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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시마 Aug 11. 2019

익숙함과 편안함

Part.3 캐나다 적응기

호스텔에 며칠 머물면서 휴대폰을 가장 먼저 개통하고, 그다음 집 구하기, 일자리 구하기를 동시에 진행하려고 하였으나, 언어의 한계가 있는 상태로의 휴대폰 개통이 이렇게 힘든 것인 줄 시도해 보고 나서야 알았다. 버스에서의 대화와 런던 친구와의 대화는 내 착각이었었나 보다. 짧은 영어로 개통을 하려다 결국 실패를 하고, 동전 집어넣는 공중전화기로 집과, 일자리 두 개를 알아봤다. 혼자 휴대폰 개통할 영어실력이 아녔기에 당연히 집과 일자리 구하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이렇게 멘붕이 찾아왔다.


얼마 안 되게 가지고 온 돈은 점점 없어지고, 그냥 해외에 있는다고 영어실력이 향상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뭔가를 해야 했다. 크래그리스트 와 검트리로 방을 구하기 시작했고, 연락이 닿은 곳으로  방 보러 몇 날 며칠을 다녔다. 한여름이었기에 무진장 더웠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외국인 룸메이트와 살면서 외국인과 일을 같이 하고 싶었기에 그렇게 일과 방을 구하던 나는 결국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혀 어느 순간엔가 한국인 셰어하우스와 한국인 일자리를 구하고 있었다. 비행기는 편도였고, 워홀 끝나기 전에는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이것은 현명한 판단이었다.


다행히 오타와에는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그래서 생각보다 방과 일자리를 금방 구하게 되었고, 얼떨결에 첫 번째 정착에 성공하고 말았다.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셰어 집주인은 음식점 주방장이셨고, 기러기 아빠셨다. 자식들이 살던 방이 남아서 셰어 생을 구하고 있었고, 운 좋게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일자리는 한국인 사장이 새운 김밥 마는 공장이었다. 공장이라고 해봐야 작은 작업 공간이었으며, 일하는 사람들은 동남아시아 몇 분과 미국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현재 방학이라 오타와로 와서 아르바이트하고 있는 한국인 대학생, 캐나다 인과 결혼하여 살고 있는 한국인 여성, 가게에서 서빙하고 있는 한국인 여성, 매니저로 보이는 누나 한분, 사장님, 그 외에는 잘 모르겠으나 납품은 많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회사가 잘 되는 것 같았다.


김밥 공장에서 일 한지 며칠 후에 내가 휴대폰 개통에 애먹고 있는 것을 알게 된 서빙하는 누나가 일 끝나고 나를 도와주어, 결국 해외에서의 첫 휴대폰 개통을 할 수 있었다.



개인적 생각 - 평소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 막상 그 상황에 부딪치면, 당연한 게 아닐 때가 많았는데, 그중에 해외에서 멘붕은 그중에 가장 임팩트가 컸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자만 막상 맞닥드리고 나니까 어떻게 해쳐나가야 할지 정말 앞이 캄캄했다. 그럼에도, 나 자신의 현 위치가 어디였는지를 판단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으며, 내가 뭘 원하는지 방향성을 잡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다는 것에서 현 위치에서 뒤돌아 본 그때의 "해외에서의 첫 멘붕"은 이제는 나에게 있어서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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