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그리고 또 도전!
그 당시 나의 목적은 월세 잘 받을 수 있는 '수익형 부동산'이었다.
월세를 내는 사람이 아닌, 월세를 받고 싶었다.
여러 세대로 등기하여 집을 파는 집장사를 하고 싶지 않았다.
월세가 따박따박 나올 수 있는 연금형 주택을 갖고 싶었다.
조물주보다 높은 건물주가 되고 싶었다. [장도리 2탄 2장 中]
제7장. 건축 자재구입
위 그림은 알렉스 루이즈라는 디지털 페이팅 작가가
빈센트 반 고흐가 바라본 아름다운 밤하늘의 느낌을
구현해 내고자 만든 작품이다.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 한참 동안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작가가 굳이, 작가의 작품의도를 설명하지 않아도
내가 빈센트 반 고흐가 된 것처럼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장도리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운전을 하고 있었다.
강화읍에 알미골 사거리라는 곳에서, 고개를 왼편으로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마치 우리의 삶이 투영되어 보였다.
그 당시 찍어놓은 사진을 얼마 전 찾았다.
그때 든 생각은 아래와 같다.
아파트 한채 구입하기 위해서 삶을 바둥거리는 우리의 삶.
언론과 은행은 빚을 내어 집을 사라고 손목을 잡아 끈다.
남들 다 한 채씩 가진 집을 갖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며 발버둥 친다.
우리는 아파트 한 채를 사려고 아껴 쓰고 다시 고쳐 입었다.
몇 번의 이사를 통해 겨우 장만한 아파트.
거울을 보았을 때 흰머리가 희끗한 어느덧 중년이 되어있다.
덧없이 흘러간 청춘, 아파트는 우리의 인생을 너무나도 닮았다.
아파트는 은행과 대형 건설사들이 만들어놓은 닭장이고
우리는 평생 닭장 속에서 알을 낳고
알에서 부화된 병아리들은 다시 닭이 되어 주택담보대출을 받는다.
스스로 닭장에 들어가 수십 년을 보낸다.
나는 이 뫼비우스의 띠 같은 고리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망치를 들고 닭장을 부셔 탈출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이 글의 큰 주제가 닭장 탈출법이며,
나의 필명은 '망치'의 순 한글말인 '장도리'가 되었다.
아래의 그림을 잘 살펴보면
몇 개의 발자국이 찍혀있다.
자신의 힘으로 닭장을 탈출한 닭이 자신의 집인
빨간 문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그렸다.
삶의 주체성을 찾고자 하는 필자의 상징적인 메시지를
담고자 노력했다.
ㅈ
자 본격적인 공사 시작!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함에 따라
발에 땀에 나도록 뛰어다니게 되었다.
직영공사로 진행하기 때문에
자재조달을 내가 직접 할 수밖에 없었다.
의외로 건축 물류비용이 공사에서 많이 든다.
물품 상차 비용, 하차 비용, 지게차 비용, 용달 비용 등
시멘트 몇 포대를 사도 운반비가 들기 때문에
나는 트럭을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마음에 드는 가격에 트럭을 중고나라에서 발견했다.
파란 더블캡 봉고트럭!
10만 킬로미터 밖에 타지 않았으며, LPG 차량이고, 더블캡이었다.
무려 가격은 185만 원!
바로 계약금을 걸고, 트럭을 구입하기 위해 경기도 수원까지 날아갔다.
이 트럭의 판매자는 30대 초반의 여성이었다.
트럭 뒤에는 커다란 접이식 자바라 텐트가 2개 실려있었다.
왜 멀쩡한 차량을 저렴하게 판매하냐고 물어봤다.
친구와 전국의 5일장을 돌며, 야채장사를 하기로 계획했다.
서로 직장을 그만두기로 한 날.
친구의 배신으로 트럭 장사를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서로의 감정도 많이 상하고 크게 다퉈
장사를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누군가 타인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고 했던가?
185만 원에 좋은 트럭과 멀쩡한 텐트 2개까지 얻어왔다.
오예!
그렇게 봉봉이(트럭)는 내가 입양해 왔고
그와 나의 분노의 질주는 시작되었다.
인천 서구에서 마루 공장이 망해서
일명 덤핑처리하는 것들을 구입 해 오기도 하고
경기도 광주 곤지암까지 가서, 방킬라이 목재를 실어오기도 했다.
아래의 실외기는 세종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가져왔다.
세종시로 정부청사를 이전하면서,
도시가 팽창했고 학생 인원수를 감당할 수 없기에 학교를 리모델링하고, 신축했다.
이처럼 각 자재들에는 모두 사연이 있었다.
이렇게 수집된 건축 자재들은
창고에 차곡차곡 보관했고, 필요할 때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동해번쩍!서해번쩍!
봉봉이는 일이 있을때 마다.
내 옆에서 효자손 노릇을 해 주고 있다.