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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우 Apr 10. 2021

너의 과거를 알고 싶어서

비밀; 사랑할 때 감춰야 하는 마음들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다 

- 이상「날개」     


낡은 것을 좋아하지만, 오래된 당신의 마음을 좋아하진 않는다. 빈티지숍에서 역사 파헤치기를 즐기지만, 먼지 쌓인 당신의 마음까지 파헤쳐서는 안 된다. 사랑은 본능의 작동원리를 비밀에 부쳐두는 일이며, 아름다웠던 낮과 밤을 그대로 두는 일. 기어코 때 낀 마음이, 내가 알기 전 당신의 과거에 손을 대려한다면, 그 아찔한 마음 앞에서 사랑은 휘발되는 거다. 마치 두꺼집을 내리지 않고 시작한 전기공사에 손이 저릿해지는 기분처럼.

 내가 모르는 당신의 과거는 비밀이 된다. 그리고 난 비밀이 많아 열리지 않는 보물상자 같은 사람을 사랑한다. 연인뿐만 아니라 친구도 그렇다. 그들의 은밀한 속성이 아주 좋다. 

 비밀은 몸 안에 흐르는 전류와 같아서, 손끝이 닿을 때 찌릿찌릿함을 느끼게 한다. 갑작스런 약속에 나가게 되더라도, 부질없는 신세한탄으로 기력을 소진하지 않아서 좋다. 지난 날 잘 담근 매실주 같은, 시간이 진한 맛을 더해주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일찍 자리를 털고 일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날은 꼭 과음이다. 몸 안으로 술이 돌기 시작하면, 속에 감춰둔 보물상자가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끼는데, 한잔만 더, 딱 한잔만 더. 아쉬운 한잔만 더 마시면 보물상자가 찰칵, 열려 속에 있는 것들을 죄다 보여줄 것도 같은데 기어코 그 문은 열리지 않는다. 그 교태가 아주 울긋불긋 꽃대궐이다.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라고 했던 이상의 말처럼 마음 저변까지 공유하길 바라는 사람, 눈물 한 방울도 감춰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집에 놀러가도 차 한 잔 내올 여유가 없는 가난한 사람과도 같다. 

 슬프지만 가난은 잦은 다툼의 원인이 된다. 서로의 속이 허한 상태에서, 인내심을 기대할 수 없다. 모든 염원은 바람보다 빠르기를 바라며, 표현은 뾰족하게 깎인 연필심이 되어 연인마저 아프게 할퀴고 멍들인다.

 누구보다 나의 약점을 많이 알고 있는 당신. 그런 당신에게조차 한 번도 말한 적 없는 과거가 내게도 있다. 생각만으로 얼굴이 후끈해져, 괜히 주변을 훑게 되는 기억이 저 깊숙한 곳에 묻혀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부끄러움과 함께 살아간다. 문득 떠오르는 순간,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지둥 하는데, 뭔데 그래?, 라고 묻는 당신이 나는 그렇게도 얄밉다.

 그럼에도 내가 가진 역설적인 면을 애써 부정하진 않겠다. 나의 비밀을 지독히 감추고 싶어 하면서, 가끔 당신의 비밀을 훔치고 싶은 관음욕구를 호기심으로 둔갑시키는 것은 역시나 본능이 시켜서 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란 이름 아래 행하게 되는 성스러운 노력이다. 

 지금의 당신은 나와 복잡하게 얽혔지만, 당신의 과거까지는 아니다. 과거의 당신은 나로부터 지나친 버스정류장이며, 아무리 늘려도 만나지 않는 평행선이다. 자연법칙을 거슬러 두 선을 억지로 잇는다면, 그 관계는 제자리 뛰어 중력을 거스르는 아주 짧은 시간에만 유지될 수 있다. 그러다 손을 쓰려야 쓸 수 없는 상황이 오면 한쪽이 떠나는 거다. 영원히.

 꽤나 궁금하겠지만, 연인의 과거를, 비밀을 지켜주시라. 한 사람의 좋았던 과거는 봄처럼 화사해서 숨기려고 해도 자꾸만 새어나오기 마련이다. 반대의 과거는 손등 위에서 흉터가 된다. 당신의 당신이 자꾸만 옷깃을 늘려 손등 위를 감추려 하는 때, 그 순간이 오면, 못 본 척 손 위로 손을 꼭 겹쳐 잡는 것이 사랑이 할 일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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