사는 지금이야 소파가 내 차지지만 5인 가족이 함께 살았을 때, 서열 막내인 내가 편히 쉴 수 있는 푹신푹신한 자리라는 덴 없었다. 하물며 TV 리모컨을 직접 만진다는 건 꿈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이었다. 

 이런 상상을 한다. 날마다 점심 메뉴를 직접 결정하고,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 누구보다 먼저 소파 팔걸이에 머리 받치고 누울 수 있다면? 일상의 사소한 결정만이라도 내가 우선권을 가질 수 있다면, 황홀하지 않겠나. 권력의 맛은 단 거다. 상상만으로 마음이 편안해질 정도로 말이다.       

 우린 늘 어딘가에 끌려 다니느라 지쳐있다. 그 힘이 사회적 규범일 수 있고, 필연적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인간관계일 수도 있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사는 우리의 일상 속엔, 권력에 대한 두려움과 권력에 대한 욕망이 공존한다. 이 불공평한 사회 속에서 권력은 자유를 보장한다. 그러니 자유롭고 싶은 마음이 본능이라면, 권력을 부정할 수 없는 마음도 본능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글을 쓰면서 보내는 내게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권력이 없다. 그럼에도 내게도 권력은 있다. 그 권력은 직접 선택하고 맺은 인간관계에서만 효력을 유지한다. 사랑하는 연인, 새로 사귄 친구, 이들은 가족이나 직장상사와는 그 속성이 달라서 내가 직접 선택할 수 있었던 맺음이었다. 그래서 사랑하지만 더욱 자주 다투기도 하는 거다. 이 관계에서만큼은 나도 권력의 달콤함을 느껴보겠다는 작고 간사한 마음이 있다. 당신과 내가 자석이라면, 우린 서로가 조금 더 센 자력을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그럴 수 없다면, 무게가 무거운 자석이라도 되려 한다. 결코 당신의 자기장으로 끌려들어 갈 수 없다고 마음이 그렇게 말한다.      

 “네가 맞추면 되잖아.” 

 자기가 이기적인 걸 알면서도 그렇게 하려는 마음엔 그럴 수 없었던 적이 많아서 그렇다. 내 말대로 좀 해달라는 말은, 아무도 내 말을 안 들어주니까 당신만이라도 좀 들어달라는 거다. 점심에 돈까스가 먹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으니 좀 먹어 달라는 거다. 

 나는 이 말이, 나를 좀 더 사랑해달라는 말로 들려 측은한 마음이 든다. 그러면서도 오래 견디지 못하는 당신의 투정이기도 하다. 그건 내가 간사한 게 아니라 내게도 자유가 있고 존중이 있기 때문이다. ‘나도 하루 종일 힘들었고, 당신한테 위로 받으려고 여기까지 달려왔어. 어떻게 너는 네 생각밖에 안 하니’ 우린 모두가 이름 모를 힘에 억압받고 힘든 사람이다. 절대 당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그러니 당신도 나를 좀 배려해달라고 말한다. 나의 고단함을 누르고 당신에게 맞춰주는 일, 한 번은 진심어린 위로지만 두 번에 진심은 없다.     

마지막으로 심리학자 카를 융의 말을 빌리기로 한다. 

“권력이 있는 곳에 사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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